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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노예 의식의 반란을 꿈꾸며
[189호] 2015년 03월 23일 (월) 김성환 대진대 철학과 교수
   

 

   전공이 철학이고 직업이 가르치는 것이라 세월호 참사를 보며 자주 떠올린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따른 결과는 참혹한 몰살이었다. 만일 당신이 세월호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느냐는 질문에 대학생들도 대부분 가만히 있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큰일 났다. 제2, 제3의 세월호가 생겨도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구해줄 수 없을 텐데 어떡하나? 정부가 스스로 변할 리 없으니 우리가 변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학생들은 철학자 헤겔의 눈으로 보면 노예 의식의 소유자들이다. 노예라는 말에 화부터 내지 않길 바란다. 헤겔은 주인 의식이 아니라 노예 의식이야말로 반전을 이루면 진정한 자립 의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생사를 건 인정 투쟁에서 승리한 주인의 의식은 마치 조폭이 상대를 짓밟고 “꿇어!”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가짜 인정으로 가득 차 있다. 벌레처럼 짓밟힌 사람에게 받는 인정이 진짜일 수 없다.

   노예가 인정 투쟁에서 패하는 이유는 공포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는 학생들이 느낀 감정일 것이다. 학생들은 죽음이 두려워 바다에 뛰어드는 대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린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그러나 노예는 자기 노동 덕분에 주인이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진짜 주인은 자기라는 걸 깨닫는다. 주인은 자기 힘으로 먹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노예야말로 자기 힘으로 주인도 먹여 살린다. 그러니까 진짜 자립하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노예다. 반전이 일어난다.

   스스로 생각하려면 노예 의식에서 반전을 시도해야 한다. 죽음이 두려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내가 진정 자립의 출발점에 서 있는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배가 침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런 의문을 떠올릴 마음의 여유가 어디 있겠냐마는 평소에 공포, 분노,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을 스스로 생각하는 이성으로 조절하는 연습을 조금씩 하는 수밖에 없다.

   살아 돌아온 학생들은 친구들을 떠나보낸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든 반전을 시도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이 반전을 시도하지 못했다고 탓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처지에 있으면 십중팔구 주저앉는다. 이 학생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 내 일이라 생각하니 부끄럽다. 그러나 수치와 절망으로 학생들을 두 번 죽일 수 없다. 노예 의식의 반란을 꿈꾼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참이라고 믿는 지식을 모조리 의심한다. 조금도 의심하지 못할 지식은 없다. 그러나 모든 지식을 의심하려면 의심하는 나는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가 저 유명한 말의 참뜻이다.

학교와 사회는 학생들에게 생존과 적응을 이유로 의심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심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의심이 없으면 소통도 없다. 수업 시간에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질문하라고 요구한다. 잘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나 이상한 것은 다시 물어보라는 뜻이다. 선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지 또 설명이 정확한지 의심해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질문이 없으면 대답도 없으니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심이 소통의 출발점이다. 소통을 강조하면서 의심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다.

   세월호는 산교육이다. 침몰하는 배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며 해체하고 분열하고 동요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음성과 문자와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아 우리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반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절규한다. 세월호 학생들은 부자와 재벌이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을 짐보다 천대하고 국민을 미개인으로 업신여긴다고 가르쳐준다. 박근혜 정부는 골든타임에 해경과 해군에게 배 안으로 뛰어들라고 명령하지 않고 국민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린다고 가르쳐준다. 부와 권력과 공생하는 언론 매체는 세월호가 지겹다는 잔인한 여론을 조장해 국민의 마음을 쪼개놓는다고 가르쳐준다.

   참교육은 참혹한 산교육과 함께 시작한다. 학생들이 노예 의식에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생각하게 돕고 싶다. 공포의 감정이 엄습하는 순간 이성을 완전 마비하지 않고 의심의 틈 열어놓기. 이 길을 찾고 가르쳐야 나도 그나마 밥값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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