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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서평] 기억을 위하여
Hans-Peter Bayerdörfer und Jörg Schönert, Theater gegen das Vergessen: Bühnenarbeit und Drama bei George Tabori, Niemeyer, 1997
[194호] 2016년 03월 21일 (월) 고해종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 강사
   

  최근 위안부 문제가 화제이다. 한일 양국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많은 한국인의 공분이 이어진 한편,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날선 여론이 아직 다분히 존재한다. 생각해보건대 우선 피해자가 이중의 불가역한 일을 강요당하는 기이한 사태에 대한 공분은 이해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 오히려 다소의 이물감이 남는다. 이를테면, ‘객관성’과 감정은 적대적인가? 같은 저자의 또 다른 저서인 『화해를 위하여』는 맥락에서 소거되어 있는 듯 보이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감상적으로만 수용해야 하는가?
  도대체 과거는 어떻게 취급되어야 하는가? 기억은 과거에 대해 현재가 취하는 태도로서 어떻게 정위되어야 하는가?
  과거와 기억이라는 테마가 본질적으로 시간 지평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우선 이에 대해 논하자. 현재라는 시간적 차원은 흔히 과거와 미래 사이에 위치하는, 스쳐가는 순간으로 규정되곤 한다. 이러한 시간은 두께가 없다. 현재는 스쳐 지나가서 과거로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반대로 시간은 두께를 지닌 것이다. 즉, 현재라는 시간은 객관적 사실로서의 경험(Erfahrung)과 주관적 겪음으로서의 체험(Erlebnis)으로서 과거에 퇴적물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두꺼운 시간으로서 과거는 미래를 함축한다. 만약 인간이 행복을 소망한다면, 그 행복은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들을 품은 과거 속에 가능성의 양태로 응축되어 있으며, 이러한 과거는 실제로 일어난 사태보다 풍성하다. 그러므로 미래는 과거와 분리되기보다 그 안에 있으며, 벤야민의 말처럼 “삶의 진정한 척도는 기억”이다.
  본서는 과거와 기억을 다루는 하나의 연극적 시도를 제시한다. 연구대상인 조지 타보리(George Tabori)는 헝가리계 유태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 대학살을 경험하였는데, 연극을 온전한 기억을 위한 방법으로 제시하는 바, 그의 연극 작업은 ‘기억의 연극’으로 불리곤 한다. 이 때의 ‘기억’은 회상(Erinnerung)으로서 경험의 내면화를 포함하는 개념인데, 타보리의 연극은 유태인 대학살의 트라우마를 대상 기억으로 삼아 이루어지지 못했던 과거의 가능성들을 신체를 통해 온전히 체험하고, 그것을 현재의 두께로 다시 포섭하고자 한다. 요컨대 신체의 물성으로 담보된 시간의 두께가 연극적 체험의 무게를 구성하며, 과거는 이러한 기억의 과정 속에서 경험들과 체험들 사이의 대화로서 온전히 현재에 용해되며, 이렇게 온전해진 기억만이 정당히 망각될 수 있다.
  페터 바이스로 대표되는 기록극의 양식과 비교할 때, 그의 연극은 과거를 객관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적 승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고통의 객관화는 서사를 결여한 채 습관적인 집단 기억의 정념으로 전락하기 쉬운 까닭에 과거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기 어렵다. 아렌트의 제안처럼 용서가 동해(同害) 반복적인 불가역성으로부터의 해방을 개시할 수 있다면, 그에 선행해야 하는 것은 온전한 기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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