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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평]악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테리 이글턴, 오수원 옮김, 『악』, 이매진, 2015.
[192호] 2015년 11월 02일 (월) 김 세 연 편집위원
   
 
   

  거짓 미소와 이해할 수 없는 박식함, 검은 옷과 검은 자동차만을 고집하는 취향, 스코틀랜드 혈통에다가 광부와 친척지간이라는 음험한 유전자. 영국의 한 주교는 이를 사탄에 홀린 사람의 특징으로 나열했다. ‘악’에 대한 단상은 터무니없고 모호하면서도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는 하나의 엠블럼과도 같다. 그런데 책에서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이미지야말로 악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악의 특성을 명징하게 밝히는 한편, ‘악’과 ‘부정’을 구분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적인 문제의식은 굉장히 획기적이거나 독특한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악’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정치하게 분석했다는 점과, 비평적 경계를 넘나들며 능란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박식함이 감탄을 자아낸다.


  문학 작품 속 악마의 화신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적 배려를 받지 못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아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의 동기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타인을 파멸시키는 것은 사리사욕을 향한 내달음이 아니라 순수하게 도착적인 쾌락이다. 분노가 아니고 무의미한 냉소에 가깝다. ‘원인부재’는 악마적 환희의 핵심이며, 평범한 불량배와 악마를 구분하는 척도가 된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악성은 “사회 조건이 아니라 성격”인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본디 본래 악한 탓”이라는 순환논법이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등장하는 ‘이아고’는 악을 설명하는데 탁월한 예시로 사용될 수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따지면 오셀로는 이상화된 ‘데스데모나’를 물신으로 삼아 그녀를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서 “무의식의 사나운 실체들을 차단”한다. 그녀의 사랑이 없을 때 고양된 자의식은 사라지고 저급한 충동의 세계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아고는 이 점을 이용해 오셀로의 자아를 내파한다. 여기서 이아고의 역할은 오셀로의 견고한 자기의식을 해체하고 전복시키는 것뿐이다. 오셀로의 자의식은 그의 공적 이미지와 결부되는 반면 이아고에게는 자신만의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아고는 “겉으로 보이는 온갖 모습의 타자”로 존재할 따름이다.


  책에는 초등학생들이 유아를 고문해서 죽인 사건에서부터 이슬람 폭탄테러와 홀로코스트에 이르기까지, 듣기만 해도 ‘공포가 세상을 끔찍한 모호함으로 바꾸어 버릴 것만 같은’ 각종 악행들이 나열된다. 주목할 것은 이 사건들이 ‘악마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한들에 의해 자행된 범죄를 모두 ‘근원악’의 발로라 볼 수 있을까. 만일 정말로 그들이 악마적 성향을 타고났다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본성일 뿐, 자유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덮어놓고 악마라고 매도하다가는, 오히려 악마니까 이해해 주어야할 모순적인 상황에 부딪힌다.


  사람들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대함에 있어 그들의 사회적 배경에 대해 고려하기를 꺼려한다. 환경 결정론적 시선이 가해자에 대한 동정적 관대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이글턴은 악행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 가해자 개인의 책임을 경감시키리라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해’하는 것이 ‘용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맥락을 거세하고 행위주체를 악마로 규정하는 것은 폭력의 재생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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