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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취업을 준비하는 졸업생 박 군에게
[188호] 2015년 03월 23일 (월) 김 남 시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교수

   
 △ 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을 위한 습작>, 1976.
   
  자네가 졸업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돼가네. 잘 지내고 있는가? 요즘 들어 자네 세대들이 얼마나 크게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했는지 자주 생각한다네. 자네를 대학에 입학시키려고 자네 부모님이 지출했던 사교육비는 말할 것도 없고, 자네 역시 등록금 대출로 금융시장 활성화에 기여했으며, 최저임금 받으며 알바 뛰느라 지역경제에도 이바지했으니 말일세. 그런 과정을 거쳐 졸업하고도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가 된 자네의 앞날을 위해 직장을 구해야 할 텐데 그 역시 녹록하지 않을 것이네. 부모님과 자네 세대들의 반 강제적 협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오히려 신입사원 채용인원을 줄이고, 부모님 세대들은 정리해고로 쫓아내고 있는 상황이니 말일세. 그렇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다시 은행 대출을 받아 편의점, 치킨집,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을 차리고는 다시 자네 같은 대학생들을 값싼 알바로 고용하겠지.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의 경제란 자네 부모나 자네 같은 사람들의 돈과 노동력을 뜯어먹으며 살아가는 기생충 같다는 생각도 드네. 그러면서도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대기업들은 비정규직 일자리나 선심 쓰듯 던져주고 있으니.

  자네를 졸업시킨 대학들의 상태도 가관이라네. 대한민국 교육부가 취업률, 재학생 충원률, 전임교원 확보율, 교육비 환원률, 장학금 지급률 등의 지표로 대학들을 평가해, 낮은 평가를 받은 대학들에게 국가/지자체 재정지원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대학 구조개혁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네. 이것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육성’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배제’하고 ‘제한’하려는 사업임은 교육부 공식문건의 제목 -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평가 기본계획” - 만 봐도 알 수 있지. 어쨌든 이 무시무시한 협박 앞에서 거의 전 대학들이 사생결단하며, 자네들이 기말 리포트를 제출할 때처럼, 기한에 맞춰 자체평가서라는 걸 만들어 제출해야 했다네. 여러 대학들이 그를 위해 유명 컨설팅 회사에 자문을 받기도 했네. 컨설팅 회사 입장에서는, 불황 탓에 컨설팅 비용을 삭감한 기업들 대신, 높은 평가지표 달성을 위해 기꺼이 고액의 컨설트 비용을 지불하는 대학이라는 노다지 고객을 발굴한 셈이지. 대학이 지불하는 그 비용 대부분이 결국 자네들의 등록금에서 나온 것이니, 이쯤 되면 자네 부모나 자네 같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경제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가장 만만한 물주가 되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걸세.

  교육부 평가지표 상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취업률이라, 대학들은 취업률을 높이려 갖은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지. 취업공고를 안내하고, 자기소개서 작성법과 면접요령을 교육시키는 등의 평상시 업무를 넘어서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사업들이 벌어지고 있다네. 여기서 잠깐 한 번 생각해보게. 취업률을 대학평가의 중요 지표로 설정해 취업률을 두고 대학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든 교육부 정책이 대한민국 전체 차원에서 어떤 효과를 갖게 될는지. 이것이 국가 전체 청년 실업률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어차피 한정된 일자리에 모든 대졸자들이 몰려 경쟁하는 상황에서, 한 대학 취업률의 증가는 다른 대학 취업률의 감소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 테니 말이야. 그러니 이 정책은 개인들이 벌이던 취업 경쟁의 전장에, 대학들을 추가로 등원시킨 것 말고는 어떤 사회적 효과도 없다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내야 할 정부 업무의 실패와 무능력을, 대학들이 취업 위주 교육을 하지 않은 탓으로 돌리기 위한 명분을 덤으로 챙기면서 말이야.

  물론 취업준비를 하는 졸업자들은 그를 통해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도움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졸업생 취업률을 높이려는 대학의 취업지원 사업은, 자네들의 인생과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대학 평가지표 점수를 위한 것이네. 그래서 적지 않은 졸업자들에게 부담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 아마 자네도, 졸업 후에도 귀찮으리만치 자주 학교의 연락을 받았을 걸세. 졸업생 취업현황을 조사하기 위해서지. 졸업생들이 취직은 했는지 아직 구직 중인지를 알려는 것이지. 그 자료가 있어야 취업 대책을 마련할 테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부모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자네들에게 매분기마다 ‘취업 하셨나요?’라고 묻는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지. 어떤 졸업생들은 학교에서 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거나 수신거부를 해놓기도 한다더군.

  그뿐이 아니네. 졸업생 취업률을 높이려고 대학들은 미취업자 특별 관리에 돌입했지. 자네 같은 미취업자는 조만간 학과장이나 교수의 취업 독려 연락을 받게 될 걸세. 취업을 위해 애쓰는 졸업생에게 취업전략을 함께 고민하는 교수의 지원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자네들에게는 미취업 때문에 미안해야 할 사람이 부모님 외 또 한 명 늘게 되는 셈이지. 자네의 미취업이 자네 자신과 가족에게 짐일 뿐만 아니라, 자네가 졸업한 학교의 취업률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켜 줄 테니까 말일세.

  그런데, 그거 아나? 직장보험 없는 비정규직은 ‘취업’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교육부는 건강보험 보장이 없는 비정규직을 ‘취업’상태로 보지 않는다네.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 대학이 자네들의 비정규직 취업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야. 기괴하지 않은가. 정작 일자리는 비정규직만 제공하면서 대학도, 심지어 정부기관도 그를 정식 ‘취업’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물론, 대기업 취업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가 아니고 모든 대졸자가 직장인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교육부도 이를 인정해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취업’으로 산정하는 몇 가지 예외조항을 마련해 놓았네. 1인 창업자와 프리랜서가 그것이네. 스스로 창업을 하거나 학원이나 과외 강사, 작가, 음악가, 공연활동가, 영화 제작자 등 개인 창작활동 종사자들도 ‘취업자’로 봐준다는 거지. 각자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만큼이나 수긍해 준다니 눈물이 날 지경이야. 그런데 너무 좋아하지 말게. 이것 역시 철저히 경제적 지표로 묶어 놓았으니까.

  교육부 지침에 1인 창업자는 “연간 사업 소득액이 1,200만원 이상”, 프리랜서는 “원천징수 사업소득액이 연간 3,266,670원 이상”이라 명시되어 있네. 1년에 3백 30만원 정도의 수입만 있으면, 정상적인 삶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교육부가 인정하는 ‘프리랜서’가 될 수 있다니 감격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자네가 졸업한 대학의 취업률 상승에 기여하지 못한다네. ‘취업’이라고 쓰인 교육부의 명찰을 받으려면, 30년째 오르지 않는 과외비 때문에 중고생들의 눈치를 보고, 매달 작가 지원 프로그램 신청서와 씨름하고, 엄혹한 영화판을 쫓아다니며 번, 그 코 묻은 돈까지 꼬박꼬박 신고하는 성실한 납세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 오직 그럴 때만, 이 땅에서 영혼(만)이 자유로운 프리랜서로 살면서, 대학 취업률 상승에도 기여하고, 정부의 부족한 세수 증가에도 도움을 주는 건실한 애국시민이 될 수 있다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알바생을 향해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라”고 말했던 집권당 대표의 말이 떠오르네. 지금 대한민국은 자네들에게 어떤 세대로 해보지 못했던 “좋은 경험”을 마련해주는데 매진하고 있네. 어쩔 건가? 그냥 따라올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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