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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간] ‘사랑’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소설
내 인생의 책
[195호] 2016년 05월 09일 (월) 정용준 소설가
   
     

  소설을 쓰는 자로 꿈이 있다면 죽기 전에 끝내주는 연애소설을 한편 써보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하는 것, 누구에게 사랑 받는 것, 누군가와 함께 사랑하는 것, 혼자 사랑하는 것, 몰래 사랑하는 것, 위험하게 사랑하는 것. ‘사랑을 하는 경험’은 누구나 겪는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건이지만 ‘사랑을 하는 그 경험’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가장 사적이고 특수한 사건이기도 하다. 때문에 연애소설은 소설의 세계에서 가장 닳고 닳은 그렇고 그런 소재이지만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중 가장 강력하고 호소력 짙은 영원한 소재이기도 하다.

  ‘아, 사랑이란 이런 거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거구나.’ 이 깨달음은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약 십년 전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이다. 충격적인 경험까진 아니었지만 한동안 나를 골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소설 속의 인물들을 뇌리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그들의 기괴한 행동과 그들이 보이는 비극적인 삶의 태도를 마치 숙제처럼 계속 떠올리며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인상은 지금도 내 안에 강력하게 남아 있다. 그 책은 카슨 메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이다. 왜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바보가 되는가. 왜 그토록 약해지는가. 그렇게 무너졌는데도 어찌하여 어찌할 수 없게 되는가. 이런 의문들에 대한 너무도 명쾌한 소설적인 대답이 있었다. 가령 이런 문장들 때문이다.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다.”

  사람들의 감정은 왜 이토록 엇갈리는 걸까.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면서도 누군가는 더 좋아하고 누군가는 덜 좋아하는가. 그것은 왜 힘들고 그것은 왜 그토록 인간을 뒤흔드는가. 라는 질문에 너무도 명료한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러는 걸까? 사랑에 빠지면 인간은 왜 그렇게 무모하고 약해지는지는 걸까? 소설은 이렇게 답한다.

  “간혹 사랑 받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의 연인을 속속들이 알려고 하기에 그런 것이다. 사랑하는 이는 아무리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한 모든 관계를 맺기를 갈망한다.”

  아무리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한 모든 관계를 맺기를 갈망하는 것. 이 문장 하나로 나는 내 주위에 일어난 이해할 수 없었던 몇몇 사건들과 몇몇 사람들을 마침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슬픈 짐승』을 읽게 된다. 나는 아직도 그 책을 읽었을 때의 풍경과 내 마음이 겪은 감각의 새로움과 놀람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후 세시였고 커튼을 내린 방은 어두웠다. 이불 속에서 온종일 누워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얇고 까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한 5쪽 읽었을까? 나는 너무 놀라 자세를 고쳐 앉고 거의 책을 품에 감싸 안 듯 몰두하며 독서를 시작했다. 오래 전 사랑에 빠졌던 이가 그 경험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남은 삶을 포기한다. 스스로 사회적인 죽음을 선포하며 슬픔에 빠진 동물처럼 늙어간다. 소설엔 그런 인물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현실 세계와 사회적인 담론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실패자로 여긴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다. 몰락하는 자가 보여주는 어찌할 수 없는 삶의 태도와 그 무모함과 어리석음이 어째서인지 너무나 아름답고 그 어떤 인간보다 인간적으로 보인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 가장 아름다운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슬픈 짐승』을 말한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 준 소설이 아닌 내려진 답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준 소설이 있다. 이 책을 말할 수 있어 너무 기쁘다. 그것은 존 쿳시의 『추락』이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불륜소설이다. 불륜이라니, 세상은 그 같은 사랑의 형식과 감정에 아무 이름도 붙여주지 않는다. 다만 판단을 내릴 뿐이다. ‘윤리가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하지만 다들 너무도 잘 알겠지만 우리 인간들의 행위는, 그 피는, 그런 판단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윤리에 의해 사랑에 빠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추락』은 행위는 인정하나 그 행위에 대한 해석은 거부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완전히 추락하고 몰락했지만 끝까지 자신의 인간됨을 잃지 않고 담담히 자존감을 지켜가는 태도는 지금도 내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질문 자체가 어쩌면 대답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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