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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화 ― 현대 유럽 철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
[183호] 2014년 05월 12일 (월)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주체화(subjectivation)는 현대 유럽 철학 및 인문사회과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개념 중 하나다. 주체화라는 개념은, 단어 자체가 함축하듯이 주체를 자연적으로 주어지거나 불변적인 본질을 갖는 어떤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어떤 과정을 통해 생성되고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개념은 미셸 푸코가 그의 후기 저술들에서 처음 고안해냈으며, 그 이후 다양한 이론가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원용되고 변용되고 있다.

  가령 자크 랑시에르는 주체화의 문제를 자신의 민주주의론의 주요 요소로 제시하고 있으며(자크 랑시에르, 『불화』, 길, 2014), 에티엔 발리바르 역시 정치적 주체화의 과제를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후마니타스, 2010; Violence et civilite, Galilee, 2010 등). 또한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푸코의 장치(dispositif)라는 개념을 원용하여 독창적으로 주체화의 문제를 탐색하고 있다(조르조 아감벤, 『장치란 무엇인가?』, 난장, 2010).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 철학에 기반을 두고 (무의식적) 주체의 문제를 현대 사상의 근본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Slavoy Zizek,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새물결, 2013; 『까다로운 주체』, 도서출판 b, 2005). 또한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에 기반을 둔 정치학을 추구하고 있다(마이클 하트ㆍ안토니오 네그리, 『제국』, 이학사, 2001; 『다중』, 세종서적, 2008; 『공통체』, 사월의책, 2014).

   
 
   
 
   주체화라는 문제가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주제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마르크스주의가 몰락한 이후 프롤레타리아 또는 노동자 계급이 더 이상 의미 있는 정치적 주체로 간주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는 해방 운동의 대명사처럼 존재해왔으며, 노동자 계급은 억압과 예속을 넘어서 스스로 자신의 해방을 성취할 정치적 주체의 보편적인 모델로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바로 그만큼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은 정치적 주체의 공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및 『다중』 연작이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들의 작업이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하나의 유력한 대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물론 그들의 이론이 현실에 대한 분석과 정치적 대안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둘째, (포스트) 구조주의의 이론적 유산이라는 문제가 있다. 발리바르가 지적했던 것처럼 구조주의 운동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계의 가장 커다란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지적 운동 중 하나였다. 철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포스트) 구조주의의 핵심적인 이론적 유산은 주체를 원리에서 결과로, 또는 구성하는 기능에서 구성되는 위치로 이행시켰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에티엔 발리바르, 『‘절단’과 ‘토픽’: 철학의 ‘대상’』,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이론, 1993)

  이것은 흔히 통속적으로 이야기되는 것처럼 (포스트) 구조주의가 주체의 죽음을 가져왔다거나 주체를 제거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이제 주체는 더 이상 설명의 근본 원리가 아니라 오히려 설명의 대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곧 주체는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가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것, 세계를 초월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일정한 물질적ㆍ상징적 존재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특정한 메커니즘에 따라 비로소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그리고 그러한 조건이나 메커니즘의 변화에 따라 전환되는 그런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구조주의의 설명 대상으로서의 주체가 일종의 자동인형 같은 전적으로 수동적인 존재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조주의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자율적인 존재자로서의 주체가 어떻게 자신의 타자에 의해, 곧 자기 바깥의 물질적ㆍ상징적 존재 조건에 의해 자율적인 존재자로서 생산되고 재생산되는가 하는 점이다. 요컨대 주체가 자율적 존재자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전제하지 않으면 안되는 주체 생산의 조건과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것, 따라서 주체의 자율성의 조건으로서 타율성을 설명하는 것이 (포스트) 구조주의의 근본적인 철학적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대단히 모험적이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편한 관점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적으로 모험적인 이유는 근대 철학의 토대 내지 원리의 위치에 있던 주체가 하나의 생산물 내지 결과가 됨으로써, 이제 철학은 더 이상 확고한 토대를 가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불편한 이유는,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주체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 속의 주체가 됨으로써,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보편적인 정치의 주체, 해방의 주체 같은 것을 사고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방의 정치나 정치적 진보의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 정치는 근본적으로 다원적이고 우연적인 활동이 되었다.

  셋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산출하는 정치적ㆍ사회적ㆍ인간학적 영향이라는 문제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공공성의 쇠퇴 및 사회문화적 배제를 산출하고 있다.

  “빈부 격차는 커지고 있다. 세금의 재분배 기능은 줄어들었다. 정치가는 한 줌도 안 되는 기업가들의 관심사에만 주로 반응하고, 기업가의 특수 이익이 공공 정책으로 둔갑한다. 가난한 사람은 점차 정치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게 됐고 심지어 투표도 하지 않게 됐다. 이로써 그들은 민주주의 이전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차지해야 했던 위치, 즉 정치 참여가 배제된 위치로 자발적으로 돌아가고 있다.”(콜린 크라우치, 『포스트민주주의』, 미지북스, 2008, 37-38쪽)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인간학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대한 부정적 효과를 산출한다(리차드 세네트,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문예출판사, 2002 및 『불평등사회의 인간존중』, 문예출판사, 2004). 그것은 프랑스 사회학자 로베르 카스텔이 적절하게 개념화했던 것처럼 ‘소속 박탈’(desaffiliation)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Robert Castel, Les metamorphoses de la question sociale, Gallimard, 1995).

  T. H. 마샬이 이론화했듯이 산업혁명 이후 각각의 개인들에게는 개인적인 시민권만이 허용되었다면, 20세기에 들어서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대중들의 투쟁의 결과 서구 주요 산업 국가의 개인들은 정치적 시민권과 더불어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제 각각의 개인들은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참여의 권리 이외에 그들이 삶을 영위하고 좀더 질 높은 생활을 추구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보편적인 권리로서 얻게 되었다(무상 교육, 국민 의료 보험, 실업 수당, 양육비, 주거비 등). 이것은 개인들이 각자 생애 주기를 계획하고 자신들의 개인적 서사를 전개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기업가 개인의 모델을 일반화함으로써 이러한 확장된 시민권이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을 잠식해간다. 더 이상 국가가 개인들의 삶, 대중들 각자의 삶을 보장해주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스텔은 좀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을 인간학적 측면에서 개념화한 바 있는데, 그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체제가 산출하는 개인성의 두 양상을 각각 ‘과잉 개인’과 ‘결핍 개인’으로 정식화한다(La montee des incertitudes, Seuil, 2009).

  여기에서 과잉 개인이란 보통의 개인들 이상의 능력과 조건을 갖춘 개인들, 승자로서의 개인들을 말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우월한 조건 속에서 든든한 문화적 자본을 바탕으로 몇 걸음 앞서 나가는 존재들이다. 반면 결핍 개인이란 생물학적으로는 한 명의 개체로 존재하면서도 인간적인 개인으로 존재하기 위한 사회적 자원 및 문화적 자본을 결여한 사람들이다. 서양 전근대사회의 떠돌이들이나 산업혁명 초기의 프롤레타리아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하루하루 삶을 연명해나갈 뿐,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의미 있는 정체성을 구성하고 영위할 수 없는 이들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서 주장하듯이 이들이 게으르거나 개인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러한 경쟁에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들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이러한 개인들이 온전한 인간적 존재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한다는 점, 곧 결핍 개인들의 산출을 구조화ㆍ제도화한다는 점이다. 카스텔이 ‘소속 박탈’이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곧 개인들이 사회적 안전망을 박탈당한 채 저 홀로 자율적인 주체, 기업가 개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오늘날 주체화는 많은 철학자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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