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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말하다]부끄러움이라는 감정, 공공재로서의 대학
[191호] 2015년 09월 21일 (월) 최 병 구 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
   
  △ Francois de Nome, <King Asa Destroying the Idols>, 연도 불명.  
 
   중세 유럽에서 탄생한 대학은 근대로 접어들며 국민국가 형성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하였다. 국민국가의 지적 자양분을 공급할 원천으로 대학의 역할과 위치가 결정된 것이다. 칸트는 1798년에 쓴『학부들의 논쟁』에서 대학을 상급학부(신학부, 법학부, 의학부)와 하급학부(철학부)의 변증법적 통일체로 정의하여, 근대 대학의 발전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상급학부가 외부의 요청에 의한 타율적 지성이라면 하급학부는 외부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지성으로 양자의 통일로서 근대 대학의 모델을 마련한 것이다. 요시미 순야는 『대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상급학부와 하급학부의 대립을 보편적 합리성, 즉 자유를 향한 의지로 정의하며, “대학이란 자유를 향한 의지”라는 명제의 현재적 재구성을 요청한다.
   근대 대학에 대한 칸트의 접근에 따르자면 현재 한국 대학은 외부의 요청(자본의 논리)에 완벽하게 포섭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 경쟁과 이윤창출(취업)의 논리는 대학에 뿌리 깊게 이식되었다.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학점 관리와 스펙 쌓기에 내몰리고 연구자들은 논문 생산에 열을 올린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감소를 이유로 교육부(정부)가 추진 중인 대학구조조정에 따라 대학 사회 전체가 급변하는 시점에서 산업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학과는 퇴출 1순위로 거론된다. 정부는 지난 7월 27일 ‘사회수요 맞춤형 고등교육 인재양성 방안’을 발표하고 내년부터 ‘PRIME(Program for Industry needs Matched Education)사업’을 진행하여 인문학과 같은 취업이 잘 되지 않는 학과의 통폐합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비교적 간명하다. 국가와 기업을 위해 당장 일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이 대학의 존립 목적이고, 교육과 연구도 응당 이것에 준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명제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고 자기계발을 통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최근 부산대 국문과 고현철 교수가 총장 직선제 폐지에 항의하며 투신자살했다. 그는 유서에서 “희생을 마다치 않은 지난 날 민주화 투쟁의 방식이 충격요법으로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라고 썼다. 주위의 많은 연구자들이 고현철 교수의 자살에 애도를 표하고 자괴감을 표현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인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이 사건으로부터 받은 충격을 실천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먼저 고현철 교수의 유서를 읽으며 느꼈던 ‘부끄러움’의 감정에 주목하자. 칸트가 하급학부라고 불렀던 ‘자율적 지성’은 외부로부터의 강제에 휩쓸리지 않는 내면의 요구이다. 개별학문을 종합하고 인간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는 인문학의 본질도 여기에 이어져 있다. 일단 고색창연한 깃발은 접어두고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 속에서 나의 내면을 차분히 응시하자. 그로부터 부끄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주위에 널려 있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원생, 시간강사, 교수 세 주체의 연대가 절실하다. 전통적인 대학원생-시간강사-교수의 위계서열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재 한국 대학의 현실에서는 공동체적 운명이다. 2015년에 대학원생, 시간강사의 문제에 대한 토론의 자리가 있었고, 교수들을 중심으로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토론회가 있어왔지만, 세 주체가 함께 모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왜, 시간강사 문제에 교수들은 침묵하고 대학구조조정과 같은 문제에 시간강사, 대학원생의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는가?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그래서는 답이 없다. 각각의 각론을 종합할 수 있는 총론적 논의를 토대로 한 세 주체의 연대가 꼭 필요하다. 그 만큼 정부의 정책적 압력은 견고하고, 우리는 너무나 무력하다.
   대학은 시장 경제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공공재이다. 공공재로서 대학의 이념은 우리가 지켜내야 할 마지노선이다. 원론적인 비판이나 말잔치를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동안 대학 내부에만 머물러 있었던 인문학을 대학 안팎을 동시에 성찰할 수 있게 창신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부끄러움은 자율적 지성 형성의 기저를 이루는 감정이다. 대학 바깥에서는 인문학협동조합, 지식순환협동조합 등 일련의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원생,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토론과 대안 마련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동국대학교에서는 한 학기 넘게 총장, 이사장 문제에 대한 투쟁이 이어져오고 있다.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한 작은 실천과 연대가 긴급하게 요구되는 시기이다. 이것이 고 고현철 교수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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