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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개저씨와 미디어, 주둥아리의 권력
SBS스페셜 '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
[915호] 2016년 05월 09일 (월) 정의행 편집위원
   
 
   
 

  인터넷과 SNS를 떠돌던 ‘개저씨’란 단어는 얼마 전 방송된 SBS 스페셜을 통해 공중에 전파되었다. 방송은 ‘개저씨’를 기성세대와 그 아랫세대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이 단어는 주로 아랫세대들이 권력을 가진 중장년층 남성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권위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일명 ‘꼰대’라고 불리는 20-30대 남성들에게도 이 표현은 적용된다. 다듬어서 말한다면 한국사회에서 남성이라는 권력과 나이라는 권력으로 성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자신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심하게 강요하는 개념 없는 사람이라면 모두 ‘개저씨’에 해당된다. 

  사회의 일반적인 쓰임의 측면에서 보자면 방송은 너무 가볍게 세대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개저씨’를 다뤘다고 볼 수 있다. 방송에서 그들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찾은 방법은 ‘세대 간의 이해’와 ‘개저씨 체크리스트’다. 권력의 문제를 단순히 세대가 다른 임원과 직원 간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서로의 견해차를 동등하게 보여줌으로써 중립적인 척하던 방송은 결국 정체불명의 ‘체크리스트’를 보여주며 마무리한다.

  ‘개저씨’와 닮은 미디어에게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미디어 역시 권력이다. 미디어 권력 앞에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권력을 향해 할 수 있는 것은 채널을 돌리거나 댓글을 쓰는 게 전부이다. ‘개저씨’ 앞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그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을 약자들은 아무 소리 없이 다 들어줘야만 한다. 약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회사를 그만두거나 뒤에서 욕을 하는 것 말고는 없다. 세상이 이러니 TV를 틀어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온통 아저씨들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권력은 말에서 나온다. 이 방송에 잠깐 나온 어느 중소기업의 회의 장면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모두가 모인 회의지만 말을 하는 사람은 오직 사장이다. 사장이 발언 기회를 사원들에게 넘겼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중요한 사항 없습니다.”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할 때마다 말(질문)을 통제하는 것 역시 그렇다. 때문에 조선시대에서나 들어봄직한 “어디 감히 니가 주둥아리를…….” 이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방송은 이런 권력관계를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 ‘개저씨’로 대변되는 사회적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행해야 할 방식은 권력자의 변명 같은 말을 들려주는 게 아니다. 이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 들어야 하는 것은 약자의 말이다. 결국 ‘개저씨’가 없는 세상에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말을 되찾는 것이다. 최근 걸크러쉬, 가모장으로 대변되는 김숙의 등장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점을 준다. 언제나 대상화 되었던 약자(아내 혹은 여성)가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순간, 권력자(남편 혹은 남성)는 할 말을 잃는다. 발화의 권력이 동등해졌을 때, 누구 앞에서도 내 말을 할 수 있을 때, 권력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나마 권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유치한 호칭과 예의 문제 밖에 없다. 대통령을 박근혜로 부르면 쏟아지는 그 수많은 질타들, 직함이 아닌 이름을 부르면 문제가 되는 현실, 권력자와 약자가 동등하게 발화를 획득하게 되었을 때 우리를 찍어누르는 최후의 방식들이다. 그러므로 말을 해야 한다. 대통령님, 부장님, 선생님, 교수님, 사장님, 쫄지 말고 권력 앞에서 우리의 말을 해야 이 땅에 ‘개저씨’라는 말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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