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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말하다]남자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193호] 2015년 12월 07일 (월) 오찬호 사회학자
 
   
△ 르네 마그리트의 <The Son of Man>을 패러디한 풍자화.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메갈리아’에 관한 논의를 하려면 어쩌다가 그런 합성어가(메르스 갤러리 + 이갈리안의 딸들) 등장했는지, ‘미러링’(mirroring)은 무슨 뜻인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때에 비하면 현재의 ‘메갈리아’는 꽤나 익숙해진 단어다. 그만큼 파편적인 이슈가 보편적인 논쟁의 영역 안에 올라왔다는 의미다. 과연 ‘메갈리아’의 함의는 보편의 고정관념을 깨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을까?
  ‘메갈리아’의 함의는 간단하다. 이것은 ‘여전히’ 남자 중심으로 세상의 이치가 해석되는 풍토에 대한 한(恨)의 디지털적 표현이다. 많은 이들이 과거보다 ‘좋아진’ 세상이라고 하지만, “여자들이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니 성추행을 당하지!”라는 칠푼이 같은 인과관계 분석이 칠푼 그 이상의 논리로 인정받는다. 달라진 건 이 황당함을 그나마 여론으로 집약시킬 수 있는 사이버공간이 있다는 것뿐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반론을 펼쳐도 남자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들은 ‘미러링’이라는 기상천외한 묘안을 생각해냈다. 남자들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흔하게 말하는 여성비하의 문장에서 여자를 남자로만 바꾸니 ‘문제’가 선명하게 보였다. “어딜 여자가 담배 펴!”를 “어딜 남자가 담배 펴!”로만 바꾸어도 어색한 느낌, 바로 그것이 이 사회 안에서 양성이 객관적으로 불평등함을 의미한다. 전략은 적중했다. 메갈리안들의 ‘발랄한 퍼포먼스’에 지지자들은 늘어갔고 이와 비례하여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들도 이 이슈를 접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하지만 (‘역시나’로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문제의식을 느껴야 하는’걸 누가 애써 말해도 별 소용이 없다. 누가 송곳으로 기존의 관념을 ‘찌르면’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사회답다. 오히려 송곳이 되지 않을수록, 혹은 등장한 송곳을 노골적으로 무시할수록 ‘사회생활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곳 아닌가. ‘혐오를 혐오에 맞서는 방식으로 남성들을 조롱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남자들이 ‘많아질수록’ 논의는 다시 퇴행한다. 남자들의 항변은 ‘지금은 평등해진 세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여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성적 논쟁을 피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단어가 되어 버린) ‘역차별’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세상이 좋아졌다’는 인식은 메갈리안들의 ‘부당한 남성에 대한 고발’을 ‘여성들의 부당하고도 시대착오적인 요구’로 오해하게끔 한다. 이 배경 속에서 ‘쟤 일베 아니야?’와 비슷한 효과를 가지는 ‘저 여자, 메갈리아 회원이라던데…’라는 낙인이 이미 등장했다.
  양성이 평등해졌다니 이 무슨 소리인가? 양성의 불평등함은 그냥 삶 안에 녹아 있다. 연인관계가 폭력이든, 이로 인한 살인이든 ‘안 좋은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1주일에 두 명이 이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물론 피해자의 99%는 여자다. 이성애에 기반을 둔 연인은 분명 ‘양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화를 참지 못하고 누구를 때리는 폭행’은 죄다 남자가 저지른다. 이를 평등한 세상이라고 하는 건 바보다. 운전 중에 상대차량 옆에 바짝 붙어 창문을 열고 욕을 하는 사람이 있다. 누가 잘못을 했으니 자신이 “미친 새끼야!”라고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런 사람의 99.99%가 남자다. 횡단보도를 걸어가면서 뒷사람 신경 쓰지 않고 흡연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 구역질나는 연기와 바람에 날리는 담뱃재에 다른 이가 피해를 입는 걸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99.999%가 남자다.(솔직히 나는 38년간 살면서 젊은 여자가 ‘횡단보도를 걸어가면서’ 흡연을 하는 경우를 한국에서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평등한 세상’이라는 것인가?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를 보면 한국은 성 평등 지수 0.651이며(남성에 비해 여성은 65% 수준의 경제적 보상, 정치적 권한을 누린다는 의미) 이는 145개 국 중 115위에 해당된다. 이웃나라 중국은 91위, 일본은 101위였다. 한국보다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이지만’ 어쨌든 순위가 낮은 나라는 2015년에야 여성참정권이 부여된, 여전히 여성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134위), 여자가 남자배구시합을 관람했다고 구속되는 이란(141위) 정도가 있다. 한국은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순위가 125위로 가장 낮았고 교육 분야는 102위, 정치권한은 101위였다. 한국은 비슷한 일을 함에도 여성이 남성의 55% 수준에 임금을 받아서 이 분야도 꼴찌 수준이다. 전체 순위가 지난 2010년에는 104위, 2014년에는 117위였으니 한국은 매우 일관되게 양성이 ‘매우’ 불평등한 상태다.
  이 보고서에는 왜 ‘남자가 여자에 비해서 사회생활이 유리한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가 보기에 ‘판타스틱’한 사회로 보이는 나라들의 성 평등 지수를 보자. 10위권 안에 있는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아일랜드 등은 성 평등 지수가 0.8을 넘기고 있다. 즉, 우리보다 100등이나 앞선 ‘어떤 나라도’ 양성이 평등한 곳이 없다. 그러니 이 조사는 평등이 얼마나 적은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남자’는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구조적 우위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를 남자들에게 말하니,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양성평등은 불가능한 것이지. 별 수 있나.” 괜히 115위가 아니다. 아니, 115위도 기적 같다. 그러니 ‘메갈리아’의 발칙함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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