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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라구? 너희나 잘 하세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군중, 웅얼거림
[187호] 2014년 12월 01일 (월) 홍덕구 인문학협동조합 이사

   
 
   수년 전 히트했던 대중가요 중에 <12월 32일>이라는 노래가 있다. 해가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을 ‘12월 32일’이라는 조어로 표현한 노래다. 첫눈소식을 들으며 문득 이 노래를 떠올렸다. 실연의 아픔으로도 12월이 끝없이 연장될진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낸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은 오죽하랴. 그분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한없이 못박혀있을 것이다.

   유가족들은 물론이요, 4월 16일을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4·16은 세월호가 침몰한 날일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싱크홀을 덮고 있던 얇은 위장막이 통째로 벗겨진 날이다. 따라서 4·16은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 정권은 끝없이 회자되는 4·16과 세월호가 불편하기만 한 모양이다. 4·16 관련 시민 직접행동에 대한 각종 탄압들은 세월호 침몰을 ‘사건’이 아닌 ‘사고’로, 이후의 시민행동들을 ‘사건으로서의 4·16의 연장’이 아닌 ‘반정부적 사태’로 규정하고픈 현 정권과 집권여당의 의도를 보여준다.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시민사회를 겨냥해 쏟아진 수많은 막말들이 뒤를 따랐다. 세월호 구조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영화 <다이빙벨>은 영화제에서 끝내 상영되지 못했다. 정부 발표에 대해 일말의 의심이라도 품는 사람은 민생을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지목된다. 관료-정치인 집단만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대다수의 ‘미개한’ 국민은 단지 패닉 상태에 빠져 비명만을 반복적으로 내지르고 있다고 보는 듯한 모양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주도했던 용혜인씨는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신 때문에 수백 명이 전과자가 됐다”라고. 이 표현에는 ‘높으신 분들’이 침묵행진을 비롯한 시민행동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함축되어 있다. 즉,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누군가에 의해 ‘선동당한’ 것이며, 그 ‘배후’에는 항상 불순한 누군가가 암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태도의 기저에 정치권의 ‘군중에 대한 공포’가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는 군중을 흔히 ‘광기의 집단’으로 재현한다. 일례로 좀비zombie를 들 수 있는데, 좀비는 빈민가에서 발생하여 부촌이나 쇼핑몰을 습격하는, 지극히 계급적인 괴물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좀비의 공포스러움은 주로 혐오스러운 외형과 ‘그르렁대는’ 소리로 재현되는데. 좀비가 발하는 해독 불가능한‘그르렁거림’은 그것이 일정한 체계로 이루어진 음성언어를 발하는 인간과는 전혀 다른 존재임을 관객에게 새삼 일깨운다. 이와 같은 재현의 태도에는 ‘사회지도층’, ‘엘리트’ 들이 군중(대중)을 바라보는 어떤 태도가 내면화되어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군중은 이성적으로 해석될 수 없고 대화 또한 불가능한, 그저 웅성거리고 그르렁댈 뿐인 ‘군체 괴물’인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 서울시장 후보 아들의 발언이나 2008년 촛불시위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정부의 대응을 상기해 보자. ‘높으신 분들’께서 군중을‘이성적 개개인의 집합’이라고 생각했다면 ‘명박산성’도 물대포도 등장하지 않았으리라.

   4·16 이후에도 그분들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모 방송사 고위간부의 망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시도하려 했던 유가족들을 가로막은 것은 방패를 든 의경들이라는 공권력의 벽이었다. 영화 <월드 워Z>에는 예루살렘을 감싼 거대 장벽이 등장하는데, 어떤 괴물이라도 넘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장벽을 무효화시킨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내부에서 발생한 ‘소음’이었다. 4·16 이후의 수습과정에서도 유가족들과 애도하는 시민들은 이성적이고 침착했지만, ‘소음’, ‘잡음’은 저 방패의 벽 내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쯤 되면 정작 ‘웅성거림’의 주체가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은 무척 적절한 저항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홍대와 명동에서 몇 번인가를 함께 걸었는데, 무척 묘한 감동을 받았다. 홍대와 명동은 소비문화의 중심이자 번화가이다. 자동차 소리, 사람 소리, 음악 소리 등이 뒤엉킨 일찍이 이상이 「날개」에서 묘사한 것처럼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의 풍경을 꿰뚫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걸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입은 마스크로 봉해져 있고 손에는 흰 국화 한 송이,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라고 적힌 종이 한 장. 나는 유치환이 <깃발>에서 노래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떠올렸다. 침묵행진이 역설적으로 웅변한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우리는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메시지였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수행문에는 통제의 의도와 함께 집단화된 대중에 대한 통치주체의 불안과 공포가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대중은, 시민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통제 불가능한 군체가 아니다. 4·16이후의 상황들을 종합해 보건대, 진정 가만히 있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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