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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해방의 대서사와 암울한 탄식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展
[191호] 2015년 09월 21일 (월) 최 열 미술평론가
   
  △ 이쾌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1949.  
   미술 분야에서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단 하나의 행사 ‘거장 이쾌대-해방의 대서사’ 전람회는 2015년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 언제던가, 월북작가 해금조치가 있고서 얼마 뒤인 1990년 해금작가의 한 사람으로 ‘이쾌대’ 전람회가 열렸다. 놀라웠다. 1948년에 그린 네 폭의 대작 <군상(群像)> 연작은 20세기 한국 미술사상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해방공간에서 한국전쟁까지의 미술사는 공백이나 다름없는 시기였다. 그런데 군상이 등장해 버리자 공백은 순식간에 메꿔졌고 우리는 미술사를 다시 쓸 수밖에 없는 숨 막히는 긴장감에 사로잡혀야 했다.
   청년시절 이쾌대는 조선 고전과 서구 초현실 화풍을 융합시킴으로써 1930년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신예였다. 이번 전람회 출품작인 1938년의 대작 <상황(狀況)>은 그 대표작품이다. 무희 복장을 한 여인이 연출해 내는 어떤 상황을 소재로 삼아 파탄과 좌절, 극복과 전진의 서사극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한국미술사에서 이런 작품은 없었다. 기괴한 초현실주의 화풍을 지닌 작품임에도 낯설기는커녕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건 아마도 주인공의 복장이 조선고전 의상이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동양과 서양의 융합을 이토록 손쉽게 이룩해 버리고 있으니 그의 재능은 가히 하늘이 준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이쾌대, <상황>, 1938.  

   <군상>은 한국미술사의 수준을 드높인 최대의 걸작이다. 펄럭이는 한복의 여신상과 웅성대는 근육질의 몸뚱이 그리고 흉흉한 기운이 가득 찬 화폭은 폭격과 학살의 참혹함을 연상시킨다. 그것이 대동아전쟁의 기억이건, 남북의 한국전쟁을 예언하는 것이건,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한 1948년 당대의 현실이건 간에 유사 이래 한국에서 이처럼 격정에 넘치는 작품은 처음이었다.
   <군상>의 탄생은 바로 그 해방공간을 살아가는 이쾌대의 선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이쾌대는 중도노선을 취했다. 여운형, 이여성과 같은 걸출한 정치가이자 좌우를 절충하는 중도세력과 궤도를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복7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한반도는 화해는커녕 남북분단만으로는 부족해서인지 대결 일변도로 나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당시에도 좌우합작을 주장했던 여운형, 김구는 암살을 당했고 이여성은 월북했으나 북한에서 숙청당하고 말았다. 이쾌대 또한 월북한 뒤 중앙에서 밀려나 변방에서 삶을 마무리해야 했다.
   이쾌대는 식민제국주의 시대에 성장하고 근대민주국가 건설을 향해 중도노선을 채택한 화가다. 그가 꿈꾸던 국가는 극좌와 극우가 판치는 세계가 아니었다. 극단의 시대였기에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그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은 오직 화폭뿐이었고 끝내 <군상>과 같은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켜내고야 말았던 아닐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이념의 다양성을 박탈당한 채 극단의 편향으로 굳어가고 있는 느낌이 가득하다. 다시 말해 근대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만약 이쾌대가 되살아나 지금 이 시대를 저 <상황> 또는 <군상>의 필치로 그린다면 어떨까. 더욱 괴이하고 격렬하며 비참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신비와 몽상이 아롱진 ‘해방의 대서사’가 아니라 ‘암울한 탄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이쾌대, <군상1-해방고지>,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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