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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세월을 움켜쥐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중국 작가들
[183호] 2014년 05월 12일 (월) 조재룡 문학평론가·고려대 불문과 교수

   
 
   
 
  소설은 역사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다. 격동기에 등장한 소설들이 앞질러 시대의 징후를 감지해내고 그 향방을 예견하거나, 시대가 남긴 딜레마를 성찰의 거리로 전환하는 일에 독보적인 존재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라면, 아니 중국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문화대혁명 전후의 중국문학이라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질 것이다. 훗날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며 내란으로 규정해본들, 당시의 삶과 그 삶을 살아내야만 했던 사람들의 사연 많은 곡절들이 훌쩍 증발해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가 손쉽게 넘겨버린 역사의 페이지들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작업은 항상 글 쓰는 자들의 몫이었다. 1980년대 초 문단에 등장하여 중국문학에 일대 전환기를 가져온 선봉파(先鋒派) 소설가들. 제 3세대 작가라 불리는 이들이 저마다의 필력을 뿜어내며 우리에게 선보인 작품들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허구의 묘미에 몸을 싣는 대신, 척박한 삶과 지난한 역사를 지나오면서 유실되어버린 기억을 재구성하고 부조리한 풍경을 삽으로 떠다가 여기에 옮겨 놓는 일에 제 사활을 건다.

  당시 중국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가? 답변을 찾으려 할수록 손에 움켜쥐어야 하는 지도만 여러 장으로 늘어날 뿐이다. 굶주림을 온몸으로 견뎌야했던 세월을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고 그려낸 소설집 『닭털 같은 나날』로 우리에게 처음 알려진 류전원(劉震云)이 과연 류전원답다고 말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작품 『나는 유약진이다』를 들고 찾아왔고, 출간 즉시 판금조치로 전량이 회수되기도 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작가 옌렌커(閻連科)가 “대학에 대해, 교수들에 대해, 오늘날 중국 지식인들의 나약함과 무력함, 비열함과 불쌍함에 대해 쓴 작품”(작가의 말)이라며 얼마 전 『풍아송』을 선보였다. 소시민의 일상과 약자들의 삶과 그 저변의 심리에 대한 예리한 묘사의 칼날을 드리워 크게 주목받은 바 있는 『이혼 지침서』의 쑤퉁(蘇童)이 뒤늦게 한국을 방문하였고 이와 더불어 그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중 다수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중국문단을 이끌고 있는 이 신세대 작가들이 국내에 불러일으킨 반향은 다분히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余華)의 덕분이기도하다. 선봉파의 선봉장이라고 해야 할까?

  각기 독창적 세계의 창출에 여념이 없는 이 50대 초반의 작가들은 그럼에도,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삼아 중국 사회의 암면(暗面)들을 추적해나가는 저 진지한 작업에 매진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마오쩌둥이 지휘하는 거함에 모두 몸을 싣고 풍랑의 세월을 지나와야 했던 중국의 변혁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들의 작품은 문화대혁명의 후일담이라기보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미시사적 탐구,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하고 끈질긴 성찰에 보다 가깝다. 선봉파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마오쩌둥 이후라고 해서 그의 시대가 청산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대혁명 전후 중국에서 대관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가? 그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도 않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소설만으로는 그 폭이 너무 넓고 모양새가 지극히 광대하기 때문이었을까?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는 부제가 붙은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 2012)는 이와 같은 궁금증에 제대로 대답하는 동시에 뛰어난 에세이가 갖추어야할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어 주목을 끈다. 선봉파 소설을 접하기 전에 그의 에세이를 먼저 읽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대 중국작가들이 왜 그토록 문화대혁명에 제 긴 사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 근본적인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문화대혁명 이후의 중국에 대한 진단도 바로 이 그림자 위에 오롯이 포개어진다. 위화는 유려하고 빼어난 문장으로 고작 3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치지상주의에서 금전지상주의로 갑자기 변신한 중국을 하나씩 캐물으며, 그 어떤 신문기사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그 어떤 사회과학 서적보다도 예리한 분석을 선보인다. 그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의 과거와 현재, 사회와 역사, 문화와 정신을 쉴새없이 오가며, 때론 열띤 어조로, 때론 차분한 시선으로 설득력 있게 전개하면서 제 성장기의 이야기와 사연 가득한 세월을 그 안에 간곡하게 녹여낼 줄 아는 몇 안 되는 작가라 할 만하다.

  각각 인민(人民), 영수(領袖), 혁명(革命)이라는 제목이 붙은 챕터는 오늘날 중국인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몇몇 사건을 일화에 담아 재치 있게 풀어내고 있으며, 산채(山寨)와 홀유(忽悠) 챕터는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인의 자화상을 비판적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고한다.

  그러나 진단이라고 해서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여느 역사책이나 비평서보다 위화의 에세이가 심오한 동시에 날카로운 까닭은 독서(閱讀)나 글쓰기(寫作), 루쉰(魯迅)이나 차이(差距) 같은 키워드로 우리 모두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재구성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이끌어가는 적절한 비유와 결곡한 어법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국의 현대를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이 위화의 목소리에 힘입어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기억의 산물로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중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언어로 한 시대가 겪은 쓰라린 경험을 그러모아 지금-여기로 힘겹게 끌어내 미래를 비추는 서광으로 바꾸어낼 줄 아는 작가가 바로 위화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덧붙일 말이 있다. 이 작품은 김태성의 빼어난 번역 덕분에 빛날 수 있었다는 사실, 나아가 선봉파 작가들을 이해하는 작업은 기실 김태성이 번역한 작품 전부를 찾아 읽는 일과 대다수 하나로 포개어진다는 점, 아울러 리쿤우의 만화 『중국인 이야기 1』(총 3권으로 구성되었지만 국내에는 1권이 소개된 이후 감감 무소식이다)이나 린다 부부의 『책 한권 읽고 파리를 가다』(역시 김태성 번역이다)도 함께 읽으면 금상첨화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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