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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말하다] 필리버스터와 근원적 정치
[194호] 2016년 03월 21일 (월)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지옥이 있다는 가정 하에 그곳으로 떨어진 이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의 지옥 표상을 염두에 두자면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온갖 고문도구와 집행인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 것일지 상상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육체적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그것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절망일 것이다. 이 고통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 아마 이것이 육체적 고통보다 견디기 힘든 절대적 절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조르조 아감벤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 신학에 따르면 중단도 종말도 없는 딱 하나의 제도(institution)가 있다. 바로 지옥이 그것이다.” 최근 인구에 회자되는 ‘헬조선’이란 말에 담긴 뜻은 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말은 대한민국에서 사는 일의 고단함을 표현한 것이라기보다, 근원적으로 대한민국이란 제도의 중단과 종말을 촉구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것이 헬조선의 정치적 메시지이다.  
  한 번만 더 아감벤의 말을 인용해보자. “교회는 스스로의 종말과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살아 있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일단 여기서 교회나 기독교 자체에 대한 논의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는 말자. 성당에서 성직자들을 상대로 한 발언이라 교회와 메시아니즘과 기독교 신학이 이 발언이 속한 글의 전체 맥락이지만, 이 발언을 아감벤의 다양한 논의들 속에 위치시켜보면 교회란 온갖 제도 전부를 대표하는 것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위의 발언은 지상의 모든 제도는 스스로의 종말과 직접적인 관계를 지속할 때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말로 해석 가능하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정치란 바로 스스로의 종말과 직접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제도(institution)가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자. 칼 슈미트는 가톨릭교회를 ‘반대물의 복합체(complexio oppositrum)’라 정의했다. ‘가톨릭(Catholic)’이란 말이 ‘전체 아래에(Kata-holic)’란 그리스어 어원에서 비롯된 데서 알 수 있듯이, 가톨릭교회란 모든 지상의 대립을 해소하여 질서화하는 복합체인 것이다. 슈미트는 지상의 온갖 대립을 분열과 무질서인 채로 방치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게끔 하는 가톨릭교회의 힘을 ‘제도적’이라 말한다. 물론 제도의 의미를 규명하는 방법이나 맥락은 여럿 있을 수 있지만, 기독교 정치신학이 근대정치의 원천 중 하나임을 감안할 때 제도에 대한 이런 정의에는 음미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슈미트가 정의한 가톨릭교회의 제도적 성격은 ‘법’ 혹은 ‘규칙화’이다. 그것은 교황을 광신적 예언자들과 구분하여 예수의 ‘대리인’로 규정했으며, 성직자들을 하나의 위계질서 속에서 객관화했다. 또한 의례를 표준화하여 공공적 규칙으로 규범화하기도 했다. 이런 제도의 성격을 염두에 두자면, 정치가 강제력을 통해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인 한에서, 제도의 정치적 의미란 분열과 무질서를 객관화된 합리적 규범 아래 통제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즉 제도란 인간의 통제 불가능한 광신이나 갈등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 아래에 통제하려는 행위와 규범의 총체인 셈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종말과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제도란 근원적으로 곤란한 전망이자 주문이다. 제도가 애초에 질서를 지향하는 것인 한, 스스로의 종말은 분열과 무질서를 의미하기에 제도가 그것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감벤이 무책임한 급진주의자 혹은 묵시론적 종말론자로 간주되는 것도 수긍이 갈만한 이야기다. 근대뿐만 아니라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 눈을 돌려도, 현행 제도를 끝내고 새로운 제도로 이행하기 위한 호소나 노력이나 실천이야말로 정치란 말에 값하는 것이었지, 제도 자체가 스스로의 종말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라고 주문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기가 사는 정치공동체를 지옥으로 표현하는 상황에서 과연 동서고금의 정치적 지혜는 여전히 설득적일까? 이 제도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는 목소리에 기성의 정치적 해법은 전망을 제시하는 것일까? 그래서 억지스럽게 보이는 아감벤의 주문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제도가 스스로의 종말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얼마 전 한국 의회사에 한 획을 긋게 될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필리버스터 말이다. 테러방지법의 성립을 저지하기 위한 이 실천은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모든 실천이 어떤 목적의 실현을 위해 수단화되는 것이 기성의 정치 문법이라면, 필리버스터는 하나의 수단이자 실패한 실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를 통해 목격한 것은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실천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실천이었다. 연주자는 연주를 하고 구두 수선공은 구두를 수리하며 요리사는 요리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치적 동물이라 명명했듯이 인간에게 고유한 실천은 언어와 정치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거나 실현시키는 실천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행위 자체가 행위 바깥의 무언가를 위해 소진되거나 착취되지 않는 순수행위이다. 정치가 난해하고 고귀한 실천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 속에 중단과 종말을 초래하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의 중단과 종말은 새로운 제도의 창출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 속에서 제도가 강제하는 규범의 힘을 거스르는 몸짓이다. 국가로 대변되는 정치적이고 법적인 제도가 스스로의 존속을 위해 인간의 온갖 행위를 규제한다고 할 때, 그리고 인간의 행위 하나하나가 그 규범에 비추어 의미화된다고 할 때, 인간의 행위는 행위 바깥의 질서에 종속된다. 제도 속의 인간은 제도를 준수하는 기계공인 셈이다. 이 기계-제도는 카프카 『유형지에서』의 사형기계처럼 중단도 모른 채 인간의 몸짓을 옥죄고 뒤틀고 찢는다. 스스로의 작동을 위해서. 정치란 그래서 이렇게 자기 행위가 제도의 작동을 위해 종속되고 수단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일이다. 즉 제도가 스스로의 중단 및 종말과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제도 안에 정치를 내재화시켜 사람을 부품이나 수단이 아닌 인간 자체로 살게끔 하는 실천을 뜻하는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음으로써 목적 실현 따위보다 근원적인 정치를 눈앞에 펼쳐보였다. 물론 실제 현실 속에서는 성취되어야 할 목적이 있고 효율적인 수단으로 실천을 도구화해야 하는 국면이 허다하다. 그러나 그런 목적-수단의 실천 속에서도 몸짓의 순수한 고유성은 삭제될 수 없다. 기성의 정치 문법이 항상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만을 가늠하고 기억하도록 ‘비정치’를 강요하기에 몸짓의 고유성이 망각될 뿐이다. 목적-수단의 연쇄와 더불어 굳건히 서 있는 제도 속에서 과연 이 망각을 이겨내고 진정한 정치를 구원할 수 있을까? 헬조선이란 종말을 모르는 악몽같은 지상의 제도 속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역사 속에서 패배나 희생이란 미명 하에 승리와 성공의 밑거름으로만 기억된 몸짓을 부활시켜야만 한다. 필리버스터는 그런 부활과 접속되는 한에서 헬조선의 중단과 종말의 표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정치는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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