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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재일디아스포라 문학과 김석범 『화산도』
『화산도』 완역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입국 불허 조치
[192호] 2015년 11월 02일 (월) 신 승 모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연구원
   
 

△2015년 10월 전권 간행된 김석범의 『화산도』. (사진 : 임세화 편집위원)

 
 

  근래 인문학계에서는 ‘재일디아스포라’라는 표현이 곧잘 회자되곤 한다. 주지하듯이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용어는 원래 타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산(離散)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어로는 ‘민족 이산’ ‘민족 분산’으로 번역되는데 최근에는 “한 민족집단 성원들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는 과정뿐만 아니라 분산한 동족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와 공동체” 또는 “유대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의 국제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윤인진, 2003)으로 보편화되어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재일 학자 서경식은 “근대의 노예무역, 식민지배, 지역분쟁, 세계전쟁, 시장경제 글로벌리즘 등 외적인 이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서경식, 2006)로 사용하기도 한다.


   
  △ (좌)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김석범이 2015년 4월 1일 제주 KAL호텔 기자회견장에서 수상소감 등을 밝히고 있다. (사진출처 : 제주도민일보)  
 

  이 같은 해석과 역사적 맥락을 참조할 때 ‘재일조선인’은 디아스포라적인 존재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재일조선인의 ‘조선인’은 법무적으로는 일찍이 대일본제국 영토의 일부였던 한반도와 그곳 출신으로 일본에 건너 온 이른바 조선민족의 후예들로 한국과 북한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아 무국적자로 취급받는 ‘조선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은 민족의 강제 이주와 월경의 경험, 이주와 정착, 중심과 주변을 횡단하면서 살아남기를 감내해야만 했던 간고한 역사적 경험을 문학적으로 새겨 넣은 증언으로서 소중한 의미를 지니며, 또한 그 문학은 일국사적인 틀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존재론적으로 지닌다고도 볼 수 있다.


  재일조선인 문학은 ‘조선문학’과 ‘한국문학’ 그리고 ‘일본문학’과 관계가 없지 않으면서도, 이들 단일 국가적인 문학과는 일단 거리를 둔 독립적인 문학으로서 ‘디아스포라 문학’이라 부를 수 있다.(가와무라 미나토, 2015) 재일조선인은 고향과 고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흩어지게 된 이산민으로서, 그들이 산출한 문학은 이향이자 이국인 일본으로 건너와 대를 이어 ‘재일조선인’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재일조선인 문학 중에서도 재일 작가 김석범의 『화산도(火山島)』는 격동기 해방정국 속에 일어난 제주도 4·3사건을 형상화한 장편서사로서 한국현대문학사의 공백을 채워주는 ‘일본어’ 문학이라는 점에서 이채를 띤다.


  『화산도』는 1976년 2월 『해소(海嘯)』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문예잡지 『문학계(文學界)』에서 연재를 시작하여 1995년 9월에 집필을 종료하고, 1997년 9월에 전 7권의 출간(文藝春秋社)을 마쳤다. 이 장편서사는 “4·3은 나의 문학의 원천”(김석범, 2002)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1948년의 ‘제주4·3사건’을 주된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1957년에 발표하여 작가의 존재를 알리게 된 『간수 박서방(看守朴書房)』, 『까마귀의 죽음(鴉の死)』으로 시작되는 많은 4·3관련 작품을 집대성하고 있다.


  4백자 원고지 1만 1천 매에 달하는 대하장편 『화산도』는 그 규모에 걸맞게 많은 인물을 등장시켜 해방 직후의 시대적 혼란과 4·3사건의 전개과정을 심도 있게 그려내면서, 해방정국에 휘몰아친 당대의 정치이념, 역사문화, 사회 현상 등을 망라한다. 간단히 그 내용을 짚어보면, 시대적으로는 1948년 전후 해방정국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삼고, 공간적으로는 제주도-목포-광주-대전-서울-부산의 육로와 해로, 일본의 홋카이도-도쿄-교토-오사카-고베를 잇는 한반도 바깥의 육로와 해로를 아우른다. 또한 정치이념적으로는 한반도(특히 제주도)에서 반목했던 남북한/좌우익의 갈등, 대립과 함께, 제주도 4·3사건을 둘러싼 군경-미군-무장대-제주도민 사이의 사상/무력충돌을 전면화하면서도, 유엔의 단독선거 결정과 남북분단, 이승만 정권의 등장과 함께 일제강점기 친일파 세력이 제기하는 사회현실만이 아니라 여수순천반란사건 등의 극한적 대립양상도 형상화된다. 뿐만 아니라 작품에서는 역사문화적으로 당대 한반도에 존속해온 봉건적인 가부장제, 해외유학, 신세대의 결혼관/자유연애, 제주도의 생태학적 문화지리를 엮어내고 있다.


  해방정국의 격심한 좌우익/남북이데올로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공고해진 군사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가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일단락되기까지 한국현대사는 제주도민의 4·3항쟁을 비롯하여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김석범의 『화산도』는 그러한 국가와 민족중심의 역사성, 정치성, 사회성으로 표상되는 사회문화적 지점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해낸 문학적 성과라 할 수 있다.(김환기, 2015)


  하지만 『화산도』가 지닌 이 같은 문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이 작품이 제대로 읽혀지지도 논의되지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어로 된 작품인데다 그 분량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독서에 어려움이 있었고, 일본에서조차 작품을 입수하기 어려운 물리적인 제약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덧붙여 일본에서는 이 같은 제약을 타개하고자 이와나미岩波서점에서 복간이 이루어져 2015년 11월부터 재출간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재일조선인 문학이 해금된 1988년에 번역되어 실천문학사에서 5권이 출판되었지만, 이는 『화산도』의 일부(일본어판의 3권까지)를 번역한 것인데다 서둘러 출판하다 보니 번역 자체에도 생략과 축약된 부분이 있어 한국에 소개한다는 의의는 있었지만 온전한 번역출판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 한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화산도』가 2015년 10월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소장 김환기 교수의 기획과 번역으로 전권(12권, 보고사)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간행이 이루어졌다. 한국어판 간행을 맞이하여 김환기 교수는 『화산도』를 독해하는 몇 가지 관점을 제시하는데(김환기, 2015), 예컨대 해방정국의 친일파 문제나 좌우익/남북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해석 평가야말로 미래지향적인 사회를 열어갈 동력이 될 수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 『화산도』는 일차적으로 해방정국의 역사적 실체(친일파, 제주4·3사건 등)에 대한 명확한 기억(복원)의 고발문학의 성격을 지닌 서사담론이자 동시에 치유의 문학으로 읽기에도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화산도』에서 묘사되고 있는 제주도의 구체적인 일상을 담고 있는 생태학적 문화지리는 이 작품의 비평공간을 확장시킴과 동시에 문학적 보편성과 존재 가치를 담보하는 근간으로도 작용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화산도』는 동북아시아의 국가중심주의를 넘어 월경과 평화주의에 입각한 보편적 글쓰기를 실천한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연 작품이라는 사실도 함께 강조하고 있다.


  『화산도』의 내용을 정치·이념적으로 좌편향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서사구조는 해방정국의 제주도를 둘러싼 극단적인 민족주의, 좌우익/남북한 정치이데올로기, 친일파 청산 등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말하자면 작가의 고뇌는 해방정국에 휘몰아친 총체적인 갈등국면을 극복하여 통일조국으로 나아가야 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분단조국의 냉엄한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초점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화산도』는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 남북한의 반민족적 행위를 함께 비판하면서 디아스포라 특유의 월경주의와 글로컬리즘을 통해 문학적 보편성을 확보한 드문 사례이다. 특히 재일디아스포라의 ‘경계’, ‘혼종’ 지점은 전통적 민족순혈주의의 성향이 강한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고, 동시에 일본/일본인/일본사회의 국가/자기중심적 논리에 비판적 시각을 제공하는 안티테제(Antithese)로서도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김환기, 2015)    

   
  △ 10월 16일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의 글로컬리즘과 문화정치학 ― 김석범 『화산도』> 심포지엄. 당초 이 자리에는 김석범 작가가 직접 참석하여 현기영 작가와 대담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한국 정부의 입국 거부로 인해 계획이 무산되었다. (사진 : 임세화 편집위원)  
 


  한편 『화산도』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하여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는 특별기획 심포지엄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의 글로컬리즘과 문화정치학 ―김석범 『화산도』>를 2015년 10월 16일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에는 국내외 연구자 및 문학평론가 다수가 참석하여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의 문학사적 의미와 『화산도』 출간의 의의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는데, 당초 이 자리에는 『화산도』의 저자 김석범 작가가 직접 참석하여 소설가 현기영 작가와 특별초청 대담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국정부(주일한국대사관)는 지난 ‘제주4·3평화상’ 시상식장에서 김석범 작가가 연설한 내용을 문제 삼아 한국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했고, 결국 심포지엄은 당사자인 김석범 작가가 부재한 상태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5년 4월 김석범 선생은 4·3 진상규명운동과 평화·인권운동을 펼쳐온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되어 ‘제주4·3평화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이 시상식 석상에서 그는 “이승만 정부는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표방했지만,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돼 3·1운동에 의해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수 있겠냐”며 ‘돌직구’를 날렸다. 이 발언이 공개된 직후 하태경 의원(새누리당)이 “좌우 이념논쟁을 넘어,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반대한민국적인 발언”이라는 보도자료를 냈고, 이를 이어받아 보수언론들이 “(그의 수상 소감은) 북한이 해온 주장 그대로”(『조선일보』), “대한민국을 ‘민족반역자들이 세운 정권’이라고 폄훼한 사람에게 국민 세금으로 상금을 주는 것은 지나칠 수 없다”(『동아일보』)고 맹공을 퍼부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한 이념 대립 쟁점인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려 현 정부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었다.(『한겨레신문』인터넷판, 2015.10.13.)


  김석범 작가는 한국과 일본 국적 중 어느 쪽도 취득하지 않은 이른바 ‘조선적(籍)’이어서 한국 방문 때마다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고, 이번 심포지엄 참석을 위한 한국행 신청에 대해 한국대사관에서는 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것이다. 1988년 이후 수차례 드나들었던 대한민국,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4·3평화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90세 노령의 작가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다시 입국을 거부하면서 한국사회가 아직 『화산도』를 제대로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현실, 그럴만한 ‘관용’과 ‘도량’이 부족한 사회임을 스스로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이제 한국어판 『화산도』는 한국의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어로 한국의 현대사, 4·3사건을 표현한 이 작품을 일본의 문학계에서는 전후 ‘일본어’ 문학의 금자탑으로 평가한 바 있고 문학적 보편성을 획득한 세계문학으로서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을 비롯하여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을 일본문학인가, 조선·한국문학인가 묻는 것은 난센스일 것이다. 인류 보편의 실존적 문제까지 담아내는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은 세계문학의 모습을 나타내며 이제 한국 독자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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