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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의 모범답안
영화 <팔로우>(It Follows)
[189호] 2015년 03월 23일 (월) 듀나 SF작가·칼럼니스트
   
   모든 장르는 클리셰로 시작된다. 후배들이 선배들의 공식을 훔치고 모방하며 진부하게 만들면서부터 장르가 탄생했다. 완벽하게 독창적인 장르물은 없다. 그것은 장르의 정의에 어긋난다. 타고난 진부함은 의무이다. 장르물의 의무는 완벽하게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르의 기반이 되어주는 진부함의 기반 위에 자기만의 신선함을 얹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망가진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진부함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관객들이 자기 작품을 장르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걱정이 한가득인 그들은 이미 팔레트에 있는 색만 골라서 쓰면서 모든 새로운 것들을 거부한다. 반대편에서는 장르를 경멸하며 자신이 엄청난 모험을 하는 신선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는데, 이들도 대부분 무너진다. 장르를 경멸하기 때문에 장르를 공부하지 않고, 그 때문에 자신이 엄청난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진부한 것인지 끝까지 모른다.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의 호러 영화 <팔로우>는 거의 모범생과 같은 태도로 이 양쪽의 함정을 피해간다. 호러 장르에서 ‘모범생’이라는 건 그렇게 좋은 칭찬이 아니다. 피와 살이 찢겨 나가는 이 난폭한 장르가 원하는 건 참한 모범생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야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로우>는 야수가 되려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최근 나온 호러 영화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안착한다.
   <팔로우>는 어떤 영화인가. <링>처럼 운 나쁜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는 초자연적인 존재 이야기이다. 주인공 제이는 남자친구와 섹스를 한 뒤로 저주에 걸리는데, 그건 정체불명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그녀를 죽이려고 천천히 따라온다는 것이다. 요새 호러 영화답게 <팔로우>는 제이가 걸린 저주에 꼼꼼한 규칙을 제공해준다. 저주를 풀려면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해서 저주를 넘겨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죽으면 다시 저주는 돌아온다. 그 존재는 늘 다양한 사람의 모습으로 위장해서 나타나는데,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는 사람을 흉내낸 것일 수도 있다.
   뻔해 보인다. 호러 영화라는 게 원래 무서운 무언가가 주인공을 쫓아오는 내용이 대부분이니까. 하지만 그 ‘따라온다’라는 것 자체를 호러 소재로 삼은 영화가 얼마나 될까. 이건 거의 콜롬부스의 달걀과 같은 아이디어로, 뻔하면서도 새롭다. 하나의 아이디어로 장르 안에서 반드시 해야 할 임무 두 개를 동시에 해치운 것이다.
   물론 아이디어만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법이 문제인데 미첼은 이중적으로 모범생이다. 장르면에서 그는 냉정하기 짝이 없다. 관객들이 무서워하지 않을까봐 걱정하며 호들갑떠는 대신 그는 무섭지 않은 장면들은 그대로 두고 무서운 장면에만 최대한 신중하고 정확하게 테크닉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면서도 그가 다루고 있는 캐릭터들은 다른 호러 영화에서처럼 소모하는 대신 따뜻하게 살아있는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건 의외로 따라하기 쉬운 방법이다. 형편없는 호러 영화의 아이디어를 가져와 정확히 반대로만 하면 되니까. 나는 얼마 전 <검은손>이라는 끔찍하게 못만든 호러 영화를 보았는데, 그 영화는 태도에서부터 아이디어 활용법까지 <팔로우>를 그대로 뒤집은 것 같았다. 물론 그걸 다시 한 번 뒤집는다고 <팔로우> 같은 영화는 나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검은손>은 안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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