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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야만의 길항으로 주조된 굶주림의 역사
클라이브 폰팅 저, 김현구 역, <진보와 야만>, 돌베개, 2007.
장 리글러 저, 유영미 역,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2007.
[140호] 2007년 04월 09일 (월) 권두현 편집위원

1950년대, 대한민국의 신문을 들춰보신 적이 있습니까. 박정희의 근대화 드라이브가 본격화되기 이전, 우리는 전쟁고아들이 넘쳐나는 사회를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1950년대라는 특수한 시에만 존재했던 상황일까요. 아닙니다. 계몽과 위생을 강조하던 근대 초기의 삶도 비단 이와 다르다고는 할 수 없을 것 입니다.

현재를 소급해봅시다. 현재는 어떻습니까. 진보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의미망을 구축해냅니다. 정치에서의 진보, 경제에서의 진보, 사회 그리고 문화에서의 진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야만을 그 변별점으로 구획해냅니다. 진보가 다양해진 만큼 다양한 야만들이 존재하게 되었지요.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야만이 도처에 놓여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는 진보가 아니라 야만이 우리를 감시합니다. 야만을 몰아내고 진보를 향해 치달아온 발전사관, 헤겔의 변증법적 사관에 의거한다면 이와 같은 전도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지요.

좬녹색세계사좭로 알려진 클라이브 폰팅의 저작 좬진보와 야만좭은 진보와 야만 사이의 투쟁에 대해 본격적으로 언급합니다. 도처에 놓여있는 야만이란 이 책이 주제로 삼고 있는 ‘환경’, ‘지구화’, ‘탈식민지’, ‘독재’, ‘억압’, ‘제노사이드’ 등의 소제목을 통해 여실히 드러납니다. 변증법적 사관에 의거한 통사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보더라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1990년대에 미국의 1인당 소득은 자이르보다 평균적으로 80배 더 높았다고 합니다. 당시 많은 나라에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89개국의 사람들이 1980년대보다 훨씬 더 가난해졌고, 43개국의 사람들이 1970년보다 더 가난해졌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부의 하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상대적인 접근법과 절대적인 접근법의 문제를 뛰어넘어 ‘양’의 문제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단순히 국민소득을 인구수로 나누는 방법으로만은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 평균치는 사회들 내부의 매우 뚜렷한 차이를 은폐한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입니다.

이 차이는 질을 양으로 변환시키는 너무도 분명한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합니다. 질을 양으로 변환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으로 환원되지 않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 야만은 바로 이러한 공포와 직결됩니다. 질이 아닌 양이 강조될수록, 경제적 가치는 그 막강함을 더해갑니다.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패러다임, 전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패러다임은 이와 같은 물상화의 법칙입니다. 문화 컨텐츠와 거래되는 상품을 보십시오. 농산물과 문화 컨텐츠가 과연 같은 맥락 하에서 교환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뿐만은 아닙니다. 이상의 지적이 경제와 연관을 맺는다면, 정치에 있어서는 ‘독재’의 방식이 여전히 유효한 사회가 바로 이 책이 지적하고 있는 현대 사회입니다. 20세기 말에 세계의 대다수 국가는 군사 통치하에 있거나 아니면 개인 독재 혹은 일당제 정부 하에 있었습니다. 옛 공산 국가와 지금도 잔존하는 공산국가들을 제외하면, 40개 이상의 나라에 군사 통치자가 있었고, 터키, 타이, 남한, 타이완,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22개국에는 군대가 중심적, 규정적 역할을 하는 군사화된 정당 제도가 있었습니다.

30개에 약간 못 미치는 국가가 일당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고, 많은 경우 이 상황이 헌법에서 공식화되었습니다. 세계인구의 압도적 다수는 자신들이 통치 받는 방식에 관해 발언권이 없었죠. 최근 탈식민담론에 부합하여 서벌턴의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현대인 그 누구도 서벌턴을 향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우울한 일입니다.

결국, 진보와 야만의 투쟁은 거시적 차원의 세계사에서 그리고 미시적 차원의 일상사에서 여전히 유효한 테마이며, 테마이기에 앞서 인간의 그리고 인류의 삶을 구성해내는 주효한 작동 원리입니다. 진보를 넘어 첨단을 향해 끊임없이 치닫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의 삶이 바로 그 예이겠지요. 첨단의 수식어만 지워버릴 수 있다면, 현대라는 시공간 안에 그 좌표를 설정해야 하는 우리 모두는 얼리 어답터일 수 있겠습니다. 물론, 현대라는 좌표를 그려낸 우리네 선조들 또한 얼리 어답터이겠지요.

하지만 얼리 어답터의 지위를 부여받기 위한 자격을 생각해봅시다. 그것이 혹시 ‘자본’은 아닌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자본’이 얼마나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느냐의 문제, 그것은 국경을 훌쩍 넘어섭니다.
진보와 야만의 길항을 동시성의 비동시성과 함께 언급할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됩니다.

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좭의 지은이 장 리글러는 2000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로서, 그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그것은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만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 세계 식량과잉의 시대에 어떻게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죽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다국적 기업과 강대국 위주로 돌아가는 냉엄한 시장질서와 그로 인한 파괴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정치개혁이 필요하며, 그것에 앞서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가 절실하고 있다고 저자는 토로하고 있습니다.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어.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자연재해, 기근, 종족 분쟁은 선진국의 정부나 국제원조 기구, 국제여론 등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자들은 점차 망각의 제물이 되고, 문제 자체의 존재마저 잊혀버리지. 그리고 깊은 고독 속에서 죽어가게 돼. 처음에는 강했던 국제적인 연대감도 시들해지고. 토지개량도, 사막화 대책도, 빈민가의 인프라 정비도, 농업지원도, 우물 파기 프로젝트도 결국은 헛수고로 끝나버릴 응급조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권두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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