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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정명(正名)의 요구
[197호] 2016년 09월 26일 (월) 유흔우 문과대학 철학과 교수

  공자(孔子)는 명칭을 바로 잡는다는 정명(正名)을 설명하면서 “모난 술잔[]이 모나지 않으면, 그것이 모난 술잔인가! 모난 술잔인가!”라고 하였다. 이는 이름[名]에 부합하는 실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만약 어떤 권력자가 불의(不義)를 행하고도 정의(正義)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이는 부정명(不正名)으로써 이를 반드시 ‘불의(不義)’로 이름하여 바로잡겠다는 것이 공자의 뜻이었다.

  대학의 본질적인 기능인 진리 탐구가 오늘날처럼 외부와 내부로부터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가장 큰 위협은 현 시기 자본주의의 필요에 의해 대학을 구조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자본의 요구다. 정부는 자본의 필요와 요구에 충실하여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법률을 개정하고 재정지원사업을 벌인다. 그 때마다 구조조정과 학제 개편을 강요하다시피 하면서 대학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 준다’는 명분으로 포장한다. 그런데 그 자율성이라는 것이 교수와 연구자, 학생에게 학문적 자유와 자율성은 보장하지 않는다. 지금 대학을 둘러싼 각종의 개혁이나 혁신은 대학을 외부의 재정적 지원이나 수익 사업 같은 것들에 종속되게 만든다.

  대학 안에서 대학관리자의 정점에 있는 총장들이나 이사회는 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정부와 기업의 요구와 필요를 충족하는데 급급할 뿐, 학문의 다양성, 개방성, 소통성의 진작을 통한 교육과 연구의 활성화라는 대학 본연의 가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다. 대학 스스로 순수학문을 고답적이고 구태의연한 상아탑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점점 더 축소하려는 경향은 가장 큰 내부로부터의 위협이고, 이것이 훨씬 더 심각한 위협이다. 단적인 예로써 사실상 정부와 기업이 책임져야할 취업 문제가 대학에 떠넘겨졌는데도 이에 대해 문제제기는커녕 오히려 앞 다퉈 순수학문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정부의 법률 개정이나 대학 안에서의 대학관리자들 주도로 관철되고 있는 각종 개혁이나 혁신은 대학을 취업준비 기관으로 전락시킨다. 몇몇 지표로 계량화된 수치로 평가하는 경쟁력이나 서열화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으로서의 대학 공부나 학문적 업적과는 본질적으로 상관없는 것이며, 단지 대학과 학문을 통제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학관리자들은 이들 수치를 대학 경쟁력 강화의 척도로 삼고, 대학 개혁이나 혁신의 필요성과 합법성(legitimacy)의 근거로 삼는다. 대학의 시장화와 자본주의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자명한 전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대학은 스스로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고, 기업과 정책의 하부 기관을 자처하고 있다.

  본래 대학 교육의 본질적 가치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이바지하는데 있는 것이지, 몇몇 최첨단 기업의 개별적 요구나 수단을 충족시키는 데 있지 않다. 자크 데리다는 대학이 정부나 자본에 종속되고 수단화되는 것을 경계하여 ‘본원적이고 예외적인 종류의 자주권’과 ‘무조건적인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은 학문의 진리성에 의해서 공동체에 이바지해야 하고 현실적 쓰임새에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일 것이다.

  현대의 대학들은 대학교육의 대중화 속에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학이 시장의 필요와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당연함은 “인간 자신과 그 운명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모든 기술적 노력들의 주된 관심을 형성해야 하며, 노동의 조직과 재화의 분배에 관한 풀리지 않은 커다란 문제들에 대한 관심은 우리 정신의 창조물들이 인류에게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의 도표와 방정식들 한가운데서도 이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과 같이 대학에서의 보편적 지식 추구가 필연적으로 어떤 사회적 의무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일 뿐, 대학의 기업화나 자본 종식화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대학을 비롯하여 교육부의 평생교육 지원 사업을 수주한 몇몇 대학들이 크고 작은 소요를 겪고 있다. 해당 대학의 학생과 교수들의 문제제기 핵심에는 자율과 소통이 자리한다. 대학과 학문은 당연히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대중화돼야 마땅하지만 자본의 필요나 정부의 재정지원 수주에 의한 대중화가 돼서는 안 되고 대학 자율에 의한 대중화가 돼야 하며, 대학 구성원들 스스로 협의해 직접 도출하는 형태로서의 소통과 자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곧 대학 정명의 요구, 즉 대학의 본질적인 전통과 가치에 따라야 한다는 요구이자 대학관리자들의 합법성의 근거를 문제 삼는 것이다. 대학의 본질적 가치와 전통이 ‘합법성’의 근원임을 재천명하는 이러한 요구를 단순히 이기심의 발로 정도로 매도하는 것은 심각한 부정명이고 불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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