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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현실은 역사감이다
<장소의 재탄생> 한국 근대 건축의 충돌과 확장
[186호] 2014년 11월 03일 (월) 송 하 엽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고 김근태 의원을 다룬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수 많은 민주주의 인사들이 이곳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받고 죽어나갔다. 이 건물은 탈바꿈해 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오른쪽 위에 삽입된 걸개그림 속 인물은 박종철 열사.

“사람 머리도 채 내밀 수 없을 만큼 좁은 직사각형 창은 이 건물을 마치 미술관이나 고급 호텔처럼 보이게 합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로 불렸던 김수근이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담아 설계한, 살아 있는 건물입니다.” 김근태, 짐승의 시간

“그러던 어느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서태지, 소격동

   2009년 서울현대미술관의 시작을 알리는 기무사의 신호탄 전시는 용도가 폐기되며 새롭게 미술관으로 탈바꿈할 건물에 대한 오마주와 기대를 담고 있었다. 서슬퍼런 군부독재의 심장을 꼬집는 충격적인 작품들이 있었다. 집권자의 침실과 욕실을 재현하여, 여배우에 대한 탐닉을 풍자한 침대와 장미그림을 놓고, 창녀촌을 분홍색 전경방패로 보호하는 모습 등등 타락했던 권력의 역사를 비꼬았다.
   “충돌과 확장전”에서 소주제로 다룬 “권력의 이양”은 근대화의 주도적 장소와 과거폭력정치의 장소가 시민들을 위한 시설로 변모한 것을 보여준다. 서양에서도 이러한 경우는 많지만, 우리 공간들에서 유독 지배계층의 허와 실이 느껴진다. 수탈, 횡포, 독재, 고문, 감시 등등의 기억이 건물의 이미지와 장소의 풍경과 겹친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문화를 배우는 곳으로 쓰이지만 세상물정 알쯤에 벽면에 쓰여진 사실을 아는 게 나을 것이다. 사실 제일 아픈 기억의 건물은 이 전시에서 다루지 못할 정도로 아련하다. 남영동 대공분실, 허망함과 죄송함에 울분을 참지 못하는 곳이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쓰여지고 있지만, 필자는 가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많은 민주인사들이 극단적 트라우마를 겪은 곳이다. 고문소에서 인권센터로 “권력의 이양”의 극단적인 곳이지만, 그 곳의 건축껍데기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건물 그 자체는 당시의 수준보다 꽤 치밀하게 지어져 있어 현재도 보존가치는 충분하지만, 경찰청 인권센터라는 사실이 그 당시의 것과 극과극으로 반대여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권력의 이양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건축은 껍데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에서 하나의 결정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전시는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독단에서 벗어나는 건축적인 따스함을. “풍경의 재현”에서는 철도역, 신문사, 극장, 법원 등의 근대화의 기관들이 현대의 문화의 장소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며, 어찌보면 가장 모범적으로 근대인에서 현대인으로의 권력의 이양을 보여주고 있다. “풍경의 재현”은 근대의 풍경이 시간의 흐름의 질서를 보여준다는 해석을 하지만, 언젠가는 건물의 보존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논하는 장도 필요할 것이다.
   “권력의 이양”은 사회제도에서 힘의 전이를 보여준다면, “풍경의 재현”은 일상의 거리에서 건물이 변모하는 시간의 전이를 보여준다. 인간의 제도와 자연의 시간, 즉 권력과 풍경의 주제는 공간과 장소를 형성하는 양대 요소임을 재확인시켜준다.
   나머지 주제인 “사라진 기억”, “주체의 귀환”, “연결될 미래”는 건축자율성에 대한 의도가 담겨있다. 건물이 사라지고, 잊혀진 건물이 다시 돌아오며, 건물이 미래를 위한 포석이라는 것으로, 가치체계의 개입보다는 유형문화의 최고봉인 건축, 그 자율성에 대한 재확인이다. 지금은 사라진 건물들의 파사드는 전시장의 입구에 무덤과도 같은 느낌의 볼트(Vault)의 벽에 생생한 느낌의 선들로 살아 있다.
   “충돌과 확장”전은 재생과 창조를 주제로 시의적절하다. 2014년 현재 서울시는 건축적 재생을 통한 마을만들기와 공공시설을 만드는 데 치중한다. 이슈가 되고 있는 서울역 고가도로의 유지, 보수, 재사용은 무슨 의미일까? 삐딱하게 본다면, 현재 복원 및 재생을 추종하는 현상은 윤리를 넘어서 미학으로 흐르고 있다. 제인 제이콥스의 글에서도 그녀도 옛건물의 필요를 단순히 시간의 미학으로 여기고 있어서 필자는 비전문가로 느낀 부분이다.(그녀는 역사이론가와 도시건축가는 아니고 사회운동가나 작가였다) 재생과 복원, 재사용은 유행이 되었을 때나, 원래의 형태를 고증만 할 때, 의미파악내지는 진실된 역사감 형성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재생과 적절한 창조의 결합이 답인가? 일견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과거의 용도와 현재의 사용이 시간적 충돌감을 만들지 못한다면 껍데기 미학일 뿐이다. 그 시간적 충돌을 통해 건축이 건드려야 할 것이 역사감이다. 온고지신하며 새롭게 변모하려 한다면 어떤 역사감을 줄 수 있는지 먼저 물어야한다. 이 질문에 답을 해야만 건축은 현실을 충만한 역사감으로 채우는 뇌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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