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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저서 배제 연구실적 평가는 21세기판 분서갱유”
언론사·교육부 모두 대학평가 지표에 저서 반영 안 해
[186호] 2014년 11월 03일 (월) 서창훈 편집위원

   
 △기원전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묘사한 그림. 21세기 한국의 대학에서는 태울 책마저 사라지고 있다.
 
   “진시황은 기존의 책을 불살랐지만, 저 신문사는 미래의 책마저 불사르고 있다!” 대학평가를 한다며 논문만 연구업적으로 인정하고 저서는 전혀 반영하지 않은 중앙일보를 향해 던진 한 교수의 비판이 학자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중앙일보의 평가에 맞춘 대학들이 저서 출판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지 않고, 논문 책임량 달성에 쫓긴 교수들은 책을 쓸 엄두조차 못 내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부터 국내 대학들을 평가해 순위를 매겨온 이 신문사의 교수연구실적 평가지표에는 단 한 차례도 저서 출간이 포함되지 않았다. 비단 중앙일보뿐만 아니다. 2009년 뒤늦게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인 QS사와 손잡고 대학들을 평가해 보겠다고 나선 조선일보는 논문 편 수를 세는 것으로 교수들의 연구실적 평가를 갈음했고, 작년 ‘청년드림대학 평가’라는 간판을 달고 대학 줄 세우기에 동참한 동아일보도 취업과 창업을 위한 지원수준에 따라 대학들을 점수 매겼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 보수언론사가 모두 판관 역할을 자처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미지 재고에 사활을 건 대학들로부터 각종 광고를 수주하고, 정보에 목마른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지침서 역할을 자처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대학과 학문은 물론 한국사회 전반의 보수화와 자본화·기업화·효율화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와 교육당국마저 언론사들의 지표를 고스란히 배겨 쓰거나 각색해 사용한다는 점이다. 대학의 정부재정지원제한부터 학자금대출제한, 구조조정과 통폐합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명운을 좌우할 교육부의 대학평가 지표에도 저서 등 연구역량 측정 항목은 없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교육비 환원율,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장학금 지급률, 등록금부담완화, 법인지표 등 ‘돈’과 경영에 관련된 지표가 대부분이다. 경영에 실패한 대학은 아무리 우수한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어도 문을 닫아야만 하는 구조다.
   저서에 대한 냉대의 결과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출판계 곳곳에서는 요즘 학술원고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한탄이 이어지고 서점가와 학계에서는 ‘국내산’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고사 직전에 놓여있다. 대학알리미의 통계수치들도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료가 공시되어 있는 2010년 이후 전임교원들의 1인당 저역서 수는 전국 대학 평균 0.1권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중앙일보가 우리 대학과 비슷하게 평가한 서강대, 경희대, 이화여대, 건국대도 같은 수준이다. 3년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수점 아래 숫자들은 계속 바뀌고 있다. 저서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게나마 번역서들이 증가하여 수치상 변동이 미미하게 나타날 뿐이다. 이 추세는 우리 대학 전임교원들의 저역서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2010년(전임교원 679명)과 2011년(664명), 그리고 2012년(667명) 저서 합계는 56.2, 48.7, 43.4권으로 해마다 줄어들었고, 역서는 각각 21.5, 8.8, 15권을 기록했다. 그 결과 2010년 0.1144권으로 전국 평균 0.1을 상회했던 1인당 저역서 수는 2011년 0.0866, 2012년 0.0876권으로 떨어졌다. 같은 시기 전임교원 1인당 논문 수는 연구재단등재(후보)지가 0.6, 0.6, 0.7편으로, SCI급 학술지가 0.2, 0.3, 0.4편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이 수치들은 교육부와 언론사들의 평가를 의식한 우리 대학의 지표선정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우리 대학은 교육과 연구 두 영역으로 나누어 교원 개인평가를 하고 있다. 교육영역에는 강의평가 결과와 강의공개 여부에 따라 최대 450점이 배점되며, 연구영역은 단 한 항목을 제외하고 무제한이다. 이 예외 항목이 바로 저서이다. 교원이 연구재단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할 경우 120점이 부과되며, 국제저명학술지 경우 300점에서 가산치 적용 최대 900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서는 한 해 최대 100점까지만 허용되고, 그나마 인문·사회·예체능계의 전문학술저서와 창작단행본으로 제한한다. 짧게는 3∼4년, 길게는 십수 년 연구하고 집필해 출판한 책이 일반논문 한 편만 못한, 심지어 일부 논문의 1/9 취급을 당하니 교수들의 저서 집필 의욕이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개인평가 결과는 성과보수제와 연동돼 교수들의 수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적인정 저서의 범위와 절차도 허점이 보인다. 교재의 성격이 있거나 편저서인 경우 학술서라도 인정되지 않으며, 번역서마저 평가대상에서 제외됐다. 교원인사기획팀에서 별도의 전문위원회를 꾸려 ‘전문학술’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방침인데 이 또한 문제다. 전문위원을 학내에서 구성할 경우 해당 전공분야에서 학식과 연륜이 가장 뛰어난 교수의 저서를 어떻게 제대로 평가하겠는가.
   교원 평가지표 개발에 참여한 학교 관계자는 “저서는 이제까지 평가항목에 없었으나 일부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장기적인 학문 발전을 위해 올해부터 전향적으로 포함시킨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교육부와 언론사들의 저서 관련 지표가 전무해 객관적인 우리만의 지표를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만수(국문과) 교수회장은 “교수들 사이에서는 저서에 대한 평가인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진지 오래고, 굳이 논의가 더 필요하다면 배점의 정도일 것”이라며 저서 실적인정 확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중앙일보의 대학평가 발표 직후 김희옥 총장은 총장경영리포트를 통해 “이제는 명문대학으로서의 철학과 품격을 생각해야 할 때”라며 “대학다운 대학, 교육과 연구에 충실한 대학, 구성원이 존중받는 대학,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대학, 그리하여 국민과 세계인들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는 학문의 전당으로 재도약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지당한 총장의 변이다.
   “대학다운 대학, 교육과 연구에 충실한 대학”으로 자리 잡기 위해 교원들의 저술 인정과 범위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객관적인 지표들도 이미 자리 잡은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업적 산정기준을 활용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학술저서 단행본은 연구재단 등재학술지 논문 2편에 해당하며, 번역서는 사업에 따라 논문 2편 또는 1편으로 산정된다. 우리 대학의 교원 평가방식으로 환산하면 학술저서에 240점을 배점한 셈이다.
   시스템이 아무리 옥죄더라도 대학 자체의 정체성을 버릴 수는 없다. 자각한 동국대학의 행정 변화가 21세기판 분서갱유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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