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2.1.17 월 16:06
인기검색어 : 등록금 반환, 코로나19, 조교 문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학술 서평 > 서평
     
썩어가면서 썩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기
야콥 타우베스, 조효원 옮김,『바울의 정치신학』, 그린비, 2012.
[184호] 2014년 06월 09일 (월) 정홍수 문학평론가

   
  △ <런던교의 탑> - 허버트 M. 마샬. 1905.
 
  1987년 1월 14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신학부 학생회 연구소는 베를린 자유대학의 야콥 타우베스(Jacob Taubes) 교수를 강연자로 초청한다. 이 무렵 야콥 타우베스는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강연 요청을 받아들이고 2월 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월, 화, 목, 금, 나흘에 걸쳐(수요일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하루에 세 시간씩 「로마서(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학생들과 함께 읽고 그 의미를 새긴다. 192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야콥 타우베스는 대랍비였던 아버지로부터 정통 랍비 교육을 받고 랍비 서품까지 받았으나, 바젤 대학과 취리히 대학에서 철학과 역사를 공부한 뒤 종교철학자이자 교수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야콥 타우베스는 정형화된 학자-교수라기보다는 유대-그리스도교의 메시아주의를 온몸으로 사유하고 살아낸 ‘20세기의 바울주의자’로서, 학문과 종교, 철학과 신학, 철학과 문학, 유대적인 것과 그리스도교적인 것의 경계선에 스스로를 놓은 사람이었다. 벗이었던 에밀 시오랑은 이렇게 썼다. “교수인 동시에 비-교수인 타우베스는 모든 황량한 과학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객관성이란 몹쓸 것이다!”

 
   
 
 
『바울의 정치신학』(조효원 옮김, 그린비, 2012)은 타우베스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행한 나흘간의 강연을 6년간의 꼼꼼한 편집 작업을 거쳐 글로 옮긴 책이다(타우베스는 강연 한 달 뒤인 1987년 3월 숨을 거두었다).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앎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맥락을 따라잡기 어려운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학평론가이자 벤야민 전공자인 조효원의 공들인 번역과 자상한 ‘해제’ 덕분에 거듭 읽는 동안 대강의 느낌을 간추릴 수는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타우베스가 학생들에게 건넨 말로 되어 있다는 점도 어느 만큼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타우베스가 ‘근대’에 대해 보이는 단호한 거절의 태도였다. 바울의 계보를 잇는 발터 벤야민의 「신학-정치적 단편」을 읽어나가는 대목에서 타우베스는 이렇게 말한다.

  “벤야민에게는 칼 바르트에 필적할 만큼의 강렬성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내재적인 어떤 게 전혀 없습니다. 내재성에서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건널 수 있는] 다리는 건너편에서 오는 겁니다. (…) 건너편에서 우리에게 ‘너는 해방되었다’라는 음성이 들려와야 합니다. 독일 관념론의 모범에 따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해방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죠. 저만큼 나이를 먹고, 또 [죽을 날을 기다리는] 저 같은 상태가 되면, 대학교수들 말고도 그런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하게 여겨질 따름입니다. (…)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어쩌고저쩌고 하는 거 있잖습니까? 저는 이런 것에 대해 전혀 모르겠습니다.”(178179쪽)

  뭔가가 쿵 하고 내 머리를 강타하는 느낌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근대란 이 ‘세계’ 바깥은 없다는 생각, 해서는 세계는 그 안에서 내재적으로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의 ‘자기실현’(이 말의 철학적 허약성은 별도로 하더라도) 역시 그 ‘내재성’을 통해 가능한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타우베스는 벤야민과 칼 바르트를 경유하여 단호하게 말한다. ‘내재성에서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뭔가가 온다면 ‘건너편’에서 온다고. “건너편에서 무슨 일인가가 먼저 일어나야만, 그런 다음 우리가 그걸 볼 수 있습니다. 별빛이 우리 눈을 찌른 뒤에야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 봅니다.” 이걸 ‘하느님의 나라’ ‘구원’ 등등의 단순한 설교의 차원과 구분지을 필요가 있는 것이, 타우베스는 지금 근대의 핵심적인 사유들과 혼신으로 겨루어온 자기 삶의 결론이자 유언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우베스가 보기에 ‘바울 사상’의 혁명성은 예수의 두 가지 원칙(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을 하나로, 즉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로 축소하고 집약했다는 점에 있다. 타우베스는 ‘근대’를 썩을 대로 썩어버린 세계로 본다. 진정한 구원은 바깥, 건너편에서 올 테지만,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말하자면 현세적ㆍ세속적 질서와 초월적ㆍ신적 질서 사이에는 아무 인과 관계가 없다. 이런 사유를 이해하는 데는 벤야민이 말한 ‘방법으로서의 니힐리즘’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조효원의 ‘해제’, 그리고 김남시의 「벤야민의 메시아주의와 희망의 목적론」(『창비』, 2014년 여름호) 참조). 어려운 이야기다. 타우베스는 썩어가는 세상에서 그 자신, 기꺼이 썩어가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썩어가는 어떤 이웃들을 혼신으로 사랑하려고 한다. 이 도저한 비관의 역설을 온전히 이해할 힘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두고두고 생각해보려고는 한다. 역자 조효원은 타우베스의 사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끝마저도 완전히 끝내는 것, 썩어가면서 썩어가는 모든 것을 완전히 썩기까지 사랑하는 것. 이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역사 바깥에서 역사와 싸우는 행위이다.” 어떤가, 야콥 타우베스의 마지막 말들을 한번 들어보고 싶지 않은가.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조성환 | 편집장 : 서신화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원준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gs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