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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서평]‘원(遠)-근(近) 읽기’의 도식에서 떨어져 나오기
Franco Moretti, Distant Reading, Verso, 2013
[189호] 2015년 03월 23일 (월) 윤재민 문학평론가
   

   사적인 고백 하나. 아직은 장래 나의 연구가 학계와 사회에 유의미하게 축적되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텨내고 있을 뿐인 지망생 신분에 불과하지만, 나는 문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너무나 즐겁다. 문학이 근대의 미적 이데올로기로서 국민국가 형성에 이바지하는 데 기여했다는 반박하기 난망한 정설에 가까운 학제적 추측(conjecture)에 멈춰서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쯤되면 (한국에서 대체로 그렇듯이) 아직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고 믿어지는 참신하고 저명한 외국 이론의 소개로 이 난국을 타개할 차례이다. 민족문학 연구로 더 이상 뭘 할 수 있겠냐고?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세계문학이다. 약 이백 년 전 괴테의 추측을 계승한 흥미로운 방법론이다. 유럽의 축적된 노블(novel) 분석방법론에 현달한 상태에서 자기만의 흥미로운 시각으로 『근대의 서사시』, 『세상의 이치』 등 매력적인 문학연구저서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프랑코 모레티가 세계문학론에 가세했다. 문학연구의 정도이자 기본 소양 중의 소양이라 믿어지던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라는 철옹성 같은 통념에 문제를 일으킬, 떨어져 읽기(distant reading) 정도로 번역될 법한 타이틀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모레티의 떨어져 읽기는 세계문학론에서 파생한 여러 추측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추측이 꽤나 급진적이다. 문학이란 태생적으로 ‘읽기(reading)’라는 행위를 경유해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모레티는 바로 이 통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까지 문학연구는 ‘읽힐법한’, ‘읽힐만한’, ‘읽어야 하는’의 차원에서 ‘읽기’에 접근했다. 이러한 선택적인 읽기에 의해 정전(canon)이 형성되었으며, 문학연구는 형성된 읽기의 통념 아래서 그것의 환기 혹은 확장을 도모해 왔다. 한 사람의 연구자가 평생에 걸쳐 읽을 수 있는 읽기총량은 전지구에 걸친 축적된 문학의 총량을 생각하면 백사장의 모래 한 알이다. 모레티는 지금까지 문학적 ‘읽기’의 차원에서 말해지지 않았던 ‘읽히지 않은 방대함(great unread)’을 문학연구의 ‘읽기’차원에 도입한다. 모레티의 떨어져 읽기는 문학 일반의 ‘읽기’를 반대하거나 기각하는 수사가 아니다. 문학연구의 방법론 차원에서 제시된, 학문적 문제를 일으키기 위한 엄연한 개념적 추측이다. 모레티가 새로운 방법론을 지향하는 문제 지점에서 새로운 과학이 탄생한다는 맑스 베버의 학문(wissenschaft, sience)을 인용하며 세계문학을 위시한 자신의 떨어져 읽기 개념을 전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일각에서 모레티의 떨어져 읽기를 문학읽기 자체를 기각하는 반문학주의의 소산으로 몰아가기도 하는 듯한데 대체 책을 어떻게 읽는 건가 싶다. 반대로 떨어져 읽기라는 방법론을 일면적으로 받아들여 문학연구를 도큐멘트를 이용한 전산처리 업무처럼 접근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한심한 세태의 새 장이 열리고 있는 중인듯 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러모로 즐겁다.

   『Distant Reading』에서 모레티가 제시하는 추측들은 빛나는 영감을 선사한다. 그 중 가장 매혹적인 추측은 페르낭 브로델의 아날학파식 세계체제 방법론에 기대어 유럽발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블형성과 그 전파를 설명하는 챕터에 있다. 물론 카사노바 등이 앞서 선보였던 접근방법이다. 모레티의 특유한 지점은 소비의 메커니즘으로 세계체제를 이해하여 세계문학에 접근한다는 데 있다. 오늘날 노블과 그것의 친족장르 형식들의 연관관계와 전지구적 전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단초가 될 발상이다. 『Distant Reading』은 떨어져 읽기라는 학술적 흰소리(jargon)를 제시한 책 정도로 치부되기엔 애석한 책이다. ‘원-근 읽기'의 도식에서 허우적대는 한심한 세태에서 떨어져 나오는 ‘읽기'를 통해 모레티의 추측과 발상이 시사하는 바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앞으로도 문학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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