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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시장, 이성, 대학의 삼위일체
[191호] 2015년 09월 21일 (월) 서 동 진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 Joseph Keppler Puck Lithograph, <The Bosses of the Senate>, 1889.  
 

   오늘 수업에서 아이들과 함께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이란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부제는 “60년대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소설에서 60년대는 아주 희박한 시간이다. 시대라는 것이 흔히 생각하는 공통의 정치적 조건, 경제적 체험 등을 통해 묶여지는 시간의 범위를 가리키는 것이라 여긴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거기에서 등장하는 시대란 이를테면 이런 식의 장황한 열거를 통해서만 가까스로 표상될 수 있는 대상이다. 그 때에는 A가 있었고, B가 있었고, C가 있었고, D가 있었고 운운. 따라서 시대란 총체화할 수 있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요즘 한창 유행하는 자연사박물관의 전시실에서 마주하곤 하는 바로 그 시대, 다양한 사물들이 집하되어 아슬하게 펼쳐 보이는 흐릿한 풍경일 뿐이다. 아이들과 페렉의 소설을 읽으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이미지가 전부인 시대 속에서 태어난 세대였고, 아니 세대라는 사회학적인 명칭을 통해 자신들을 나타내게 된 인물들이었다. “차려진 테이블에서 그들은 완전한 동시대성을 맛보았다”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이미지의 세상이 온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보잘 것 없는 위안이었다” 운운의 소설 속 구절들은 마치 오늘인 어제처럼 소설 속의 세계를 비쳐 보였을 것이다.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행복의 이미지들 속에 허우적대지만 정작 삶은 비루하고 너절하며 불안한 요즘의 20대에게, 소설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을 것이다.
   함께 책을 뒤적인 아이들은 대학생들이다.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그들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 속으로 입장할 것이라고 말을 이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은 이젠 위선에 불과하다. 1960년대와 2010년대의 놀라운 유사성에 우리는 씁쓸한 기분에 휩싸이지만 또한 둘을 벌여 놓는 커다란 차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대학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이전의 세계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은 세상의 바깥이거나 관문이기는커녕 이제 세상의 이치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원리에 따라 휘청댄다. 얼마 전부터 대학을 몰아친 대학구조조정은 입학인구가 줄어들기에 문을 닫는 대학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인구학적인 미래예측을 내세운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국 구조조정의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대학 측의 변신을 부추기는 짓이었다. 취업률 만능주의가 대학의 교육목표가 되었고, 진학경쟁률을 높이려는 인기학과 중심의 학제개편에 대학들은 난리법석을 피웠다. 급기야 대학평가기준의 구구한 목표에서 감점요인이 되는 총장직선제라는 대학민주화의 성과를 지키려 부산대 교수는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극히 소수를 빼면 이룬 추세에 기꺼이 동조한다. 대학이 이름나면 내 몸값도 오를 것이라는 계산이 앞서기 때문이다. 취업에 유리한 학과의 정원이 늘어나는 게 뭐 큰 잘못이냐고 따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학교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어느 비판적인 교수는 제자로부터 그럴 시간이 있으면 SCI급 논문이나 한 편 더 쓰라는 조언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이를 대학의 시장화라 서둘러 말하고 모든 것을 말한 듯이 구는 것은 너무 뻔하다. 구조조정 이전의 대학이 아름답고 근사했던 적은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한국의 자본주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생산직 노동자로부터 경영, 관리, 사무, 판매 등의 노동자들에 대한 필요가 늘어나게 되었을 때 또 보다 잘 살게 된 노동자계급 출신 자녀들이 지위상승을 위한 유력한 사다리로 대학으로 몰려들게 되었을 때 대학은 의외의 제도가 되었다. 대학생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세계와 대학에서 깨닫게 된 세계 사이의 놀라운 격차에 분노하고 또 저항하려 했다.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이들은 학생운동에 열성이었고 대학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놀랍게도 세계의 외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그런 역사적인 기억에 대학에 관한 인상을 붙들어 맨다. 그렇지만 이제 대학은 세계의 바깥이기는커녕 가장 깊숙한 내부가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내건 신자유주주의적인 교육개혁의 전략인 대학구조조정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었다.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모든 영역이 구조조정이라는 광풍에 으깨어진 터에 대학이라 해서 면제받을 이유는 없다는 입바른 소리도 그리 틀리지는 않다. 그리고 대학은 이제 더욱 효과적인 자본주의의 재생산장치로 매끈하게 기능하게 될 것이다. 어제도 그러했고, 또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1980년대를 전후한 짧은 역사적 시기 동안 대학이 발휘했던 대항적이고 비판적인 지식과 운동의 장소라는 신화는 전적으로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대학이 겪는 변화를 마치 전에 없는 재앙인 것인 양 분개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존-레텔이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칸트 철학의 비밀을 상품과 화폐에서 찾는 놀라운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상품이든 화폐이든 그것은 모든 구체적인 노동생산물을 상품과 화폐라는 추상으로 환원한다. 그래서 그 철학자는 교환추상이 지배하는 상품사회에서 분리된 상호독립적인 소유자가 있듯이 인식의 세계에서는 데카르트적인 에고가 있는 것이라고 고발한 바 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상품이라는 형태와 의식이라는 형태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현상이라는 주장은 곱씹어보면 볼수록 설득력 있다. 이성의 철학이 탄생한 바로 그 자리는 실은 알고 보면 상품생산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가 비롯된 자리인 셈이다. 따라서 대학이 시장에 의해 농단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유치한 생각일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이성이라는 독특한 사유 형식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자율화했다. 그리고 지식인과 전문가라는 집단을 길러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업이다. 둘러보면 국가의 폐지, 사적 소유의 폐지, 상품생산사회의 폐지를 상상하는 이들은 제법 눈에 띈다. 그런데 바로 그 폐지되어야할 것들을 지탱하는 주요한 버팀목인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업 역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는 이상한 일이다. 구조조정 반대가 아니라 대학의 폐지와 소멸을 기꺼이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필시 미친 잠꼬대 취급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다들 시장과 자본에 대해 아주 피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대학이 모든 가진 자들을 떨게 만드는 힘을 가졌던 시대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대학 탓이 아니라 시장과 국가를 의문시하는 지식과 비판이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을 살리는 것은 새로운 대학제도가 아닐 것이다. 대학은 처음부터 시장의 편에 기울어 있다. 그것을 바로 펴는 것은 비판의 실천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급진적인 기운이 없는 한 대학을 바로 세우려는 어떤 노력도 쓸모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흉물스러운 대학이라는 시장을 조롱하고 힐난하는 데 머무는 것은 옹졸한 일이다. 왜 정작 먼저 시장을 비난하지 않는가. 왜 시장과 한통속인 지식과 이성이라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지 않는가. 시장, 지식, 대학은 자본주의의 거룩한 삼위일체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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