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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고립된 청춘들의 연대와 상생
홀로 그리고 함께
[194호] 2016년 03월 21일 (월) 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교수
   

△ Kathe Kollwitz, Solidarity, 1932

  사람은 누구나 결국은 혼자다. 인간의 실존은 고독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존재인 까닭에 고독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혼자는 외롭다. 그러나 그것이 고독이냐 고립이냐에 따라 다르다. 불행히도 그 둘을 구별하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고독은 ‘자율적 고립’이고 고립은 ‘타율적 고독’이다. 우리는 고독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이 미흡하다. 인간의 사상과 문화, 그리고 예술과 영성 등은 고독의 힘겨운 숙성을 통해 발아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어설프다. 고독을 감내하지도 못하고 구별조차 되지 않으니 고독이 빚어낸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면서 패거리 문화에만 휩쓸린다. 
  인간과 사회의 가장 기본적 토대는 ‘자유로운 개인’의 완전한 보장과 실현이다. 그것은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다.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와 퇴행은 바로 그 핵심적 가치를 외면하고 억압하는 데에 있다. 민주주의와 정의 등의 가치의 핵심은 바로 자유로운 개인에 대한 완벽한 보장과 실현에 바탕을 둔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점증하는 싱글족의 출현은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다. 물론 제도와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갈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요인은 경제적 자립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성이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 공감능력이 없다. 예를 들어 50대와 40대는 직업을 얻는 데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어느 정도 취업이 보장되었던 시기에 살았다. 현재의 삶은 어려워도 취업을 통한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있기에 미래를 설계하고 결혼을 꿈꿀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은 경제적 가난에서 풍요로 점점 발전했다. 그러나 30대부터의 삶은 그들과 달라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의 조건은 갈수록 열악해졌고 취업은 힘들어졌다. 이른바 ‘88만 원 세대’의 출현이 일반화되었다. 그들은 풍요로운 가정에서 시작되었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삶이 기다릴 뿐이다. 이런 점에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간극은 정반대의 방향이기 때문에 공감이 불가능하다. 이 괴리는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대해서도 엇박자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적 고립’으로서의 고독의 삶은 불가능하다. 존엄한 인간으로 태어난 개인은 누구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경제적 사회적 여건은 악화되어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미래 가치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대책 마련이 모색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힘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는 당장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에만 몰두할 뿐 미래 가치에 대한 인식도 위기의식도 부족하다. 그러니 미래 의제(agenda) 도출에 번번이 실패한다. 
  작년부터 시작되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른바 ‘먹방’ 혹은 ‘쿡방’의 유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살림살이 좋아지고 경제적으로 넉넉해져서 보다 좋은 것, 맛있는 거 먹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청년들의 삶은 더더욱 그렇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우니 일단 아무 일이나 뛰어든다. 생존을 위해서다. 하루 종일 몸 놀려 일하면 녹초가 된다. 그렇게 고단하게 일해서 겨우겨우 최저생계비쯤 번다. 혼자의 삶을 원해서 청춘들이 사랑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고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포기한다. 사랑을 포기하는 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두렵고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은 그에 대한 두려움을 공감하지 못한다.
  사람은 욕망의 존재다. 인간의 욕망은 의지적 욕망과 본능적 욕망으로 나뉜다. 의지적 욕망에는 권력, 재력, 명예 등이 해당되고 본능적 욕망에는 성욕과 식욕이 포함된다. 그런데 현재의 삶으로는 의지적 욕망의 실현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남는 건 본능적 욕망인데 사랑을 포기하는 현실이니 식욕밖에 남는 게 없다. 동물도 짝짓기를 하는데 인간은 성욕조차 정상적으로(?) 충족하지 못한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그런 현상들이 이른바 먹방과 쿡방에 대한 소구력의 바탕이라는 건 끔찍한 일이다. 
  그런 상황이니 헬조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금수저 흙수저 타령이 이어진다. 사회적 안전망도 없고 삶을 재구성 재설계할 수 있는 사회적 교육시스템도 없다. 그러니 모든 개인은 각자도생인데 부모의 권력과 재력에 의해 계급처럼 딱 갈라지니 절망스럽다. 이런 현실에서 연대와 상생이라는 건 솔직히 공염불에 가깝다. 그러면 이대로 절망하고 포기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삶은 누구에게나 존엄한 것이다.
  자립된 개인, 즉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연대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겠지만 이미 경험한 것처럼 파편화되고 형해화된 개인뿐이다. 고독의 개인이 아니라 고립된 개인이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상생이 가능한가?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바닥을 쳤을 때 희망이 있다. 사회적 정의가 무시되고 소수 권력과 재력 독점자들이 전횡하는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거기에 굴복하면 영원히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연대와 상생이 단순한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너를 밟고 내가 올라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1:99의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래서 희망이 보인다. 
  99%가 뭉쳐야 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 미래의제를 도출하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선거는 단순히 어떤 인물을 뽑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대정신을 고민하고 미래의제를 제시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각 세대가 민주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직사회 속에서만 살았다. 명령과 복종, 가르침과 수용의 틀 속에서 살았다. 속도와 효율만 강조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20세기로 끝났다. 이제는 창조, 혁신, 융합의 시대다. 그런 가치들은 결코 수직사회에서는 구현되지 않는다. 수평사회로 전환하지 않으면 죽는다. 불행히도 우리가 수평사회의 경험이나 교육 그리고 사회체제가 허약하지만 이제라도 그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그게 연대와 상생의 바탕이다. 
  청년 세대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지금의 문제의 근원은 기성세대가 오로지 자신들만의 안위와 소비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삶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부모 세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풍요를 누렸으면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마련에는 소홀했다. 정의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걷어찼다. 연대의식은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요구하는 데에도 태연하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소통과 공감의 체계적 단초는 바로 선거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중요한 선거가 이어진다. 청년이 정치를 외면하면 부패했거나 공감능력 없는 기성세대는 그들을 무시한다. 그건 단절이고 퇴행이다. 선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청년들이 단결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평적 관계로의 전환까지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두 차례의 선거는 매우 중요한 기회다. 
  싱글족이니 1인가구니 하는 것을 사회적 현상의 단면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면 안 된다. 고독이 아닌 고립의 싱글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현대의 삶의 방식을 통한 새로운 선택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지금의 그런 현상은 기형적 사회 부조리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분노를 느낀다. 이 기현상을 우리 스스로 깨뜨리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연대와 상생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생존의 조건이다. 진정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금 연대하여 과거를 깨뜨리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 구체적 방법이 지금 우리 앞에 놓였다. 선거를 방관하면 안 된다. 우리의 미래가 걸렸다. 단순히 표를 던지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의제를 던지고 방법을 끌어내야 한다. 우리 손에 달렸다. 우리는 모두 혼자다. 고독하다. 그건 인간실존의 방식이며 사회적 삶은 연대와 수평적 유대에서 실현된다. 고립을 경계해야 한다. 홀로 그러나 함께! 그게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병든 고립과 절망의 공감이 아니라 당당한 고독과 건강한 연대를 통해, 청춘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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