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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말하다] ‘헬조선’의 대학원생들
가방끈 긴 ‘흙수저’들의 반란은 어떻게 가능한가?
[197호] 2016년 09월 26일 (월) 허 민 문화연구자
   
△'헬조선'은 체념과 포기를 주입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대학원생들의 반란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다.
     

  “내 꿈은 재벌 2세인데,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해요.” 온라인 공간에서 가끔 회자되는 개그 코너의 대사이다. 최근 여러 ‘짤방’들을 양산하고 있는 이 ‘웃픈’ 대사를 다시 소환한 청년들의 저의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수저론’이라는 유사계급론(혹은 新신분주의)에 강하게 공감한 ‘흙수저’들이 과거 결정론적인 이 개념을 외려 미래-소망으로 투사한 상상의 유희일 게다. 하여 ‘노오력’과 ‘열to the쩡’이 없다고 타박한 어른-부모세대에게 바로 그 어이없던 훈계를 ‘미러링’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편으로는 사회의 모순을 개인이 감내-극복케 하는 ‘헬조선’의 자기계발 논리를 조롱하는 것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결코 이룰 수 없는 미래-소망에 대한 냉정한 현실 판단의 표현인 것이다. ‘헬조선’과 ‘수저론’은 현실을 단념해버린 청년들의 자조적인 말장난이 아니다. 반대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직시해내려는 의지의 방법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청년들은 어느 때보다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사회를 마주하고 있다. 개념 없는 청년들의 개념(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헬조선’은 청년들에게 체념과 포기를 강제하고 있는 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한국의 청년들은 이러한 정서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삼포’나 ‘오포’, ‘N포’라는 세대 규정을 자임하며, 체념의 정서를 개념어의 유희를 통해 상대화하고 있다. 체념을 체념하고, 포기를 포기하겠다는 반동적인 언어 전략인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강권되는 길을 각자의 방식으로 거스르려는 청년들이 있다. 균질화되고 있는 사회적 삶 안에서 분투하고 있는 작은 실천들이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 대학원생들도 있다. ‘헬조선’에서 대학원 진학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고액의 학부 등록금보다 더 많은 돈이 드는 일이기도 하며, 사회 진출을 수 년 연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모된 돈과 시간이 ‘스펙’이 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대략 33만 명으로 추정되는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공부하기’를 선택하고 있다. 이 선택 자체를 중요히 살필 필요가 있다. 대체 대학원생들은 어떠한 조건 위에서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떠한 전망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나아가 대학원생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은 어떻게 (재)조정되고 있으며, 어떤 환경 위에서 공부를 지속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과 의문들이 사회적으로 의제화될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 문제는 다분히 사회적인 성격의 과제이며 매우 주요한 청년문제로 제기되어야만 한다.

  청년문제로서 대학원생 이슈가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원생들을 ‘보통의 청년집단’으로 표상할 방안이 필요하다. 이는 대학원생에 대한 모순된 이미지들에 흠을 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대학원생에 대해 많은 돈을 투자하여 스펙 쌓을 시간을 벌 수 있는 ‘금수저’들로 간주하곤 한다. 다른 쪽에서는 대학원생들을 지도교수에게 물질적·정신적으로 의존한 상태에서 미래를 저당 잡히거나 학내 모순을 체현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표상하곤 한다. ‘무기력한 금수저’라는 모순된 대학원생 표상은 정책적인 문제와도 꽤나 연동되어 있는 듯하다. 가령 전자는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는 국가장학금이나 든든학자금 대출, 혹은 (반값)등록금 이슈에서조차 대학원생들을 배제하는 효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후자는 대학원생들이 처한 물적-제도적 조건들의 정책적 개선보다는 인권에 대한 대학-교수사회의 인식 제고를 요하는 정도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원생 대부분은 ‘금수저’가 아니며, 다만 나약하지도 않다. 대학원생에 대한 사회의 반쪽 이해나 몰인식은 구체적인 지표와 관련 연구를 통해 지양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원생들의 반란은 어디서부터 가능할까? 과연 대학원생들을 ‘청년집단’이나 ‘집단적 주체’로서 표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는 분명 대학원생 문제를 ‘공동의 것’으로 사유하기 위한 전략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아울러 청년들의 언어전략을 대학원생들의 재현전략으로 이행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다. 당장 대학원생 내부에는 다양한 세대 분포와 계급격차, 출신학부의 상이함에서 오는 집단화할 수 없는 성격들이 산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학원생들이 처한 공통의 조건에 기반을 둔 다양한 네트워크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연구환경개선을 위해 뛰고 있는 대학원생 자치기구의 활동들, 대학원생 등록금 투쟁의 기록들, 학교라는 울타리를 초월한 형태의 세미나나 학술 교류들, 도처에서 창궐 중인 대안적 공동체들 등, 엄존하는 대학원생 청년 집단의 저항-행위를 의미화하고, 이에 동참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방 끈 긴 ‘흙수저’들의 반란은 이러한 작은 실천에서 비롯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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