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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프라임은 서브프라임이 될 것이다
인문학은 ‘상품’, 위기에 처한 건 인문학이 아닌 ‘어떤’ 인문학
[195호] 2016년 05월 09일 (월) 채효정 정치사상연구자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해
   
  ▲ Spencer Walts (출처 Pixabay)  

  인문학에 또 위기가 도래했는가? 근래 다시 ‘인문학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대학가를 떠돌며 싸우고 있다. ‘프라임’ 때문이다. ‘프라임’이 뭔가요? 사람들은 묻는다. 내가 있는 대학도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지만 프라임 사업 신청을 하지 않은 학교나 대학 바깥 사회는 대체 프라임이 뭔지 아무도 모른다. 알아듣지 못할 암호 같은 말은 일부러 그렇게 붙인 것 같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초대형 대학구조조정 프로젝트 중의 하나인 프라임(PRIME) 사업이란 ‘산업수요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 지원 사업이다. 교육부가 요구하는 대로 입학정원 10% 이상을 조정하고 신설학과를 만드는 등 구조조정을 하는 대학들을 선정하여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이 사업방식은  IMF나 월드뱅크가 지원금(투자금)에 대한 대가로 채무국에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이 프라임 사업이 인문학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프라임 사업’은 산업수요에 맞지 않는 인문·예술계열 학과를 정리 통폐합하거나 정원을 축소하여 이·공계열 정원을 늘리도록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그래서 지금의 위기론에서 인문학의 반대편에 서있는 대상은 ‘공학(과학)’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인문학 죽이기’나 ‘인문학의 위기’라는 인식이 과연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도록 하는가? ‘인문학 강화, 공학 약화’라든가,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냐, 취업준비학원이냐’, ‘학문을 탐구하는 연구기관이냐,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냐’는 식의 대당구도 속에서 보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인문학 위기론은 주기적으로 도래하는 것 같다. 몇 해 전에는 ‘경제 인간(homo economicus) 대 인간다운 인간 (homo humanitas)’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도서관, 박물관, 문화센터, 백화점, 마트, 곳곳에 인문강좌를 안하는 곳이 없다. 서가에서 잘 팔리고 있는 인문도서 대부분이 힐링, 심리, 처세, 자기계발, 스펙용 인문교양도서들이다. 사장님도 시장님도 인문강좌를 좋아하신다. 어떤 기업들은 사원들에게 인문강좌를 ‘사내 복지 서비스’로 제공한다. 인문학이 교육시장에서 완전한 ‘상품’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위기에 처한 것인 인문학 일반이 아니라 ‘어떤’ 인문학이다. 지금 대학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비판적 인문학, 저항적 인문학, 민중의 인문학, 그리고 이 땅의 인문학이다. 반면에 달콤한 인문학,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인문학, 지배엘리트들을 위한 교양(ars liberalis, liberal art), 서양의 주류 학문으로부터만 자양분을 얻는 제국의 트랜드 인문학은 여전히 살아남아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투자금이 밀려오고 산학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취업이 보장되고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이 쇄도하는 과학 분야는 도대체 어디인가? 적어도 기초과학 분야는 아니다. 기초과학은 오늘날 기초인문학과 마찬가지로 고사 직전에 있다. 이 나라 기초과학은 이웃나라 일본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릴 때만 그 초라함이 드러나고 동정과 분노의 대상이 될 뿐이다. 부상하고 있는 분야는 ‘융합과학’이다. 그런데 프라임 사업과 융합과학 분야는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이공계 정원을 늘리려는 이유는 바로 이 융합과학 분야를 신설해야할 필요 때문이다. ‘융합 교육’의 진짜 이유는 문과, 이과를 융합하여 학생들을 미래의 불확정성에 대응할 수 있는 융합형 인간으로 교육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그렇게 보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융합 담론’은 융합‘산업’분야를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프라임 사업이 집중 지원하는 것도 결국 나노, 바이오, 생명, 유전자, 공학 기술 분야인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 분야는 모두 미래의 노다지 산업이다.

  바로 이것이 인문학의 또 다른 문제다. 통섭·융합을 사회적 화두로 만들어 놓은 것은 융합과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책임질 건가? 인문학자들은 보통 그것을 선의로 해석해왔다. 학제간 장벽을 허물고 보다 전인적인 인간을 기르자. 융합적 사고를 하자. 통섭 교육을 하자. 마치 그것이 근대 학문 분과 체계가 만들어 놓은 지식과 기술의 기능적 분업화를 극복해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통섭·융합 담론이 유행하고 그것이 지향해야 할 어떤 사회적 가치로까지 부상된 이후에 이 담론의 지배로 인해 가장 크게 이득을 본 분야는 인문사회과학이나 기초과학분야가 아니다. 지금도 이들 분야에서 학문융합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학문융합이란 결국 융합과학에 대한 인정과 확장이었고 돈도 대부분 다 그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나노공학이나 유전자공학 같은 융합과학들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연구기반시설, 연구인력, 연구개발, 기술투자 등 막대한 자본이 들고, 또한 학문단위를 ‘융합’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분야라는 것이다. 거대 자본, 국가의 제도적 정책적 지원, 학문 융합 외에 GMO나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논란이 되는 윤리적 쟁점과 예측불가능한 고도의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다. 만약 기업에서 상품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위해 그런 연구소를 하나 만들려면 엄청난 초기 자본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윤리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이 모든 부담을 대학에 떠넘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대학으로서는 국가용역사업 체결시 들어오는 10%의 이윤과, 산학협력관리기금도 챙길 수 있고 지원금으로 신규 건물이나 연구 설비 등 대학의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이득이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입학정원을 줄였으니 등록금 수입에서 손해를 볼 것이라고 미리 걱정해주며 대학들이 교육용 자산을 수익용 자산으로 용이하게 변경 매각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대학구조개혁 시행령’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물론 줄어든 정원은 정원 외로 들어오는 외국인 유학생이 자리를 채워줄 것이지만 그것은 모른 척 한다. 그것도 모자라 ‘산학협력 5개년 계획’을 통해 대학지주회사를 설립하여 대학이 아예 기업이 되라며 또 지원금을 주고, 학생 정원이 줄어들면 그만큼 유휴공간이 생길 터이니 기업이 대학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물 면적을 4배가 넘게 늘려주겠다고 한다. 지금도 공간이 부족해서 70명 80명씩 앉아서 수업을 듣는 곳이 대학이다. 초중고 교실에서도 사라진 ‘콩나물 교실’이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는 대학에서만은 지금도 버젓이 남아있다. 심지어 그런 환경에서 ‘토론수업’을 하라고 한다. 그런데도 더 많은 공간을 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니 노골적으로 ‘임대장사’를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대학으로 들어가는 공적자금을 감시하고 대학 공공성을 지켜야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이다. 

  이처럼 서로 면밀히 연관되어 있는 ‘프라임사업-산학협력 5개년 계획-대학구조개혁법’은 정부가 기업과 대학에 주는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프라임에는 2062억, 산학협력에는 5년간 1조 2천억, 대학구조개혁법으로 얻게 될 대학과 기업 수익이 얼마나 될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교육부-대학-자본이 결탁하여 세금과 공적자원을 빼돌리는 거대한 국민사기극이자 명백한 국고횡령이다.

  대학공공성 파괴, 대학의 사유화는 ‘학문융합’, ‘미래인재양성’, ‘대학혁신’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추진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니듯이 이런 개념들은 언제나 순수 개념과는 정반대의 다른 현실을, 그 뒤에 도사린 위험성을 감추고 있다. 개념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의 언어가 가진 의미를 포착하고 감시하고 해석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비평인문학이다. 시대의 정신과 현상을 읽고 해석하여 자기의 언어로 표현하고 알릴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저항적 비판적 인문학자들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비평인문학은 오늘날 ‘죽어야할 인문학’이 되어 고사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위험한 인문학과 불온한 인문학자 역시 대학에서 고립되거나 축출된다. 반대로 오직 허용된 범위 안에서, 오직 이론적으로만 급진적이며 따라서 지배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인문학자들은 인문시장의 스타가 된다. 남의 나라 이야기, 먼 옛날 이야기, 일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또는 중간 시민계급의 지적 허영을 채워줄 교양 인문학으로 그들 자신을 스스로 지성과 양심을 갖춘 사람들로 믿게 해주는 영혼의 심리치료사들, 이들은 스피노자를 좋아하지만 렌즈기술자로 살면서도 자신의 지적 신념은 지키려 했던 스피노자의 삶은 외면하며 그람시의 글에서는 감동을 받지만 그 글이 탄생한 감옥은 거부하고, 지젝과 푸코는 고급 포도주와 치즈처럼 소비한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다. 대학 재단이 돈 잔치를 하고 전임교수와 정규직들이 전리품을 나누는 동안에도 가장 낮은 자리의 사람들은 제일 먼저 쓰러지고 잘려나간다. 대학에서는 강사와 대학원생 조교들, 비정규직 연구원과 직원들이 그 자리에 있다. 2015년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는 45명의 강사가 ‘교과개편’이란 이름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정리해고 되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스탠포드식 잔디로 아름답게 단장한 이 대학에 4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가 다녀갔고 7월에는 ‘공산주의자’인 지젝이 온다. 조선 산업은 2만명의 실직자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는데 조선 산업 호황기에 만든 선박제조학과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지젝에게 물어볼까? 프라임은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반드시 언젠가 고통을 동반하며 터질 것이다. 그 고통은 프라임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이 지지 않는다. 그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어디에 있는가? 비판적 인문정신의 치열함이다. 이 글은 어딘가에 아직도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인문주의자들에 대한 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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