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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사생활 전시와 폭로, 잊힐 권리
[187호] 2014년 12월 01일 (월) 최철웅 <문화/과학> 편집위원

   

   감시사회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조지 오웰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 있다면, 바로 오늘날 대중들의 자발적인 사생활 전시와 폭로의 문화일 것이다. 권력이 체제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유혹이야 일종의 상수라 치더라도, 대중들이 스스로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서로 폭로하는 문화는 우리에게도 얼마간 낯선 까닭이다.

   물론 대중들이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조건들이 존재한다. 온라인을 통해 행정업무와 쇼핑, 정보검색 등 간단한 일상적 업무를 처리하려 해도, 수많은 개인정보의 제공과 광범위한 활용에 동의해야만 한다. 귀갓길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CCTV에 찍힐 수 있다는 사실을 감내하고, 정부기관이 유사시 메일이나 핸드폰 사용내역을 뒤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수긍해야만 한다. 부모가 위치추적 장치가 달린 목걸이를 아이 목에 채우고, 독서실에 CCTV를 달아 수시로 동선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윤과 안전을 위해 개인정보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처럼 굳어가고, 형식적인 동의의 과정을 통해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귀속되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을 단지 정부와 기업들의 음모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폭발적인 성장에서 볼 수 있듯, 온라인상의 네트워크를 통해 타인들과 교류하고 접속하려는 대중들의 열망이야말로 주된 동력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단지 쇼핑과 서핑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나를 표현하고 타인들과 교류하기 위해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좋은 뉴스기사를 보면 페이스북에 공유하고, 무언가 정치적인 주장을 하고 싶으면 트위터에 한마디를 던지며, 점심식사 후 즐긴 아메리카노 한잔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것이 누군가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면 ‘좋아요’와 ‘알티’ 등을 통해 즉각 반응이 올 테고, 실패했다면 광대한 네트워크 어딘가에 쓰레기로 떠돌 것이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또 새로운 미끼를 던지면 그만인 것을.

   기존의 PC통신이나 메신저, 온라인 커뮤니티 등 다양한 네트워킹 서비스를 대신해 소셜 네트워크가 대세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아마도 즉각적인 ‘반응’ 시스템이 주효했던 탓이리라. 이 피드백 기능은 대중들의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무플보단 악플’이라고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앤디 워홀이 예견했던 “누구나 15분간은 유명해질 수 있는 미래”가 현실이 되면서, 사회적 인정은 더 이상 주변의 지인들이나 소속된 커뮤니티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서 얻는 것이 되어버렸다. 언제든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고 회자될 수 있는 환경에서 개인이 특정한 자아 이미지를 연출하고 드러내는 ‘전시의 문화’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셀레브리티 문화의 보급으로 인지도는 단지 심리적 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성공을 위한 주요한 자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신상 털기’는 성공적으로 획득된 인지도와 ‘자아 연출’에 대해 그것을 근저로부터 파괴하려는 사보타주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상에서의 인정투쟁이란 각자 연출한 캐릭터를 통해 이루어지며, 그 게임의 장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행해진다. 반면 ‘신상 털기’는 극단적으로 게임의 규칙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이미지의 후광을 파괴하고 주체에게 ‘상징적 죽음’을 선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에게 비단 ‘상징적 죽음’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고통과 피해를 수반한다. 아마 어느 ‘신상털이범’도 본인의 신상이 공개되는 것만은 원치 않을 것이다. ‘신상 털기’가 언제나 개별적인 행동이라기보다 특정 커뮤니티에서의 공모행위로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것은 집단적인 비겁함과 공격성의 표현이며, 관음증적 쾌락을 공유하는 우리 모두의 침묵을 기반으로 한다.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정보만 보여줄 수 없으며, 내 의도와 무관하게 언제든 여타의 정보가 폭로될 수 있는 조건 속에 처해있다. ‘신상 털기’는 자아를 전시할 때 우리가 빠지는 유아론적 착각을 고통스럽게 일깨워준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표현과 타인과의 교류 기회로서 소셜 네트워크의 활용을 마냥 제한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원하면 언제든 모든 기록을 지워버릴 수 있는 기술적 장치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저한 노출과 폭로의 물결 속에서 ‘잊힐 수 있는 권리’의 도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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