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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마주하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188호] 2015년 03월 23일 (월) 309동 1201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필자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아카데미의 삶을 계속해 온 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돌이켜 보면 나를 수 식한 직급은 언제나 ‘조교’였다. 연구소에서, 학과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기숙사에서, 대학의 상 상 가능한 다양한 공간에서 나는 존재했다. 석사 1기 시절, 연구소장은 어느 학회에서 나를 “잡일 돕는 아이”로 소개했는데, 과정생 시절의 내 포지션을 그만큼 잘 나타내는 말도 없었다. 연구소의 무급 연구원으로 등록된 박사수료생 선배에게 그 일화를 전하자 그는 “내가 잡일을 하고 너는 잡일 하는 나를 돕고 있으니까, 그건 정말이지 정확한 비유다”라며 나를 쉽게 납득시켜 주었다.

  연구소장 은 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학부생을 ‘알바’라고 소개해 그를 한동안 우울하 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연구소/대학의 신자유주의가 “수료생=잡일, 과정생=잡일보조, 학부 생=아르바이트”의 구도로 이미 공고하게 구축되어 있었던 셈이다. 연구소장이 ‘잡일’이라고 정확히 규정해냈듯, 대학원생 조교는 정말이지 대학의 모든 잡스러운 일 을 도맡아한다. 조교라는 직함은 명목상이고 ‘전천후 잡부’에 가깝다. 그 업무를 굳이 나열하는 것 만으로도 지면을 가득 채울 수 있다. 가끔은 뉴스에서 부당한 처우 운운하며 간간이 다루어 주는 그 러한 일들도 한다. 나는 석사 1기부터 박사 4기까지 대학원 과정생 신분으로 있는 동안 매학기 조교 로 근무했다. 학과사무실과 연구소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왕복했고, 검수 받을 물품이나 서류를 들고 대학본부를 드나들었다. 교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면 비로소 연구실에 들어가 과제를 하거나 논문 을 읽을 여유가 생겼지만, 학회나 학과 행사 준비로 그러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 밤조차도 온전한 나 의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격일제 기숙사 조교 일도 했다.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기숙사에 서 숙직을 섰다. 공부를 할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학생들의 사건사고가 많았다. 연구는 고사하고, 그저 대학원 수업의 과제를 따라가기에도 벅찬 생활이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이하 ‘지방시’)는 그러한 삶을 돌아보고자 쓴 개인적인 글이다. 대학원 에 진학한 동기부터, 학과 사무실과 연구소에서 조교로 근무하며 겪은 기억할 만한 일화들, 학위논문 인준 과정,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대학 강의와 병행하며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생계를 꾸려가는 현재까지를 순차적으로 담았다.

  연재 초기에는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 그러니까 선후배 연구자나 지도교수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그 러나 연재를 거듭하며 점차 나를, 그리고 우리를 포위한 어떤 거대한 ‘괴물’이 조금씩 내 앞에 모 습을 드러냈고, 곧 그와 마주했다. 그것은 어떤 개별 주체가 아닌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 그 자체 였다. 대학원 과정생이든, 수료생이든, 시간강사든, 교수든, 아카데미 안의 그 누구이든, 그 안에서 는 온전히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비로소 인식했다. 그에 더해 대학원생 조교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써 주어 고맙다”는 내용의 공감과 응원을 많이 보내 주었는데, 덕분에 나 홀로 유난히 박 복한 청춘을 보내지 않았음을 알았다.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는 아카데미가 구축한 신자유주의적 생태계 안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어 있었다. 학부 근로장학생이, 대학원생 조교가, 계약직 교직원이 대학 행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4개월짜리 계 약서를 받아 든 시간강사와 연봉 3천만원의 강의전담교수들이 강의실을 채운다. 대학은 더 이상 정규 직 교직원을 채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학과 행정을 담당할 교직원을 두지 않는다. 그 행정공백을 고 스란히 학과 교수, 시간강사, 대학원생, 학부생이 떠안은 것이다. 특히 대학원생이 조교가 되어 교직 원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으면 당장 학사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학과/부서가 적지 않다. 그런데 내가 조교 수당으로 받은 돈은 한 학기 등록금의 반을 간신히 상회하는 정도였다. 학자금 대출을 항상 한 도까지 받아 부족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했다. 대학은 고용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최저시급은 물론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그 어떤 수당도 지급하지 않았다. 대학원생은 대학 행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 노동자’이지만 막상 등록금을 내거나 노동에 따른 보수를 지급 받을 때에 한해 철저히 ‘학생’으로 대우받는다. 대학은 숭고함과 신성함으로 은폐된, 근로기준법의 치외법권지대나 다름없다.

  대학이라는 ‘괴물’과 마주하고서, 비로소 내 옆이 보이기 시작했다. ‘학생’으로서도 ‘노동자’ 로서도 감내하기 힘든 삶을 함께 버텨 온, 그리고 앞으로도 버텨 갈 동료들이 있었다. 서로의 삶을 책임져 줄 만큼 여유 있는 대학원생은 없으나,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그리고 그 손을 잡아 주는 것, 그렇게 서로를 향한 다정다감함을 잃지 않으며 연대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한 발 더 나아가게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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