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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한·미 관계의 오래된 유대와 냉소적 현재?
[141호] 2007년 05월 07일 (월) 조정현 국어국문학과 석사수료

   
 
  *총격사건의 주인공 조승희가 NBC방송에 보낸 사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바라보며


미국의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사망자만 33명에 달하여 미국 내에서 벌어진 유사 범죄 중 최고치이며, 그 방법 또한 전장에서의 처형을 연상시키기에 반인륜적이기까지 하였다. 기록뿐만 아니라 도덕적 견지에서도 끔찍한 이 사건은 먼 타국에서 벌어졌지만 사건의 전모를 계획하고 실행하였던 범인이 한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일처럼 여겨졌었다.

이에 국내의 모든 언론에서는 사건의 전모와 범인의 처지를 속보로 보도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그러한 열띤 보도와 국민적 관심은 대통령이 공식적인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요약되었다. 이러한 전 국민적 관심은 사건의 현장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건의 현장을 방문하였으며, 미국 유수의 언론은 이들의 손에 들려진 촛불을 보도하였다.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머물고 간 버지니아 공과대학의 뜰에는 32명의 희생자들을, 더불어 가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두 개의 비석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애도의 끝에 미국의 대통령이 사건현장을 방문하여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한 추모의 연설을 하는 이례적인 행사가 진행되었다. 결국 양국 원수의 유감 표명과 추도 발언으로 정리된 조승희 씨의 총기난사는 많은 피해자를 남긴 처참한 사건이었지만 한·미 양국이 자신의 영토에서 휴머니티를 발견해내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진정한 듯 여겨지는 애도의 몸짓을 통하여 양국 간의 특별하고도 오래된 유대를 이끌어 낸 한편의 휴먼드라마였다.

감정을 자극하는 통속적인 드라마라고 해서 리얼리티의 문법을 거스르지 않듯이 위의 서사에서도 개연성을 확보하기위한 각고의 노력이 보이고 있다. 그러한 수고의 원점은 범인의 이력과 처지를 보도하는 동시에 합리적으로 구성해내려는 다각적인 노력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합당한 원인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 원인을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서 발생하였던 유사한 범죄와 마찬가지로 범인이 자살하여버렸기 때문에 이번 사건 역시 원인을 짐작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에 양국의 언론들은 범행의 동기가 되었음직한 몇 가지의 사실들을 그의 이력과 처지에서 찾고자 노력하였고 궁핍한 가정환경과 이성관계의 어려움을 제시하였다.

미국이라는 고도화된 현대사회체제에서 곤궁한 교포 2세로서 그가 느꼈음직한 소외와 배제는 누구라도 공감할만한 현실적인 이유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그와 동시에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범행의 전모를 담담히 이야기하는 범인의 동영상은 현실에 적응치 못한 범인의 광기를 체험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이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자아내는 동시에 현실성을 갖는 뛰어난 호러무비가 만들어진 것이다.

자료의 진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와 객관적으로 보이는 자료를 제공하였음에 이전의 유사사건의 보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보도는 총기난사사건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실감나는 대부분의 유명한 호러무비의 경우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공된 범인 혹은 괴물의 상처보다는 끔직한 형상과 광기만이 오래도록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짐작의 타당성은 이번 사건의 보도 구성이 이전의 유사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와 상이하다는 점을 통하여 확인 할 수 있다. 8년 전에 발생하여 영화로도 제작된 콜롬바인 고등학교의 총기난사사건은 사망자의 수에서 이번 사건에 미치지 못하지만 범인이 고등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벌어진 범죄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다.

그 사건 역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지만 사건의 소식만을 전한다는 점에서 이번의 경우와는 상반된다. 뿐만 아니라 작가와 감독의 개입과 사건의 재구성이 허용되는 영화(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조차도 ‘미국에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던 당시 언론의 보도 태도로 인하여 미국에서는 개인이 자유롭게 총기를 소유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었으며, 윤리교육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이 부각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끔찍한 범죄가 자신들이 구성하고 살아가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책임을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화의 과정이 미국 내에서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였기에 유사한 범죄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번 사건 역시 그 연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유사사건들에서 분리되어 개별 사건의 방식으로 보도되었던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은 책임의 전가 또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사건의 주범인 조승희 씨가 이중의 국적, 즉 미국 시민권자인 동시에 한국의 국적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 사건이 한국국민들의 가슴속에 일으켰던 애도의 감정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공식적인 ‘유감’ 표명으로 요약되는 것은 단순한 동포애나 휴머니티의 발현만은 아닌 듯하다. 그 발화의 시점이 조사의 과정이었으며, 그 누구도 ‘유감’의 의사를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유감’이라는 어휘 속에는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을 느낀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기에 그러하다.

사실 원인으로 지적된 조승희씨의 사회부적응에 따른 광기는 그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고도화된 현대사회를 지향하는 미국 사회가 문제시 삼는 개인에 대한 소외와 배제의 전이였던 것이다. 결국 휴머니티와 오래된 유대감의 증거로 여겨졌던 우리의 “유감”의 표시와 미국 측의 “추모”의 화답은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라는 차가운 질문을 내포하고 있었음이다.

결국 “유감”은 용서를 구하는 몸짓이자 책임을 짊어지겠다는 다짐의 발화이며, 범죄자까지 피해자에 포함시켜 “추모”하는 이례적인 행사는 호의를 베푸는 관용의 몸짓이지만 사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발화인 것이다.

처참한 사건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래된 휴머니티와 오래된 유대감을 호소하는데 성공하였던 휴먼드라마의 감동은 의식화되지 못한 정치적 행보 속에서 연출되었던 것이다. 이 정치적이지만 감동적이었던 드라마의 연출이 사실 유대감보다 더 오래전에 발현하여 고착된 한·미간의 차가운 위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프로이트가 분석의 난관과 마주섰을 때 종종 사용하였던 자신을 향한 질문 “이런 대화가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를 통하여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지 1주일 만에 버지니아 공과대학의 잔디밭에서 추모행사가 진행되었다. 그 참혹했던 사건의 현장을 마주한 그곳에서 서른 세 번의 종이 울렸으며 서른 세 개의 풍선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 장면의 아름다움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종소리와 하늘로 솟구치는 풍선에는 현대자본주의의 소외와 배재를 느끼면서도 하소연하지 못했던 조승희 씨의 외로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의 외로운 심경을 이해하고 용서하였기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특이한 한 미국시민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미국시민들의 마음 또한 한결 가벼워졌을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서울에서 또 한 번의 추모 집회가 벌어졌다.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열렸던 추모식의 참가자들처럼 촛불을 밝혀들고, 그 불길처럼 슬퍼하며 모여들었지만 그곳에는 한 가지의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추모식의 단상에 올려진 영정이 서른 두 개뿐이며 미국시민이자 한국의 국적을 가진 조승희 씨의 영정이었다. 그 사라진 영정은 그날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비롯한 그 사람들의 손에 들린 촛불을 바라본 우리들의 가슴속에 죄책감의 양식으로 긴 시간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가끔 현세의 사람들은 망자와 더불어, 망자를 이용하면서 살아간다는 현학적인 말이 쉽게 이해될 때마다 번개를 맞은 듯이 몸서리쳐짐이 느껴지고는 한다.

조정현 (국어국문학과 석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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