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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는, 익명의 동지들을 상상하며
[193호] 2015년 12월 07일 (월) 넝쿨 대학원생
  올해 5월,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경이롭고 빛나는 순간들을 아낌없이 선사해줬다. 하지만 34년을 살며 처음 경험하는 육아는 너무나 어려웠다. 나 역시 대부분의 엄마들이 겪는 산후우울증과 모유수유의 어려움을 겪었다. 아기는 배앓이와 영아산통으로 예민했으며, 한동안 밤낮까지 뒤바뀌었다.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외부와 차단된 것만 같은 고독감과 아기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에 답답해했다. 누군가 육아를 함께 하거나 도와주는 것과는 별개로, 주양육자-엄마로 정체성을 새롭게 변화시켜가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과정이었다.
  시간은 흘러 아기는 만 7개월을 향해가며 엄마 껌딱지가 되어 가고 있다. 전폭적으로 도와주는 남편 역시 요새 이런저런 일들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어린이집 대기 순번은 300번대로 아직 멀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이번 학기 한 강좌를 담당하게 되어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나가고 있다. 아픈 손목을 무릅쓰고 아기를 봐주시는 친정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학기 초반에는 강의를 마치고 공부하다 느지막이 집에 오려 했다. 하지만 아기가 젖병을 거부했고, 나 역시 그동안 불어난 젖을 유축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던 터라 강의를 마치고 나면 수유를 위해 집으로 향했다.
  출산 이후 지금까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불안감은 하루하루 커져만 간다. 비슷한 과정을 겪은 여자 선생님들의 조언, 지도교수님을 비롯한 학과 교수님들의 격려와 배려가 없었다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은 육아의 현실 속에서 곤두박질 쳐졌으리라. 하지만 현실적으로 책을 읽고 논문을 쓰는 건, 누군가에게 육아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여전히 어렵다. 부끄럽지만 논문을 쓴 지 반 년이 훌쩍 넘었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수료생이자 연구자로서 책무를 방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이런 나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경력 단절이 아닐까. 강의-경제적 활동-는 하고 있지만,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읽고-생각하고-쓰는’ 책무를 고려한다면, 연구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women)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 증가와 경력 단절 방지를 통해 국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음을 뜻하는 ‘위미노믹스womenomics’가 최근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현재 한국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 현상은 심각하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가 악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육아하는 여성’의 경력 단절의 원인이 ‘육아’로만 한정되어 공론화되는 방식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만,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이 노동 인력 증가와 경제적 이익 창출이라는 국가-기업 경제 성장의 차원으로만 공론화되는 것 역시 문제적이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주양육자의 경력 단절은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공동체의 과제로서 이는 경제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자아존중감 및 사회적 소속감이라는 정체성 차원에서 함께 고구해야 할 것이다.
  공부에는 즉각적인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렇기에 대학원이란 공간은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인 학문의 터인 동시에 그들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자존감과 사회적 소속감을 만들고 공유하고 유지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학문으로서의 직업’을 목표로 하는 대학원에서는 주양육자의 학업 및 연구 경력 단절을 어떤 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 현재 학교의 보육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엄마-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지켜갈 수 있을까/나가고 있을까. 이에 최근 모 대학에서는 ‘스터딩맘(스터딩대디)’의 현실을 고민하며 아이를 가진 대학원생들이 ‘부모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부와 육아에 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장을 마련하고, 공동 육아와 품앗이를 기획하는 등 육아와 연구가 ‘충돌되지 않는’ 공간과 시간을 창출하고자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아기 동반 도서관 출입 허가나 학내 수유실 마련과 같은 실질적인 성과도 얻었다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일은 한 개인의 문제이자 학문 공동체의 문제라는 고민이 반영된 결과이다.
  나는 아기가 성장할수록,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조바심과 불안감이 커져 갈수록,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고민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간다. 몇 번이나 잠에서 깬 아기를 간신히 재우고 책상 앞에 앉은 새벽 두 시, 그렇게 익명의 동지들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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