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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한국에서 SF가 가지고 있는 의미
21세기와 그 너머를 위한 서사
[198호] 2016년 11월 21일 (월) 이지용 단국대학교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
   
△미래를 지향하는 SF는 문화적으로 항상 전위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 기민하기 때문이다.                                                                               
  출처 : 영화 <스타(트랙 : 비욘드> 스틸컷)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가 한국의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대국을 벌이는 것은 사실 지엽적인 이벤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이 연이어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에게 고배를 마시자 오히려 관심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사이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에 대해 우려와 근심을 표하기도 했다.

 우리는 알파고 이후로 과학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이고 전방위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채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시작되지 않았다. 사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과학과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는 곧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와 다름없다. 알파고를 통해 환기된 관심들을 확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르가 바로 SF(science fiction)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SF는 철저하게 마이너리티다. 이는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장르가 형성된 미국에서는 SF가 문화적으로 메인라인에 속해 는 장르이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콘
츠들 중에서 SF의 비중이 높은 것은 단순한 유행같은 것이 아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중국에서 현재 SF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위치를 보면 한국과 상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움직임은 관심을 가질만한 것인데 첨단산업과 더불어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을 쏟으면서 SF에 대한 관심이 근래들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러한 관심의 증대를 바탕으로 2015년과 16년에 각각 류츠신(刘慈)의 『삼체(The Three Body Problem)』와 하오징팡(郝景芳)의 『북경절첩(Folding Beijing)』이 SF 최고권위에 해당하는 휴고상(Hugo Award)를 수상하면서 가시적인 성과 또한 거두었다.

 특히 한·중·일의 SF는 도입 시기와 경로의 차이는 있지만, 장르를 도입하게 된 배경적인 요인은 동일하기 때문에 그 비교가 더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SF는 서구화로 상징되는 과학을 받아들이기 위한 도구였다. 그랬기 때문에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일본에 유학 보냈던 이들이 발간한 『태극학보(太極學報)』에서 한국 최초로 SF 작품이 소개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도 탈아입구(脫亞入欧, だつあにゅうおう)를 주창하며 사회의 모든 구조들을 서구화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저변확대를 위해 SF가 도입되었다. 중국 역시 근대화 과정에서 SF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루쉰(魯迅)이 직접 SF 소설들을 번역해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슷한 도입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국의 SF는 왜 현재까지도 유독 마이너리티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일까?

 우선 도입기에 콘텐츠, 즉 과학과 SF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이 현재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는데 있다. 인식의 지체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1908년에 『태극학보』에서 SF 작품들을 소개하고 난 뒤에,「과학의 급무(科學의 急務)」라는 글을 통해 언급한 과학에 대한 인식들이 1975년 『한국과학소설(SF)전집』에 실린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의 격려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과학과 SF를 부국강병을 위한 도구적 필요로서 인식하고 활용하는 인식들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공상과학소설(空相科學小說)’이라고 명명되어 오면서 형성된 이미지의 굴곡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는 번역과정에서 그 특성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옮긴 명백한 오류였다. 하지만 수정이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고, 덕분에 SF는 허무맹랑한 상상이거나, 현실화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공상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다. 이는 사실 현실가능성을 견지하는 논리적인 상상력을 활용하는 SF의 장르적인 특성으로 보았을 때 그 장르적 의미에서 멀어지는 명백한 오류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상당기간 동안 SF가 아이들이나 보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스테레오타입의 형성에 이러한 용어의 오류가 기여한 바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과 같은 인식의 지체와 개념의 굴곡은 한국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배경, 즉 오랜 시간 동안 거대담론이 지배한 시기와 맞물려 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의 지체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절하는 결과적으로 창작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담론의 헤게모니에서 밀려난 장르들은 활발한 창작이 어려워진다. 창작이 진행되더라도, 이슈화되는데서 그칠 뿐, 제대로 된 비평이나 평가를 통해 재생산으로 순환되는 구조를 획득하기 어렵다. 또한 창작이 위축되면 당연히 담론을 형성할 재료의빈약으로 이어진다. 길고 질긴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고리를 끊을 만 한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1990년대였다. 사회적으로 이전과 다른 양상들이 나타났기 때문인데, 사이버스페이스가 그것이었다. 사이버스페이스의 등장을 통해 한국의 SF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일종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가 더 확대되고, 사람들의 삶에서 과학기술이 미치는 영향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SF는 오히려 이전 시대에 비해 주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중들에게 과학과 SF가 가지고 있는인식의 지체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문제의 해결방안 역시 좀 더 많은 SF가 창작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의 SF가 국가적으로 부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양적, 질적인 발전을 함께 이룩하는 데는 장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가들이 다양한 방법론으로 활발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온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활발한 움직임이 가능했던 것은 그동안 사상적으로 억압받아오던 사회적 분위기를 해제하는데 SF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주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에서도 주의 깊게 관찰해 볼만한 것이다. 특히 사회주의에서 표방하는 최상의 가치가 리얼리즘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중국에서 그것에 대한 변화의 양상을 SF가 이끌고 있다는 것은 거대담론의 시기 리얼리즘의 헤게모니에 눌려있던 담론들을 분유하는 과정에 있는 한국의 입장과 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2016년 한국의 SF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어쩌면 중국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국에서 SF는 여러모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좋은 방법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회구조의 변혁과 사회·경제 시스템의 변화로 인해 콘텐츠와 문화예술에 대한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에 대한 인식의 문제의 변화를 유도하고 나면, 우리는 그 과학으로 구성되어있는 세계를 통찰하고 이야기할 인프라가 충분하다. 세계적으로 발달한 네트워킹 시스템이 그러하고, 첨단 기술을 선도적으로 소비하는 얼리어답터적 기질들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게임 등의 콘텐츠를 전방위적으로 소비하는데 고도화되어 있는 여러 시스템들을 감안해 보았을 때 현대 한국을 이야기하는데 SF만큼 그 방법론적 효용이 뛰어난 것도 없을 것이다.

 또한, 미래를 지향하는 SF는 언제나 사회·문화적으로 전위적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알파고로 인해 제기되었던 인간과 과학문명에 대한 충돌 문제 등에 대해서 SF는 이미 한 세기도 전부터 견지해 왔다. 인종이나 젠더(gender)의 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전위에서 문제제기를 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 기민했다. <스타트랙>을 통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콘텐츠에서 최초로 흑인이나 여성, 동양인이 스토리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일들이 나타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SF의 이러한 특성들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다방면에서 담론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는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활발하고 자유로운 창작과 더불어 연구나 비평의 분야에 있어서도 좀 더 많은 접근을 필요로 한다. 오래도록 담론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SF는 현재 제대로 된 담론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연구자들의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특히 한국에서 장르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 대한 명확한 정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엽적인 정보들을 수집해 검증하고, 중간중간 비어있는 고리들을 밝혀내야 하는 작업들이 산재해 있다. 현재는 파편화 되어있는 정보들을 모아 검증하고, 오류들을 수정하는 일을 진행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때문에 확장되어 있는 공간들을 채울 자유로운 창작자들과 함께, 그들을 통해 쏟아져 나올 콘텐츠들을 큐레이팅하고 발전적 재생산을 유도할 연구자들이나 비평가들의 출연도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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