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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20세기에서 퇴각하는 길 : 칼 슈미트 읽기의 현재성
[197호] 2016년 09월 26일 (월)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HK 교수
   

  △슈미트는 유럽 내 국가들이 서로를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여 실제 전투를 법제화함으로서 공존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출처:Sonama Vally Sun)

 
 

 막스 베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이냐 호전이냐를 둘러싼 논쟁에서 조국의 전쟁을 옹호하는 입장에 섰다. 베버가 전쟁 전부터 유럽 내 민족들의 평화공존을 주장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선택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심각한 실존적 번뇌를 겪었을지 상상에 어렵지 않다. 다만 베버는 조국의 생존이냐 타국과의 평화공존이냐의 양자택일로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조국의 전쟁이 유럽의 평화공존을 위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베버는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작은 민족과는 다른 독일의 역사적 사명을 환기하면서, 서유럽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문화적 동일화에 맞서 중부/동부 유럽의 여러 민족들이 각자의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것이 유럽의 평화공존이라 믿었다. 즉 그는 서유럽에서 발원한 자유민주주의의 석권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와 전통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유럽 문명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버는 독일의 전쟁을 유럽 문명의 수호라고 정당화할 수 있었다.

 칼 슈미트는 베버의 이런 입장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베버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슈미트는 베버가 생각하는 식의 유럽의 공존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베버가 문화적 다양성의 공존을 자유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입장에서 옹호했다면, 슈미트는 그런 공존을 유럽 내 주권국가들이 서로를 잠재적인 ‘적’으로 존중하는 질서에서 발원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19년의『정치적 낭만주의』에서 1920년대 초반의『독재』와『정치신학』과『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위치』를 거쳐 1927년의『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이르는 일련의 저작들은 이러한 입장에서 쓰였다. 슈미트는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라는 서유럽의 이데올로기가 상호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결국에는 각 주권국가의 자율성을 박탈할 것으로 간주했다. 궁극에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는 17세기 이래 주권의 원리 아래 각 국가가 정치적 실존을 유지했던 유럽공법(jus publicum europaeum) 체제를 붕괴시키고 말 것이기에 그랬다.

 여기서 주권을 핵심으로 하는 유럽공법 체제란 전쟁의 문명화를 핵심으로 하는 질서 체계이다. 슈미트에 따르면 주권국가 사이의 전쟁은 종교전쟁과 달리 상대방을 절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국가가 한정된 자기 이익을 위해 한정된 전쟁을 전개하는 일을 역사상 처음으로 가능케 했다. 즉 주권국가는 적을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절멸대상으로 간주하는 종교전쟁이 아니라, 서로를 동등한 전쟁 당사자로 인정하고 공존의 파트너로 삼는 ‘국제사회(international society)’의 법적-정치적 최소단위였던 것이다. 이렇게 유럽공법 체제는 전쟁과 실제 전투를 법제화하고 규칙화한 유럽 역사상 최고의 문명적 성과였다. 그러나 슈미트가 볼 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는 이러한 문명화의 성과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는 타자에 대한 상대주의적 관용이란 원칙 아래에서 주권으로 구성되는 정치적 결사인 국가를 성립 불가능하게 만들 터이기에 그랬다. 

 주권국가란 각기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율성을 가진 정치적 결사체이다. 그런데 인류는 각 주권국가를 포괄하는 보편적 주체이다. 인류란 전제 아래에서 개개인은 국가에 귀속되는 국민이라기보다는 동질적인 인간으로 규정된다. 슈미트의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의 타자에 대한 상대적 관용은 이런 원리에 의거한다. 그래서 인류 내부에는 갈등과 충돌이 없고 공존만이 존재한다. 슈미트가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를 역사상 가장 형편없는 이데올로기로 힐난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겉으로는 갈등과 충돌이 없고 지배가 없는 척 하지만,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는 매우 고약한 갈등, 충돌, 지배를 내포한다고 슈미트는 진단한다. 사태는 이렇다. 우선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라 하더라도 자기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사태가 발생하면 인류의 이름으로 응징에 나서게 되고, 그랬을 때 그 주동자는 ‘인류의 적’이 된다. 그런 한에서 그 주동자는 유럽공법 체제에서처럼 동등한 적으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절멸되어야 할 ‘비인간’이 되어버린다. 국제연맹에서 국제연합에 이르는 국제질서의 변화는 이런 이데올로기가 실정화되는 과정이었다. 슈미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종교내전이라는 야만적 전쟁을 문명화시킨 유럽공법 체제를 파괴하고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는 비판을 전개한 셈이다.

 이러한 슈미트의 주장은 문제적이다. 우선 상식적인 차원에서 슈미트의 주장과 달리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은 전쟁 권한을 가진 주권국가의 언제 있을지 모를 폭주를 저지한 ‘문명화’의 산물로 이해되어왔다. 따라서 슈미트의 주장은 이런 상식적 이해를 정면에서 거스른다는 의미에서 문제적이다. 게다가 슈미트는 1934-36년의 기간 동안 나치 공인의 공법학자였다. 그의 나치 가담이 유럽공법 체제를 붕괴시킨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에 맞서 유럽 질서를 재건하려는 의도에서였다는 변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유럽 질서의 재건이 나치즘이라는 잔인한 외투를 입고 아우슈비츠라는 미증유의 광신적 인종학살로 귀결되었기에 슈미트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슈미트의 현재성은 이런 두 가지의 문제성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가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문제적인 사상 속에서 도출할 수 있는 현재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20세기를 철저히 되묻기 위한 강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슈미트는 20세기를 석권하게 될 두 가지의 보편주의적 이데올로기, 즉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타협 없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1990년대의 냉전붕괴는 이른바 ‘역사의 종말’이란 미명 아래 자유주의-자본주의의 최종승리를 선포하게끔 만들었지만, 9.11 사태는 미국이 주도하는 보편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기는커녕 새로운 형태의 갈등과 폭력을 잉태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 갈등과 폭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슈미트가 이미 자유주의든 사회주의이든 보편주의적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이뤄지는 전쟁은 철저한 절멸전쟁으로 귀결될 것임을 예견했던 것을 감안해보면, 지금 전개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이나 국제질서의 동요는 모두 이 보편주의와 절멸전쟁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보편주의를 극복하는 데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대변되는 전체주의의 유혹은 언제든 잠재된 것으로 현재를 배회한다. 전체주의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을 곁눈질하며 유럽 근대의 질서를 넘어서는 또 다른 문명의 원리를 찾아나서는 본질론적 문명구상이 대두되기도 한다. 전체주의를 비롯한 본질론적 문명구상이 결국에는 슈미트가 말한 절멸전쟁을 궁극의 대결 형태로 전제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문제는 주권국가 질서로의 회귀도, 전체주의의 유혹도, 그리도 본질론적 문명에 대한 기대도 비껴가며 ‘극단의 세기’였던 20세기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벗어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슈미트의 혜안과 함정을 현재적으로 전유해야 한다면, 그것은 세계가 여전히 20세기에서, 그것도 20세기의 숨겨진 통치의 비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슈미트와의 조우는, 그래서, 20세기가 지나간 과거라기보다는 여전히 현재의 삶을 짓누르는 운명임을 인지하고 절망하는 일이다. 하지만 슈미트는 그 운명 바깥으로 나가는 길 또한 다름 아닌 20세기의 유물 속에서 찾아야 함을 말해준다. 결국 앞을 보지 말고 뒤를 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 전진이 아니라 퇴각할 것, 슈미트는 그렇게 20세기라는 극단의 전장에서 물러설 것을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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