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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고난의 땅에서 길어온 새로운 삶의 가능성
박노해 알 자지라 사진전 <태양 아래 그들처럼展>
[190호] 2015년 06월 01일 (월) 김세연 편집위원

   
△ <태양 아래 그들처럼>(Hakkari, Turkey, 2005.) “해발 4천 미터 만년설산 아래 하카리는 4월에야 눈이 녹고 5월에야 꽃이 핀다. 새봄을 맞아 씨 뿌리러 가는 가족들의 설레임 가득한 노래 소리가 산맥을 울린다.” <이하 사진글 : 박노해 ―사진제공 : 라 카페 갤러리>

 

   긴 호흡으로 보면 /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 그러니 담대하라 /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박노해, 「동그란 길로 가다」

 

   변혁의 시대였던 80년대, 박노해 시인은 「노동의 새벽」, 「손무덤」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젊은이들을 노동자 계급투쟁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사형을 구형 받고 7년여의 감옥 생활을 마친 후, 문학예술을 통한 혁명의 길에서 벗어났다. 대신 묵언수행자와 같은 삶을 영위하며 또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망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시인은 지난 15년간 전 세계의 분쟁지역과 전쟁터, 빈곤지역을 찾아다니며 헌신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펜 대신 카메라를 잡았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2010년 <라 광야>전을 개최한 바 있다. 전시회에서는 이라크 전쟁이 피사물의 중심을 이루었다.
   이제 다시 그가 두 번째 사진전을 열었다. 24편의 작품을 선보인 이번 전시회는 분쟁지역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알 자지라는 극심한 내전으로 인해 이제는 가볼 수조차 없는 IS의 본거지가 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작품 속에는 무기력한 가난이나 눈물의 흔적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사의 현장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한 삶의 모습들을 포착하고 있다. 우리는 프레임 속에 담긴 빛과 자연과 사람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표제작 <태양 아래 그들처럼>은 이번 사진전의 테마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해발 4천 미터 만년설산 아래 비탈길을 건너는 가족들은 고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여인과 소년의 모습에서는 가벼운 유머마저 느껴진다. 험한 자연을 다정한 이웃으로 만들 줄 아는 삶의 지혜가 따뜻하다. 한때는 혁명 시인이었으나 이제는 영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묵언수행자로 변신한 작가 박노해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이다.

 

   
  △ <기다리는 여인>(Al Qamishli, Syria, 2008.) 디아나(32) … 쿠르드 독립운동을 위해 산으로 떠난 남자를 기다리며. “오마르는 다정하고 시를 노래로 부르는 멋진 남자예요. 7년 전 이 자리에서 작별할 때 오마르가 말했어요. 행여 내가 돌아오지 못하거든 전쟁이 사라진 어느 봄날 올리브 나무 꽃향기 되어 너를 감싸 안을 거라고…….”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대평원을 피사체로 알 자지라의 일대 장관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지만, 익숙한 삶의 풍경을 담아낸 사진도 많다. 특히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은 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하다. 이는 사진 외에도 문학, 미술 등 예술 장르의 오랜 소재인데 <자야오가>를 비롯해 당시(唐詩)에서도 빈번히 등장한다. 복면에 얼굴이 반 이상 가려진 여인의 눈은 깊고 잔잔하다. “돌아오지 못하거든 전쟁이 사라진 어느 봄날 올리브 나무 꽃향기 되어 너를 감싸 안을 거” 라는 남편의 말을 전하는 여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깊은 우울이 아니라 잠언과 같은 사랑이다.
   갤러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체로 흑백사진이다. 박노해는 다채로운 색감의 표현보다는 명암의 대비를 주로 사용하여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드러냈다. 빛과 어둠의 단조로운 기록은 관객들로 하여금 화려한 현대 시각물이 주는 피로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기회를 제공한다.
   부암동 ‘라 까페 갤러리’는 칠이 벗겨진 의자와 나무 팻말 등 빈티지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마치 이번 사진전과 한 세트 같은 산책길에서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박노해 시인이 슬픔의 먼 지평에서 가져온 것은 눈물의 바다가 아니라 강처럼 잔잔한 평화와 긴 생명력이다. 태양이 뜨거워지는 6월에 폐허 속 행복의 터전을 눈으로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 <내 그리운 ‘바그다드 카페’>(On the way to Baghdad from Palmyra, Syria, 2008.)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만난 시리아 사막길의 바그다드 카페. … 이제 이라크와 시리아는 ‘여행 금지국’이 되었고 내 그리운 바그다드 카페에도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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