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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빈 공간의 미학
파리에서 뉴욕까지, 장 자끄 상뻬 展
[196호] 2016년 06월 13일 (월) 강민정 편집위원
   
 

△ <장 자끄 상뻬, 파리에서 뉴욕까지> 전시 포스터 

 

 홍대 KT&G 상상마당에서 거장 시리즈의 세 번째인 ‘장 자끄 상뻬-파리에서 뉴욕까지’가 전시 중이다. 장 자끄 상뻬는 『좀머씨 이야기』, 『꼬마 니콜라』의 삽화가로 국내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가진 프랑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과 상뻬 특유의 아기자기한 그림체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소박하고 일상을 잘 담아내는 작가’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번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는데 주제별로 전에 볼 수 없던 상뻬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상뻬의 그림을 보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단순하다’였다. 대다수의 그의 그림은 스냅사진처럼 한 장면을 ‘포착’해내는데, 사진에 장소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처럼 상뻬의 그림에는 여백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만들어낸다. 상뻬의 그림에서 여백은 ‘부족함’이 아니다. 그곳은 ‘비어있는 공간’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림 속에 감상자의 공간을 남겨준다는 것은 그림과 소통을 가능하게끔 한다는 의미이다. 즉 상뻬의 그림은 단순히 작가가 상정한 의미의 발현, 혹은 관람객의 감정을 상기시키는 도구가 아니다. 개인과 상호적인 ‘관계’를 맺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상뻬는 친절한 작가는 아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냥, 마음대로 봐”라고 툭 던져 놓은 뒤 자신은 스쳐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한 발치 뒤에서 그림과 감상자가 나누는 서툰 대화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다. 이런 상뻬의 불친절한 배려에 감상자들은 보다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그곳에서 작가가 숨겨둔 정답, 혹은 계획된 어떤 의미를 발견해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그렇다고 해서 상뻬의 그림이 개인적이고 단순한 감상만을 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작가가 사회에게 던지는 수많은 물음들이 있다. 현실에 놓인 부조리함들, 혹은 아이러니컬한 상황들을 상뻬는 풀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사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기 때문에 수많은 생각들을 양산시킨다. 그의 그림 속에는 프랑스인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녹아 있다.

 <병든 종이> 라는 연작 속에서는 고기 한 덩이에 몰린 군중이 그려져 있다. 그 그림 속 한 가운데에 고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머리 위로 고기를 치켜들고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프랑스 혁명 당시의 깃발을 치켜들던 잔 다르크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멸망이 곧 도래한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지극히 동물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과 프랑스 혁명이 오버랩되는 것을 어떤 유머로 받아들여야 할까. 

 또한 상뻬의 삽화집 속 아이들은 ‘성장하지 않는다.’ 상뻬가 그려내는 아이들은 자전거를 무척이나 좋아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자전거를 탈 수 없거나, 부끄럼이 많아 쉽게 얼굴이 빨개지는 등 모두 조금씩은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아이들은 “성장”하기를, 보다 멋진 어른이 되기를 독촉 받는다. 하지만 상뻬는 이런 아이들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오히려 이 점은 아이들만의 ‘특별함’이 된다. 단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 개인의 특성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아이들은 틀에 맞추어진, 결함이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이 아이를 포용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성숙해가는’ 상뻬의 아이들과 세상이 맞춘 틀에서 ‘성장해야만 하는’ 우리의 아이들. 단색으로 그려진 상뻬의 아이들은 자체로도 다채롭게 빛나지만,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단색으로 물들어있지 않을까.

 사소한 것, 도드라지지 않는 일상적인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상뻬의 저력은 여기에서 발휘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고 빈 공간을 남겨둠으로써 우리에게 사색할 여유를 주는 것. 어쩌면 그가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잊고 있었던 여유로움의 의미는 아닐까. 상뻬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우리는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 먼저 말을 걸 때 비로소 드러나는 숨겨진 찬란함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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