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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평] 재앙 이후, 오직 (비)인간만이
자크 랑시에르,『역사의 형상들』, 박영옥 역, 글항아리, 2016.
[197호] 2016년 09월 26일 (월) 이한나 편집위원
   
 
 

  ‘재앙의 일상화’, ‘국가재난시대’와 같은 문구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지금, 아도르노의 발언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그의 자조 섞인 이 말은 재앙(shoah) 이후 예술의 부활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지적한다. 이로써 재앙 이후 반복되는 악몽에 시달리며 예술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하는 물음이 떠돈다. 『역사의 형상들』은 아도르노의 절규에 대한 랑시에르의 긴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형상들』에서 랑시에르는 먼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을 분별하는 최초의 나눔이 있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미지가 가진 폭로의 힘이 비가시적인 것 아래 감춰진 가시적인 것을 깨운다고 설명한다. 랑시에르는 이를 명료히 하기 위해 시에서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시를 든다. 영화의 본질적 운명은 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의 문턱, 즉 가시성의 문턱을 정하는 것임을 주지시키곤 넌지시 하룬 파로키의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로키의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이전 영화들에서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의 장면만을 편집하여 만들어낸 작품이다. 최초의 영화인 〈뤼미에르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에서부터 〈밤의 충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종말〉을 거쳐 70년대 영화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의 모습만이 화면 가득 실린다. 때때로 클로즈업 등의 기법을 동원하기도한 파로키의 이 시도는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이데올로기를 파악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랑시에르는 파로키의 이 작품에 주목하여 “카메라의 진지한 눈도 결국 우리가 보라고 명령하는 것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었음을 역설한다. 카메라의 ‘무차별적인 가시성’이 전 인류를 비존재로, 역사의 부재로 돌려보내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그리곤 “아우슈비츠 이후, 오직 예술만이 아우슈비츠를 드러낼 수 있다”, 고 아도르노에게 답한다. 예술은 항상 부재의 현재이므로, 예술만이 재앙과 같은 비인간적인 것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예술만이 스스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역사의 형상들을 새롭게 배치(dispositio)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렇다면 배치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재앙 이후, 비인간적인 현실과 마주하여 비인간적인 것, 즉 ‘모든 게 끝장나버린 뒤 남은 잔해들’로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구성해내는 자는 누구인가. 그의 저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통해 인민(people)이 그 주체의 자리에 위치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만의 통일된 사유를 여러 텍스트들을 거쳐 전달하는 철학자 랑시에르는 이 책에 와서는 마침내 이와 같이 말한다. 결국 역사(l’histoire) 아닌 역사(une histoire)를 써야하는 이는 비인간적인 것과의 대면 이후 이를 감각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인간, 다시 인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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