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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말하다]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민주주의
[192호] 2015년 11월 02일 (월) 윤 해 동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동국대 후문 벽면에 붙여놓은 대자보들.
(사진 : 김세연 편집위원)
   

  중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방침이 발표된 이래, 국정교과서 문제는 한국사회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떤 비평가는 이를 두고 “서로 죽여야 끝나는 역사 십자군전쟁”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과연 겉으로 보기에는 전 사회가 두 조각으로 나뉘어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 정도의 문제일까?


  박근혜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방안은 약 10여 년의 전사를 가지고 있다. 그 출발은 2004년 노무현 정권하에서 태동한 ‘교과서 포럼’이었다. 이 단체의 결성은 뉴라이트운동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었다. 요컨대 ‘새로운 우파’를 표방하고 나온 정치세력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었고 또 ‘새로운 한국사’ 인식이었던 셈이다. 이 단체는 2008년 이른바 『대안교과서』를 출간하였고, 이어 2011년에는 한국현대사학회를 결성하였으며 교학사에서 새로운 검정교과서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교과서의 ‘대안’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검정교과서를 만들었으나, 그 교과서는 중등학교의 ‘교과서 시장’으로 진입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요컨대, 검정 시장 진출에 실패한 우파가 아예 교과서를 통째로 바꾸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 국정화 방안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냉전이 해체되고 ‘민주화’가 된 이후에 중등학교의 한국사 교육에도 검정교과서가 등장하였고, 여러 ‘파동’을 거쳐서 2011년에는 최종적으로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화가 수행되었다. 검정제도는 국가가 만든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따라 ‘상업출판사’가 만든 교과서를, 교육부가 책임을 지고 ‘검정’을 하여 교과서로 채택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두 가지의 큰 ‘결함’ 혹은 ‘함정’이 가로놓여 있다. 이것은 교과서 기술에 국가가 깊숙이 개입할 수 있게 만들며, 동시에 거대 상업출판사의 이윤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는 점이다. 새로 도입된 검정교과서가 구태의연한 학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검정제도는 학계의 새로운 해석에 근원적으로 비탄력적인 제도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의 거대 출판자본의 검정교과서가 가진 지배력 때문에 캐나다와 영국의 학교 교육이 고통 받고 있는 사례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검정제도와 국정제도 사이의 거리가 ‘국가를 나누어 사생결단을 할 만큼’ 먼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드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 이유도 거의 없다. 검정교과서가 가진 결점을 국정교과서가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려고 하는 박근혜 대통령 혹은 정부의 논리는 과연 무엇인가? 대학 수학능력 시험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놓고, 학생들의 입시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혹은 ‘하나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교육부가 만들어내었다.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교과서 밖의 논리를 가져온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검정교과서 안의 역사해석의 차이를 용납하기 어렵다는 정부의 또다른 설명 논리는 구차하고 빈약하여 설득력이 거의 없다.


  정부의 빈약한 국정화 논리를 굳이 재해석해보자면, 검정제도와 국정제도가 별로 차이가 없으니 이제 국정으로 만들어도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는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검정제도가 가진 허점을 ‘국정화’ 논자들이 파고든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빈약하고 참담한 논리로 밀어붙여 국정교과서를 만들면, 그로 말미암는 ‘역풍’과 그걸 추진한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역풍은 민주화된 사회에서 자행되는 비(非)민주주의적 방식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들이 져야 할 여러 부담 가운데, 정치적ㆍ사회적 차원에서 매겨질 비민주주의자라는 레테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을 것이다.      


  국정교과서의 지속가능성은 대단히 낮을 수밖에 없다. 다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국정교과서가 붙이고 다니는 ‘비민주주의’의 표지를 계속 짊어지고 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국가 교육정책의 정치적 중립성과 장기지속성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변해야 한다면, 어떻게 국가와 인류를 위한 바람직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겠는가?


  중립적이고 장기적인 교육 대안을 수립하는 헌법적 차원의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고, 이 기구가 중심이 되어 교과서 정책의 백년대계를 위한 백가쟁명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지구시대의 역사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무슨 내용을 중심으로, 어떤 종류의 ‘교과서’를 가지고 수행해야 할 것인가? 검정과 국정만이 아니라, 인정제도도 자유발행 교과서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청와대와 교육부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 교육청도 바람직한 역사교육을 위한 논의의 장에 초대되어야 한다. 초중등학교 역사교육의 중심이 지방자치체로 이관되고, 지방자치단체가 검정하는 교과서와 교과서로 ‘인정’된 단행본과 그리고 각종 역사 단행본들이 함께 교육현장에서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교육이야말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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