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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거장의 부산물들
스탠리큐브릭 전
[194호] 2016년 03월 21일 (월) 정의행 편집위원
   
 
  ▲ Stanley Kubrick, Lolita, 1962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진행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기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찾아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난 1999년 사망한 스탠리 큐브릭은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미국 감독 중 하나이다.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같은 풍자극에서부터, SF, 전쟁,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고, 〈시계태엽오렌지〉와 같은 문제적 작품까지 선보였다. 하지만 이런 폭넓은 그의 영화 편력이 그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양한 장르 속에서도 자신만의 특성들을 보여주었다. 흑백영화에서 시작한 필모그래피를 보며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는 빛을 이용한 영화적 표현에 능수능란했다. 영화 <베리 린든>에서 그는 촛불만을 활용해 모든 빛을 통제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에서 보여지듯이 완벽한 촬영준비를 통해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완성도 높은 영상들을 관객들에게 선사하였다. 
  이번 전시회는 그런 그의 영화를 감상하기보다는 한 완벽주의 감독의 영화적 부산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세세하게 짜인 영화제작 스케줄 표에서부터 섬세하게 계산된 세트 구성도, 영화에 등장하는 작은 소품까지 우리는 감독이 어떻게 영화를 준비했고 만들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전시는 영화별로 구성되었는데, 전시 대상이 바뀔 때마다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과 시놉시스를 배치해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이더라도 쉽게 영화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이런 구성은 클립영상과 모바일기사에 익숙한 관객들을 위한 좋은 길라잡이가 되었다. 그리고 각종 제작사진, 영화스틸을 보고나면 마치 우리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시를 감상하는 것으로 우리가 그의 영화를 이해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관람한 것은 180분의 영화 중 단 2-3분의 영상과 수백 장의 시나리오 중 A4용지 반장 분량의 줄거리 요약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지 않고도 그 영화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 드라마를 다 보지 않고도 드라마를 봤다고 생각하는 착각, 우리는 어쩌면 이런 착각에 너무 익숙해 있는지도 모른다. 고작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전시장을 돌아다니고도 우리는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전시회는 친절하게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그의 영화를 온전히 이해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울 것이다.  
  어쩌면 이 전시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감상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관객들을 위한 전시일지도 모른다. 눈을 끄는 다양한 소품들 사이에서 우리는 그가 적은 콘티 옆 한 줄의 코멘트를 볼 수 있다. 또한 사전 작업을 하기 위해 그가 직접 적어 만든 카드 서랍을 볼 수 있다. 그의 영화를 챙겨본 관객이라면 이러한 그의 체취에서 마치 전설 속 야구선수의 배트, 혹은 축구선수의 유니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없는 지금, 과거 속으로 점점 잊혀 가는 거장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면 이 전시회는 작게나마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감독의 작품도 아닌 영화의 부산물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도, 혹은 그의 유명세에 전시회를 찾은 사람도 모두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전시장에 영화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마저 없다면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박제되어 버린 거장의 유물들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 전시회는 전시만으로 온전한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우리가 이 전시회에서 원하는 것이 단순한 지식의 확장도 체취의 감상도 아니라면, 서울시립미술관을 구경하고 나오는 것만으로 끝나선 안 될 것이다. 전시를 보고 나온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영화를 찾아 플레이버튼을 눌러 진짜 그의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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