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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영화 〈디파티드〉
둘 중 하나, 거리의 운명, ‘citizen’
[138호] 2006년 12월 04일 (월) 안시환 영화평론가

〈디파티드〉를 말하기에 앞서, 나는 동어반복은 피하고자 함을 밝힌다. 지금과 같은 정보 과잉 시대에, 그것이 〈무간도〉이든 〈디파티드〉이든 간에, 이들 작품들에 대해 누구나, 어디서나 한번쯤은 떠들었을 만한 내용들은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 글은 영화 전체가 아닌, 〈디파티드〉에서 흥미로운 장면 하나와 설정 하나만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스콜세지는 〈무간도〉를 리메이크 하면서, 갱인 놈이 경찰로 위장하고, 경찰인 분은 갱으로 위장한다는 원작의 기본적인 서사 구조를 그대로 차용한다. 그리고 경찰이지만 실제로는 갱인 콜린(맷 데이먼)이 경찰임을 증명함으로써 자신의 진짜 신분을 은닉할 때, 갱이 된 경찰인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경찰이었던 신분을 말소시키기 위해 갱임을 증명해야만 하는, 즉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존재를 지워야하는 아이러니 역시 그대로 가져간다. 하지만 그대로이지 않은 나머지들, 그러니까 차별성 그것이 문제다.

스콜세지가 〈무간도〉(2002)를 리메이크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디파티드〉에는 〈무간도〉를 취하면서도 그 위로 덧씌워진 스콜세지의 흔적을 확인하는 쾌감이 있다. 스콜세지와 유위강의 차이, 혹은 〈디파티드〉와 〈무간도〉의 차이는 코스텔로(잭 니콜슨)를 보면,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하다 할 수 있는 그 도입부를 보면 명확해진다. 〈무간도〉의 한침(증지위)보다 한참은 더 잔혹하게 그려진 코스텔로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아일랜드 갱의 역사를 단숨에 요약하는 나레이션을 내뱉는다.

사실, 한 조직을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을뿐더러, 주변 환경의 지배자가 되기를 꿈꾸는 갱들의 보스인 코스텔로의 모습은 스콜세지 영화에서 그리 익숙한 갱의 모습은 아니다. 〈비열한 거리〉에서 시작하여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까지, 그가 다루는 갱은 보스가 아닌 그 밑에서 ‘지배받는’ 그저 그런 갱에 가깝다. 이는 〈에비에이터〉(2004)의 하워드 휴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묘사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스콜세지가 그려낸 하워드 휴즈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휴즈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역이라는 자기 강박에 ‘사로잡혀서’ 파멸해가는 휴즈이다.

하지만 따스한 차 한잔이 식기도 전에 스콜세지는 다시 스콜세지로 돌아온다. 코스텔로와 어린 시절 콜린의 만남. 그리고 매혹적인, 너무도 매혹적인 그 순간의 시네마틱한 묘사. 채워지는 장바구니와 소년의 손에 쥐어지는 몇 닢의 동전, 그리고 코믹북 한 권, 코스텔로를 바라보는 소년의 동경에 찬 눈빛.

마치 서부영화 〈셰인〉(조지 스티븐슨, 1953)의 마지막 장면에서 ‘떠나가는’ 영웅을 동경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갱스터 영화의 도입부에서 ‘다가오는’ 영웅을 감탄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변형한 듯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실 이 도입부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스콜세지다운 장면이다. 때로는 저항한다 하더라도 어떠한 운명이 강요하는 ‘예정된 파멸의 길’을 따라가는 인물의 탄생 순간을 담아낸다는 면에서, 그리고 이를 매혹적이면서도 의미로 넘쳐나는 ‘시네마틱한 장면’으로 그려냈다는 면에서.

이 도입부의 의미는 〈쉐인〉과 〈디파티드〉를 대조함으로써 보다 선명해질 수 있다. 즉, 서부영화에서 떠나가는 영웅을 자신의 이상적 자아로 모방하며 살아갈 소년의 모습을 엔딩으로 삼는 것과 갱스터 영화에서 다가오는 영웅을 매혹의 눈길로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을 도입부로 삼는 것 간의 간극은 엄청나다. 떠난 영웅과 그 자리를 대체할 소년의 관계는 서로 충돌할리 없는 안정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주변 환경을 완전하게 지배하려는 코스텔로와 그러한 그를 완전하게 모방하고 싶을 만큼 매혹되어버린 소년의 관계를 다루는 갱스터 영화인 〈디파티드〉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낮을 비추는 해가 하나이듯, 둘 모두 지배자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 도입부는 어린 콜린이 코스텔로에게 매혹되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장면은 서로가 서로의 삶에 개입함으로써 형성된 운명이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즉 결국에는 ‘둘 중 하나의’ 목을 겨냥할 잔인한 운명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콜세지의 영화를 ‘거리의 영화’라고 부른다면, 그 거리는 이러한 운명이 지배하는 곳이다.

물론 운명의 은밀한 매력은 그것이 그 대상들의 손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 있다. 결코 통제될 수 없는 스콜세지의 거리처럼. 〈디파티드〉에서 스콜세지는 이러한 운명의 거리에 놓여있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주제를 다시금 반복한다. 스콜세지는 자신의 실질적 데뷔작인 〈비열한 거리〉에서부터 ‘성자이기를 꿈꾸는 갱’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여기서 둘 중 하나일 수는 있으나 둘 모두일 수 없는 인물의 운명을 담아내곤 했다.

 그것이 신과 인간이든(〈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갱과 경찰이든(〈디파티드〉) 간에, 스콜세지의 인물들은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운명은 인물들의 통제를 벗어난 ‘강요된 선택’으로 나타난다. 〈디파티드〉에서 갱과 경찰 사이에서 모호하던 정체성‘들’은 영화 후반부의 서로가 죽고 죽이는 연쇄 살인 장면에서 둘 중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스콜세지는 이러한 강요된 선택의 순간을 통해 인물들에게 비극적 아이러니를 부여하곤 했다. 빌리는 〈택시 드라이버〉(1976)의 뉴욕만큼이나 보스톤의 거리에도 구원이 없음을, 그리고 자신이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은 경찰로서의 신분이 회복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원 없는 곳에서 구원을 꿈꾼 대가로 빌리는 히스테리 환자가 되어야 한다. 물론 거리에서의 구원은 죽음 이후이다.

하지만 〈디파티드〉에서 콜린을 비롯한 인물들 대부분의 강요된 선택을 통해 스콜세지가 드러내려는 것은 이러한 비극적 정서 보다는 미국 사회의 현주소이다. 〈디파티드〉의 연쇄 살인 장면은 다소 ‘깜짝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갱인 줄 알았던 이가 죽음으로써 경찰이 되고, 경찰인 줄 알았던 이가 경찰에게 총을 겨루어 갱이 되며, 갱이 갱을 죽임으로써 경찰이 되는 그 혼란스러운 순간의 반복, 그것은 스콜세지가 바라보는 미국 사회이지 않겠는가. 영화의 엔딩, 국회 의사당 앞으로 지나가는 쥐새끼 한 마리 보다, 갱들의 명단을 담은 봉투 위에 쓰여진 ‘citizen’이라는 단어와 함께.

안시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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