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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발전의 함정’에 갇힌 한국대학
[188호] 2015년 03월 23일 (월) 박 가 분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장
   
 고대 그리스의 '아카데메이아(Academeia)는 철학을 중심으로 논리와 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가르치며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1. 한국 대학의 몸집 불리기

  근대적인 의미에서 한국 대학의 역사적 기원으로 소급해 들어갈 때 불행하게도 일제시대를 기점으로 잡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절 제대로 된 종합대학(University)에 그나마 가까웠던 것은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이 유일했다. 1946년 해방 직후 경성제국대학은 미군정이 이식한 ‘국립대학안’(국 대안)을 계기로 ‘국립서울대학교’로 전환되었고, 1949년 토지개혁정책의 일환인 농지개혁법을 계기 로 다수의 지주와 토호세력이 과세와 토지몰수를 피하기 위해 우후죽순으로 사립대학을 설립했다. 즉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등 다수 사립대학교의 역사적 기원은 (친일)지주세 력의 탈세와 토지몰수에 대항한 자산도피의 목적에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당시 고등교육기관은 19 개(관학 15개, 사학 4개)에 불과했으나, 토지개혁 직후인 1950년에 이르면 5년 사이에 대학의 수가 33개교(국공립 7개, 사립 26개)로 증가한다. 당시 대학설립에 대한 특별보상을 받은 재단 중에서 사 학재단이 64%로 압도적 비율을 차지했다. 사립대학이 폭증하면서 사립대 위주의 대학 체제가 형성되 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이 시기에 보성전문학교와 동국대학교 등 전문학교들이 사립대학으 로 전환하는 일들이 속속 진행된다.

  사립대학교의 설립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50년 당시만 해도 사립대학교 수는 불과 26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2013년 대학교육연구소의 통계 기준으로 보면 사립 일반대학 숫자는 291개에 달한다. 1945년 기준으로 1만 6천에 불과했던 대학생이 2012년 기준으로 300만에 도달했다. 이러한 대학의 몸 집 불리기의 속도는 대학원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대학원 제도는 1953년 대학원 규정(문교부 훈령 )으로 처음 마련되어 1959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으로 처음으로 구체화되었다. 1975년 약 21만 명인 대 학생 수가 2001년에는 173만 명으로 약 8배의 증가율을 보인데 비해, 일반대학원 학생 수는 1975년 8 천 명에서 2001년 11만 3천명으로 약 14배의 증가율을 보였다. 2012년 현재 일반대학원생의 숫자는 재 학생 기준만으로도 33만 명에 달한다. 이는 대한민국 인구의 갑절이 넘는 일본의 대학원생 숫자보다 더 많은 수치이다.

  이러한 대학의 몸집 불리기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한국사회 특유의 교육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러 한 교육열에 편승해서 재산을 늘리고자 했던 사립대학교 운영주체의 이해관계도 한 몫을 했다. 사립 대학 설립에 이익이 결부되어 있으니 양적팽창은 당연한 일이었다.

  

   2. ‘인적자본론’과 ‘재정부담’이라는 이중잣대

  2000년대 들어 80%에 육박하는 사립대학 위주의 한국 대학제도의 추세가 더 가속화된 시점은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으로 볼 수 있다.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시장질서에 따른 대학사회의 재편이라 는 기치를 내건 이와 같은 개혁조치는 궁극적으로는 대학의 폭증과 입학정원의 비약적인 증대로 나타 났다. 무엇보다 등록금도 급등하기 시작했다. 2012년 현재 사립 일반대학 교비회계 운영수입 중 등록 금수입 비중은 66.6%에 달했다. 1950년대에도 이미 비싼 등록금 문제가 있었지만 이 문제는 특히 시 장논리에 맞추어 등록금 책정 자율화를 허용한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따라서 대학 시장화 이후 사 립대학의 양적팽창이 가속화되었고 이와 더불어 가계소득의 교육비지출 비중도 폭등했다.

  이러한 대학의 양적인 팽창은 흔히 ‘인적자본’(Human Capital)의 논리로 뒷받침되었다. 자원이 없 는 나라에서 교육에 대한 값비싼 투자는 당연한 것이며, 그것이 한국사회의 성장동력(인적자본)이 되 므로 대학을 더욱 더 시장주의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반값등록금’ 논의를 전후 로 가계의 지출여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교육이 공적 책임의 문제가 되자 이렇게 몸집을 불려온 대학 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비용’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인적자본’과 ‘비용 ’이라는 두 관점을 이중잣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몸집을 마구잡이로 불리고 등록금을 빨아들일 때 이것은 의미 있는 ‘투자’라고 선전하다가, 교육비 인하를 요구받을 때 대학당국은 이를 재정부담이 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담이 된다면 왜 남에게는 그러한 부담을 강요했는가? 애초에 교육에 대한 책임의식 없이 정신분열증적인 경제논리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3. 발전의 함정에 갇힌 대학

  발전의 함정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개발도상국들이 이루는 경제성장보다 이를 위해 감당해야 할 사 회적·제도적 비용이 더 큰 난국을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한 개발도상국이 경제성장을 위해 무역 과 금융시장 개방을 하고 제반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외자차입을 할 때, 사회적 갈등, 투기 및 금융 적 혼란, 금융비용 증가, 부정부패, 사회적 비용과 이를 조정하기 위해 또 다른 제도적 비용을 감수 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빈곤해지고 혼란해질 때 발전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타학교의 사례이지만 필자가 속한 고려대의 예를 들어보자. 최근 취임한 염재호 신임총장은 취임 이 전에도 총장선거 국면마다 산학협력 수익 창출과 새로운 캠퍼스 조성과 그리고 유학생 유치를 약속했 다. 이번 총장선거에서는 재단의 개입으로 ‘재정확보’가 주된 화두가 되었다. 그 동안 제기되었던 재정확보 방안은 크게 세 가지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유학생 유치, 기부금 모집, 산학협력 등을 통 한 수익창출. 이 모두 기존보다 대학의 몸집을 불려야만 실현될 수 있다. 특히 염총장의 공약에는 세 종시에 (정부기관으로부터 연구를 수주 받을 것으로 보이는) 융복합 연구단지와 사이언스파크 국제고 교를 통한 수익창출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여기서 빠진 것은 그만한 '비용'의 증가이다. 그러면서 도 염총장은 취임사에서 이러한 대학의 발전계획을 위해 정부 측의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자율이 보장되지 않고 형평성만이 강조되는 대학정책의 틀” 속에서는 미래에 대처할 수 없다고 말이다. 특 히 그는 “3불정책, 반값등록금, 구조조정 등으로 대학의 자율은 정책적 통제의 틀에 힘겨워하고 있 습니다. 공교육은 황폐해지고 있고, 사교육비의 가계부담은 저출산 문제를 심화시키는 심각한 사회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상한 진단이다.

  각 대학은 그 동안 경쟁적으로 프로젝트 및 유학생 유치 방안을 발표했지만 문제는 거기서 발생하는 비용을 적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현재 고려대 어학연수생 및 유학생 수는 2400여명으로 재적 기준으로는 10%를 넘어섰다. 하지만 기숙사 수용률은 10% 남짓이다(대학알리미 기 준). 어학연수생에 밀려 대학원 유학생들의 기숙사 수용률은 이보다 더 형편없다. 유학생을 유치했다 면 최소한 그들의 주거를 보장해야 하지만 그 비용을 치르지 않은 것이다. 주거를 확보하지 못한 유 학생은 난생 처음 보는 한국의 비싼 보증금 제도를 겪으면서 하숙집을 전전해야 한다. 여기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그 동안의 대학발전의 핵심은 비용을 외부에 전가하면서 몸집을 불려온 데 있다. 프로 젝트 수주에 도움이 되는 이공계 학생의 정원도 꾸준히 늘려오면서 이공계 냉난방시설과 기본적인 실 험실/연구실 확보도 안 되어 있고 기혼자 숙소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이것은 언젠가는 (정부의 기숙사 수용률 제고 지침처럼) 정책적 규제와 더 큰 제도적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고려대를 위시하여 많은 대학들은 그 비용을 치르기 위해 더욱 양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현재 중앙대의 학과통폐합 및 구조조정도 엄밀히 말해 구조조정이 아니라 돈이 되는 학과의 규모를 늘리고 더 많은 학생과 프로젝트를 유치하겠다는 발상에 기초에 있다. 이 역시 결국 발전의 함정에 부딪힐 것이다.

  기부금조차도 발전의 함정을 악화시킨다. 많은 학교들이 기부금으로 이월적립금을 늘려왔지만 어디에 쓰일지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제대로 쓰이지도 않는다. 실제로 많은 기부금은 용도가 정해져 있 고 그것은 재차 대학의 몸집불리기를 더 가속화한다. 건물을 화려해지고 높아지지만 청소노동자의 근 무환경은 악화되고 교육환경도 개선되지 않는다. 기부자들도, 대학도,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다. 그 비용은 오롯이 강사, 학생, 노동자 등 구성원의 몫이다.

  

   4. 몸집불리기의 악순환을 끊을 때

  고려대는 그 동안 무분별하게 몸집을 늘려온 대표적인 사립대학 중 하나이다. 학부, 일반대학원, 전 문대학원 재적학생을 포함하면 이제 3만에 육박하는 규모이고 이들의 처우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데 또 무슨 제3 캠퍼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나온다. 이는 현재 공동화된 서울대 평창캠퍼스의 전철 을 뒤따를 것이다.

  비단 고려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대학들에게 놓인 진정한 도전은 더 이상의 몸집 불리기를 동 반한 발전이 아니라, 학벌사회 해소와 학령인구 감소를 대비한 연착륙이다. 다시 말해 학벌이 그 이 점을 상실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도 줄어드는 시점에 어떻게 대학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지금의 몸집은 언젠가 비용이 된다. 현재 대학의 몸집 불리기를 주도해오고 이익을 취한 세력이 그 비용을 치루고 대학운영에 관한 사회적 통제를 수 용해야 한다. 또한 구성원들은 더 이상의 발전계획에 속지 말고 학교의 소유 및 운영주체에게 교육적 책임을 묻고 때로는 싸워야만 한다. 구조조정의 대상은 발전의 함정으로 구성원들을 몰아넣은 대학자 본이지 학생과 교원 그리고 노동자들이 아니다. 결국 투쟁만이 장기적으로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학 문공동체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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