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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간]나를 신인(新人)으로 만들어준 책들
[191호] 2015년 09월 21일 (월) 윤 성 희 소설가
   
 
  나는 스물세 살에 문예창작과에 입학을 했다. 합격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은 사람은 어머니였는데, 그제야 딸이 문예창작과에 몰래 입학시험을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문학이라니! 그때까지 가족들은 딸이 문학 언저리를 맴돌고 싶어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때의 분위기는 요즘 같지 않았고, 그래서 이십대 청춘들에게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미안한데, 나는 그 당시 미래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뭐라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뭐가 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나는 뭐든 게 재미있었다. 처음 읽는 소설도, 친구들의 망친 글도, 존경하는 선생님이 “왜 썼어?”하고 물어봐주는 것도.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지하철에서 책 읽기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명동에 있었고, 나는 수원에 살았다. 왕복 두 시간. 학교 갈 때,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거의 모든 과제를 거기에서 했다. 읽어야 할 책을 지하철에서 읽었고, 써야할 보고서가 있으면 지하철에서 메모를 하고 목차를 작성했다. 특히 단편을 많이 읽었는데, 한 편을 읽고 잠깐 눈을 붙이면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다. 학교에 올 때 한 편. 집으로 돌아갈 때 한 편. 오정희 선생님의 단편 「저녁의 게임」을 읽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떠올려보면, 명동역과 봄이면 라일락 향기가 나던 강의실과 동기들의 소설에 밑줄을 긋던 내가 떠오른다. 「저녁의 게임」, 「중국인 거리」, 「완구점 여인」 이런 단편들을 읽으면서 나는 꼭 다섯 글자의 제목인 소설을 쓰겠다는 말도 안 되는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소설은 도대체 이 망할 놈의 인간이 무엇인지에 관한 글이다. 그렇기에 좋은 글은 독자가 내면에서 덜 외롭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의 말처럼, 좋은 소설은 단편이건 장편이건, 그 분량과 상관없이, 인간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그 중에서도, 오정희 선생님의 단편을 읽는 동안 나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 한 권을 만난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늘 그런 세계였다. 완벽한 문장으로, 그러나 그 문장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그리는 것.
   문창과를 다닌다는 것은 읽는 즐거움에 비례해 쓰는 절망이 커진다는 것이다. 도통 내 소설을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면, 친구들의 소설도 답답해진다. 나는 2학년 2학기 때쯤(내가 다닌 학교는 전문대여서 2학년이면 졸업반이다) 그런 상태가 찾아왔는데, 내가, 혹은 우리가 쓰고 있는 글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가 뭐지 몰랐는데, 그러다 어느 날 이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내가 처음으로 읽은 책은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는 3권짜리 책이었다. 거기엔 내가 아는 문장과 전혀 다른 문장이 있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다 폴짝. 그 소설을 읽고 내 소설을 읽어보니…… 나는 한 걸음 걷고 멈춰 제자리를 맴도는 그런 문장을 쓰고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듯 똑. 똑. 똑. 분명 물방울 같았는데 거기에 칼날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이게 뭐지?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때부터 나는 소설을 쓰면서 ‘리듬’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존 어빙과 커트 보네거트는 신인 작가가 되었을 때 만난 소설가이다. 청탁이 와서 소설을 쓰는 것도 버거웠다. 능력에 부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팔십 매에서 백 매의 글을 쓰는 데 몇 달이나 걸리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누가 칭찬을 해주면 과대평가 받는 것 같아 불편했고, 또 아무도 내 소설에 대해 말을 하지 않으면 금방 의기소침해졌다. 커트 보네거트는 수원의 어느 헌책방을 뒤지다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산 그의 책은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봐』라는 장편소설인데 ‘새와 물고기’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소설을 읽고 나는 헌책방을 가게 되면 ‘새와 물고기’라는 출판사의 책을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커트 보네거트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저 책이었지만 나는 그 후로 이 작가의 『제 5도살장』을 더 좋아하게 된다. 이 작가를 만난 이후로 나는 서사에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상상력이란 없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기억과 망각을 우린 상상력이라고 부르지요, 라고 보르헤스는 말했다.) 신인인 내가 점점 용기를 잃어갈 때, 누군가 정신 차려 하고 등짝을 때려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 바로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이 내게 그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존 어빙이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 나는 이야기를 짓는 목수다.’라고 한 말을 내 노트에 적어 두었다. 이후,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주워 담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한 삼십 년쯤 소설을 쓰면 그땐 정말 재미난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때까지 천천히 가보자 하고. 나는 생각했다.
   “좋은 글이란 독자가 내면에서 덜 외롭도록 도와야 한다.” 그 말 다음 나는 꼭 이 문구를 덧붙인다. “나는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길 바라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 문학은 이 사실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문학은 필요하다.(데이비스 실즈)”사실, 나는 무엇 때문에 문학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좋아서 늘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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