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5.20 월 18:24
인기검색어 : 등록금 인상, 총장선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문화 > 문화산책
     
[문학공간] 그 방에서 울고 있는 누군가
내 인생의 책
[197호] 2016년 09월 26일 (월) 김금희 소설가
   
 
 

  오랫동안 내가 사랑해온 작가는 신경숙이다. 나는 대학에 가서야 『외딴방』(1995)을 읽었는데 지금과 달리 분권이 되어있던 그 책을 붙들고 느꼈던 감동과 슬픔, 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환기를 잊지 못한다. 그 책은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해 어느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닿는 곳은 마음, 내 자신의 마음에 있었다. 그래서 그 소설은 당연히 이런 문장들로 시작한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소설은 내게 나 자신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가냘프고 투명한 ‘막’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했다. 마치 목소리를 내는 방식처럼 그 막은 세계와 나의 움직임에 따라 진동하면서 글을 쓰게 하는데 대개의 경우 그것은 우는 소리를 닮았지만 실제로 눈물에 대한 감촉은 없다는 것. 그렇게 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고통에 대해서 쓰지만 그 고통의 완전한 주인은 될 수 없다는 것, 마음이나 기억처럼 실제로는 감각되지 않는 어떤 세계의 기척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그것은 주시(注視)이지만 몽글몽글한 어둠 속을 통과해서 보아야 하는 주시이고 그래서 어렵고 외로운 작업처럼 느껴졌다. 글을 쓰는 누군가는 자신의 방에 앉아 어떤 방들에 가닿으려 애쓰고, 그러는 동안 가발을 쓰고 학원 강사를 해야 하는 공익근무요원은 공장을 다니는 여동생과 함께 사는 단칸방으로 매일 밤 지쳐서 돌아온다. 구로공단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소설을 읽는 ‘나’와 옥상에 올라 새하얀 빨래를 너는 희재언니, 그리고 언니가 다시는 열고 나오지 않은 그 작은 방.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하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백로에 대해 이야기하며 끝이 났음을 기억했다. 갇혀 있지 않았음을. 그렇게 백로가 앉아 있는 광경을 실제로 보았던 건 내가 작가가 되고 나서 한참 뒤였다. 정선에서 차를 타고 달리다 만난 백로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도저한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안개를 맞고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앉아 있는 새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울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새들이 아니라 사람이 울고 있는 어딘가의 방들에 대해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1914)을 들고 실제로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찾았을 때는 유월이었는데 무척 추웠다. 두터운 옷이 없었던 나는 SPA매장으로 가서 싼값의 인조가죽점퍼를 사입고 거리를 걷다가 저녁이면 호텔방에 들어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주 좁은 호텔방이었고 네모나지 않고 약간 삼각형에 가까운 형태였는데 다행히 나무창틀로 된 창이 하나 있었다. 그 창에서는 성당 건물과, 재봉틀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지하의 층이 보였고 침낭으로 들어가 밤을 보내는 홈리스 하나가 있었다. 홈리스 뒤편에는 이집트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의 광고판이 서있어서, 당연히 죽은 자들의 그 화려한 유품들과 홈리스의 몸을 감싸고 있는 합성섬유의 저급함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자들이고 저 홈리스는 지금 막 고개를 살짝 들고 횡단보도 쪽을 바라봤는데, 어떻게 보면 기적처럼.

  여행에서 내 저녁의 일과란 그렇게 방안에 머무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동일한 풍경들을 오랫동안 창으로 지켜봤다. 『더블린 사람들』의 많은 장면들이 그렇게 창을 통해 지켜본 누군가의 집이나 거리나 하는 것들을 설명하며 쓰여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애러비」의 소년이 망간의 누나를 지켜볼 때 그랬고 「죽은 사람들」에서 그레타가 눈 내린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열일곱 살에 죽어버린 자신의 연인, 가스 공장에 다녔던 가난한 소년을 떠올릴 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밤이면 홀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피로하고 고독에 지친 마음으로 『더블린 사람들』을 천천히 읽었다. 방의 바깥에서는 관광객이 되어 도시를 걸어다녔지만 다시 방안으로 들어오면 마치 내가 이렇게 멀리 와서 느끼고 있는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마치 환영에 불과한 것처럼 무섭게 그 공간에 대한 감흥은 상실되고 조이스가 말하고 있는 사람들―그들은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었으나 몸은 살아있는, 유령의 정신과 갈구하는 몸을 가진 사람들이었다―에 대해 읽어 내려가면서 그것은 사실 이렇게 멀리 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회의도 잠깐씩 하면서.

  그러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성당은 고요하고 반지하의 영세한 공장 불빛은 꺼졌는데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죽은 듯 누워 있는 홈리스의 몸에 잠깐 환한 빛이 내려왔다가 다시 평평한 어둠으로 되돌아갔다. 혹시 우는가, 하며 창으로 바짝 붙어 귀 기울여보면 그것은 저 바깥이 아니라 방안에 있는 사람이 내는 소리이고, 여기서, 소설에서, 내 기억에서 누군가가 우는 것이고.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김대욱 | 편집장 : 김태환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우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