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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세월호 이후 ― 을의 민주주의
세월호 이후의 정치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가능성
[190호] 2015년 06월 01일 (월) 진 태 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HK연구교수


   

△ 홍성담, <횃불행진>, 1983, 목판화.

 

   세월호 이후 

   ‘이후’라는 이 단어는 하나의 낱말에 불과하지만 꽤 복잡한 의미망을 포함하고 있다. 작년에 필자는 김남주 20주기를 맞아 발표한 글 「김남주 이후」(『실천문학』 2014년 봄호)에서 ‘이후’의 의미론에 관해 몇 마디 단상을 제시한 바 있다. 그것을 실마리로 삼아 ‘세월호 이후’라는 말의 몇 가지 뜻을 풀어보기로 하자.

첫째, 이후는 당연히 시간적인 의미에서 다음에를 뜻한다.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사건, 그 이후의 시간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둘째, 하지만 이후라는 말은 시간적인 다음에를 넘어서, 어떤 상징적 기점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에 대해서나 이후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후라는 말을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것이 의미 있고 중요한 어떤 분수령에 대해 사용한다. 3·1운동 이후, 광주항쟁 이후, 김남주 이후 등과 함께 우리가 세월호 이후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세월호 사건이 모종의 상징적 기원이 되고 있음을 함축한다.

   우리는 왜 ‘세월호 이후’라고 말을 하는가? 곧 세월호 사건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상징적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을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의 증상으로, 약 7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병리적 증상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세월호 사건에서 대중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리가 보통 가장 단단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국가가 사실은 하나의 커다란 공백이고 검은 구멍이었다는 사실이다(진태원, 「세월호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현실문화, 2015).

국가가 검은 구멍이라는 것은, 나의 국가, 우리들의 국가라고 믿었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실은 그들의 국가라는 것(에 대한 자각)을 뜻한다.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사고 현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대중들이 절망한 것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한 사람의 생명도 구출하지 못한 것은 단순한 무능력을 넘어 무의지의 결과였다는 점이다. 곧 국가는 단지 사람들을 구조할 능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구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가리키는 환유적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 명령이 “가난한 우리를 위한 국가는 없다, 가난한 나를 위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 그리고 다음 차례는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자각”(진태원, 앞의 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는 그들의 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따라서 세월호가 하나의 상징적 기점이라면, 이는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실상을 보고 절망했으며, 과연 이러한 국가를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좋은가라는 의문을 스스로 제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욕망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이후라는 말의 세 번째 의미가 나온다. 이후라는 말은 우리가 이 상징적 기원에 의해 규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곧 우리는 어떤 것을 상징적 기원에 위치시킴으로써, 동시에 그 기원에 의해 규정되고 그것에 의해 (새롭게) 정체성을 부여받게 된다. 상징적 기점으로서의 세월호 사건은 이제 우리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우리에게는 그 기원을 어떻게 상속할 것인가라는 책임이 부여된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만약 우리가 상속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곧 세월호 사건을 망각하고 외면한다면, 세월호 사건은 더 이상 상징적 기원으로서 존립하지 못한다. 그것은 정부가 원하는 대로, 그들이 바라는 대로, 지금까지 일어난 많은 교통사고들 중 하나가 될 것이고, 앞으로 일어나게 될 또 다른 교통사고의 선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각자는 다시 한 번 그 사고의 피해자들이 될 것이다.

   반대로 세월호가 하나의 상징적 기점이고 우리에게는 그것에 대한 상속의 책임이 부과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주체적인 것으로서의 국가 또는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제기된다. 돌이켜보면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인에게 유일한 문제는 먹고사는 것이었다. 해방과 전쟁이 남겨놓은 가난 속에서 사람들에게 지상과제는 하루하루의 생존이었으며, 먹고사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의 유일한 화두였다. 과거에는 그저 끼니를 때우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 좀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 달라졌을 뿐, 유일한 개인적ㆍ국가적 관심사는 먹고사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없다. 이것을 우리가 정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먹고사는 것 이외에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전무한 공동체를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 ‘정치’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세월호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치안기계로서의 국가의 본성은 지난 70여 년 동안 오직 먹고사는 것 하나만을 유일한 가치로 추구해온 대한민국이라는 이상한 공동체의 역사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세월호가 우리에게 상속의 과제로 부과하는 것은 “너희가 욕망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너희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을의 민주주의

    그런데 왜 이것을 을의 민주주의라고 부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을은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정의된다. 하나는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이 있을 때, 그중 하나의 이름을 대신하여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둘째를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다. 앞의 것은 을이 계약 관계에서 두 상대방 중 하나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는 뜻이고, 뒤의 것은 갑, 을, 병, 정 등에서 을이 두 번째 위치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을이라는 말은 아주 평범한 말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을이라는 말은 비정규직 취업자들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대기업의 하청 업체 직원들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들, 또는 재벌 기업의 횡포에 피해를 당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을은 약자이고 피해자, 못 가진 자, 주변화된 자, 배제된 자, 또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린다면 “몫 없는 이들”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된 것이다.

   ‘그들의 국가’로부터 배제되고 주변화된, 따라서 객체화된 을들이 새로운 정치 공동체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을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정치 공동체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천을 가능하게 해줄까?

   자크 랑시에르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또는 에티엔 발리바르 같은 철학자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것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부분은 공동체의 일부분이기는 하되, 기존의 사회 현실과 정치 질서 속에서 제대로 인정받거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집단들, 곧 을을 가리킨다. 이러한 민주주의, 곧 을의 민주주의는 을을 새로운 지배자, 새로운 갑으로 구성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을의 민주주의라는 화두가 묻고자 하는 것은 을이 지배자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주인이 아닌(따라서 또 다른 하인이나 노예를 전제하지 않는)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다. 

   이러한 을의 민주주의는, 빈민을 빈민이 아니라 데모스로, 시민으로 만들어주며, 재벌이나 대통령, 국회의원도 하나의 데모스로, 시민으로 만들어주는 그러한 민주주의다. 따라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더 이상 ‘그들의 국가’, 치안기계로 작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을의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세월호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한 가지 상속의 과제다.

   

△ 시민들이 직접 접어 만든 노란 종이배로 채워진 투명 유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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