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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평] 존재의 세 가지 달관법
이기호,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2016.
[195호] 2016년 05월 09일 (월) 이한나 편집위원

  “어쩐지 자신이 원고지가 아닌 삶 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기분이었다네.”라고 이기호는 소설집 앞 장에서 수줍게 고백한다. 그리고 곧이어 이 한 문장을 40편에 달하는 소설 전체에 걸쳐 길게 늘인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에 등장하는 소설 대다수에서는 ‘오해’와 ‘오해 풀림’의 과정이 반복된다. 중학생 아이에게 폭언 및 협박을 하여 고소당한 53세 중년 남성이 “그게…… 태연 양 때문에 그랬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은 아이돌의 험담을 하고 다닌 중학생을 응징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밝힌다거나(「벚꽃 흩날리는 이유」), 날마다 계속되는 위층의 소음이, 알고 보니 손자를 죽은 (그리고 바람난)남편으로 착각하여 매일 뒤쫓는 치매 걸린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고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밝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손자 간의 뜀박질 소리였다거나(「한밤의 뜀박질」), 자꾸만 요양원을 탈출하는 치매 걸린 어머니가 실은 죽은 남편이 그리워 그의 무덤가를 찾는 것이었음을 늦게야 깨우친다거나(「봄비」) 하는 식으로 ‘오해 풀림’으로 소설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졸업과 동시에 7급 공무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7급에서 9급으로, 노량진에서 다시 동네 공공 도서관으로” 옮겨 다니며 끝내 “낙오자”가 되어버린 인물(「그녀와 마주한 어느 오후」) 혹은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마음껏 헌팅을 하겠다는 기대에 가득 차 일을 하지만 “더위를 먹어 연신 침을 흘리고, 화상을 입어 다리를 저는” 안쓰러운 상황에까지 직면하고 마는, 바로 이러한 인물들(「비치보이스」)이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의 주인공들로 등장한다.

  이러한 ‘안쓰러운’ 인물들의 등장과 오해와 오해 풀림이라는 서사 구조의 반복은, 말했듯 삶에 관한 작가의 자세를 면밀히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 안쓰러운 인물에 관한 그간의 오해가 풀렸을 때, 소설 속 주변인들은 크게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아무 일 없던 듯 무시하거나, 순진함을 조롱하거나, 혹은 동정심, 아니 측은지심을 느낀다. 

  이 중 오해를 받아온 인물들을 다시금 무시하거나 “어쩜, 그렇게 순진하지?”와 같은 말로 이들의 순진함을 조롱하는 것(「말처럼 쉽지 않네」)은 쉽다. 그러나 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 즉 측은지심을 느끼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이기호는 오해 받는, 필연적으로 오해 받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온 이들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귀결이 되어야 한다는 듯 소설 대다수의 결말부를 측은지심의 발현으로 끝맺는다.

  「그녀와 마주한 어느 오후」의, 공무원 시험에 모두 떨어진 채 “낙오자”로 살아가는 상호는 젊은 여자 보험설계사로부터 전화가 잘못 걸려오지만, 스스로 ‘채현종 사장님’으로 행세하여 그녀를 만나기로 한다. 약속 장소에 나간 그는 여자의 “그래, 철민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오늘 중요한 약속 때문에 그랬어.”라는 통화 내용을 듣고 그대로 집에 돌아가려 하지만 “엄마가 다음엔 학교에 꼭 갈게. 진짜야.”라는 말을 이어 듣고는 용기를 내어 다가가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한다. “저기요…… 저는 김상호라고 하는데요…….”라는 말과 함께 짧은 소설은 끝이 난다. 

  「동물원의 연인」 역시 이와 유사하다. 서른 살에 “기적적으로” 여덟 살 연하의 첫 여자친구, 주경을 사귀게 된 ‘그’는 세 번째 데이트 장소로 부도 직전의 동물원을 고른다. “사람도 없고 한적하고 좋지 뭐.”라는 간단한 생각으로 동물원으로 향하지만, 그 곳에서 그와 주경을 맞이하는 것은 무성한 풀들과 방생된 닭과 토끼, 그리고 “두 발로 선 채, 마치 구걸을 하는 사람처럼 한 손을 우리 밖으로 내밀며 울부짖”는, 그래서 “중학생들이 구걸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달가슴곰들이다. 반달가슴곰들을 바라보며 주경은 “어떻게 좀 해봐요.”라고 울먹이고 그는 도시락으로 준비한 김밥을 곰들에게 던지며 이것이 동물원 속 동물들의 “숙명”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녀와 마주한 어느 오후」의 상호가 여자의 삶에, 불행에 공감하여 도움을 주려 했다면, 「동물원의 연인」의 주경이 울부짖는 곰들을 바라보며 함께 울먹거렸다면, ‘그’는 조금 더 나아가 일종의 ‘숙명’을 깨닫는다. 즉 ‘그’는 전적으로 대상을, 타인을, 그를 둘러싼 세계의 필연까지를 포괄하여 이해하려 든다. 맹자가 “자기 한 몸을 넘어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데 작용하는 덕”인 인(仁)을 들어 가까운 타인에 대한 이해가 결국 사회에 대한 이해, 세계에 대한 이해, 결국 다시 ‘나’에 관한 이해로 돌아온다는 점을 강조하며 측은지심에 대해 설명했듯 말이다. 

  오해를 산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 특히 그를 둘러싼 모든 것, 즉 숙명에까지 다다른 깊은 이해에 대한 이러한 고찰은 이기호가 소설집을 통해 담아내려던 나름의 삶의 철학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타인을, 그를 둘러싼 모든 것까지 고려하여 깊이 이해하는 모습을 작가는 정확히 40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허심탄회한 이 말이 기어코 독자의 입에서 나오게 한다. 타인을 깊이 이해하고 나면, 오해를 풀고 나면, 정말이지 납득되지 않을 것 같던 모든 것이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게끔 변하고야 마는 마법 같은 이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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