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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혐오의 시대에 혐오에 저항하는 법
혐오 발언에 말대꾸하기
[197호] 2016년 09월 26일 (월) 유민석 서울시립대학교 박사 과정
   
  △버틀러의 설명에 의하면 혐오 발언의 수신자는 혐오 발언을 되받아치는 것은 물론 이를 전유하여 혐오의 권력과 관습을 교란할 수 있다.  
  (출처 : Normal Theater)

 

 ‘혐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혐오 발언, 혐오 범죄 등의 문제는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년 전에 출간된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저서『혐오 발언(원제: Excitable Speech)』은 한국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그녀는『혐오 발언』에서 인종차별 발언, 포르노그래피, 흑인 갱스터 랩 음악, 동성애자의 자기 선언, 십자가 소각, 국가 검열 문제 등 다양한 형태의 ‘상처를 주는 말’을 다룬다. 그 전에 잠깐 배경이 된 맥락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미국에서도 90년대 초반 성희롱이나 성차별 발언, 인종차별 발언과 같은 혐오 발언의 문제가 젠더, 인종 문제로 급부상 했었고, 이에 대해 많은 이론가들이 이론화를 시도했다. 특히 몇몇 페미니스트들과 반(反)인종차별주의 이론가들은 포르노그래피와 인종차별주의가 어떤 형태의 법적 규제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두 발언을 규제하자는 논증을 제기하였다. 즉 발언이 억압당하는 집단 구성원들을 종속시키고 주변화하거나 그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이론가들―레이 랭턴, 캐서린 매키넌, 마리 J.마츠다 등―은 규제 근거를 강화하기 위해 언어철학자 J.L.오스틴의 이론을 활용하게 되었다. 이들은 언어는 곧 행위라는 J.L.오스틴의 견해를 확장하여, 혐오 발언은 피해자들을 침묵시키며 종속시킨다고 주장했다.

  언어적인 따귀, 혐오 발언

  마리 J. 마츠다, 캐서린 매키넌, 레이 랭턴 등은 모두 이 같은 ‘상처를 주는 말’에 대해, 이는 주체가 의도적으로 행사하는 차별 행위이고, 이 말들은 곧 행위가 되어 수신자를 열등한 지위로 종속시킨다는 견해를 편다. 그들은 혐오 발언이나 포르노그래피가 ‘그냥 말only words’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혐오 발언을 폭력이자 차별 행위로 간주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혐오 발언은 일종의 언어적인 따귀로, 수신자의 복부를 강타하고 종속적인 지위로 못박아 두거나(마츠다), 열등한 자로 서열을 매기고, 그들을 향한 차별을 정당화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발언 불가능하도록 침묵시킨다(랭턴). 따라서 그들은 혐오 발언에 대해 화자가 의도한 대로 말이 곧 행동이 되는 오스틴의 ‘발언내행위’라는 형태를 가정하며, 피해자 혹은 피해 집단의 언어능력이 파괴된다고 간주함으로써 그들을 피해자화한다. 이를테면 철학자 레이 랭턴은 남성의 여성 혐오 발언은 여성을 “발화불가능”(make unspeakble)하도록 침묵시키며, 여성들의 언어적 수행성을 박탈한다는 유명한 주장을 했다. 
이들 규제옹호론자들은 국가가 혐오 발언을 내버려 두고 방치하는 것은 국가가 그 혐오 발언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특히 마리 J. 마츠다는 혐오  발언의 해악을 강조하면서 혐오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하에 방치하는 것은 혐오발화자로 하여금 소수자를 억압할 권리를 승인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혐오 발언이 그렇게 강력한 것일까?

  그러나 언어의 열린 본성을 강조함으로써, 버틀러는 이런 논증들을 거부한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도 제정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규제는 공적 담론을 통해 혐오 발언을 ‘재의미부여’하고 ‘재수행’함으로써 이런 발언에 도전하도록 일깨워질 자들을 침묵시키도록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 발언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운 주체를 탄생시키는 호명적인 기능을 행사하지만, 그때 탄생되는 주체는 종속적이거나 수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자신을 부른 그 호명적인 혐오 발언에 응답하고 대항할 수 있는 주체라고 주장한다. 이는 혐오 발언이 피해자들의 역량을 결코 완전히 파괴하지 않음을 뜻하며 오히려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 발언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로 진입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버틀러가 보기에 혐오 발언이 피해자들을 종속시키고 피해자들을 불구로 만든다는 이들의 견해는 혐오 발언의 권력을 과대평가한 데서 비롯된다. 구약성경의 신이 “빛이 있으라!”라는 말만 가지고서도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마치 혐오 발언이나 혐오발화자가 마치 신의 목소리인 양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혐오발화자의 권력은 그 개별 주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에게 권력을 부여한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라는 보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관습에서 비롯된다. 개별 화자는 자신의 언어만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에게 권력을 부여해준 관습이나 이데올로기의 뒷받침을 받는 한에서만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버틀러는 혐오 발언 규제는 오래된 이념이나 관습에 대한 투쟁을 개별 화자만을 처벌하도록 국한시킴으로써 법적인 문제로 축소시켜버린다고 우려한다. 혐오 발언에 대한 저항은 관습을 끊어내지 않고서 개별  화자에만 책임을 환원해서는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버틀러는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규제는 오히려 규제를 하게 될 경우엔 혐오 발언의 피해자 내지는 수신 집단이 이 혐오 발언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담론적 수행성’을 법이 미리 제약해버림으로써 대항운동을 법적인 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한다. 나아가 버틀러는 국가의 혐오 발언 규제가 소수자 집단에 불리하게 적용되어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혐오 발언의 주된 수신 집단인 사회적 약자 진영이 혐오 발언에 대한 보상이나 시정을 요구하고자 국가에 혐오 발언 규제를 의탁하는 경우, 이는 국가가 혐오 발언을 정의하고 처벌할 권력을 자의적이고 편파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오히려 소수자 운동에 역효과를 낳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혐오 발언 전복시키기, 되받아치기

  혐오 발언이 개별 화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혐오 발언에 대한 해법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혐오 발언에 저항할 수 있을까? 버틀러는 혐오발화자는 자신의 혐오 발언이 어떠한 효과를 야기할 수 있는지, 자신의 말이 어떻게 논박당하고 저항 당할지를 미리 예측하고 내다볼 수 없다는 점을 파고든다. 다시 말해 혐오 발언 뿐만 아니라 모든 말은 화자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excitable/ex-citable) 말인 것이다. 이렇게 언어와 효과, 혐오발화자 개인의 권력과 혐오 발언의 역사성이 가지는 권력, 화자와 수신자 사이에 공백과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을 활용하여 수신자는 기존 언어적인 권력을 전유하고 전복하거나 화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하여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혐오 발언에 반박하고 되받아칠 수 있으며(speaking back), 나아가 혐오 발언에 대한 전유나 재의미부여를 통해 혐오의 권력과 관습 또한 교란할 수 있다(speaking back)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혐오 발언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온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누적되어온 관습에서 기인한다면, 그에 대한 해법은 관습에서 벗어나서 저항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혐오 발언에 대한 ‘미러링’으로 대변되는 공적 담론을 통한 말대꾸 전략이 혐오 발언의 관습 자체를 교란하기 때문에 매우 근본적이며 유용한 것임을 시사해준다. 따라서 혐오 발언에 대한 법적 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공적 담론에서의 피해자들의 언어적인 행위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인 ‘대항 발화’를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주디스 버틀러는『혐오 발언』에서 혐오 발언 내지는 혐오발화자를 신성한 권력을 소유한 견해로 간주하는 이론가들을 겨냥하면서 혐오 발언이 피해자들의 수행성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혐오 발언이 피해자들을 침묵시키고 불구로 만든다는 ‘발언내행위론’(랭턴)에 반대하여 ‘발언효과행위론’을 내세운다. 또한 법적 규제를 주장하는 규제옹호론자들(마츠다)을 겨냥하면서 이들이 혐오 발언 수신자들이 대항할 수 있는 수행성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따라서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검열 및 규제가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인 퇴보의 문제점과 대항발화를 통해 피해자들의 언어적인 행위능력과 역량이 신장될 수 있는 기회마저도 같이 검열당하거나 차단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나아가 혐오 발언이 혐오발화자 개인이나 특정 커뮤니티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해줌과 동시에 혐오 발언의 피해자들이 결코 혐오 발언의 막강한 권력 속에서 영원히 침묵하고 종속당한 파괴된 존재가 아님을, 혐오 발언에 대한 저항과 반항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조언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버틀러가 권고하는 이런 말대꾸나 전유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혐오 발언의 개인 피해자 한 명이 실제 혐오 발언 피해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으며,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는가?”라는 또다른 피해자 비난하기를 수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혐오 발언에 대한 수신자들의 응답과 말대꾸는 무엇보다도 치열한 정치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언어적인 전유나 재의미부여 또한 마찬가지이다. 피해자 집단이 스스로를 의미부여하고 재주장 할 때에만 의미가 있을 것이며, 그조차도 오래도록 퇴적된 혐오 발언의 의미를 뒤흔드는 것은 기적적으로 금방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을들의 ‘이어 말하기’가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틀러의 저서 『혐오 발언』은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의 문제점, 혐오 발언에 대한 수신자들의 저항을 비롯해서 침묵이나 전유, 언어와 권력의 문제, 검열과 표현의 문제, 언어적인 상처, 타인의 호명으로 탄생하는 주체의 문제, 언어적 생존이나 화자의 책임 등과 같은 언어와 권력, 저항에 관한 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철학적 질문들을 다룬다. 따라서 시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의 ‘상처를 주는 말’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동시대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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