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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맛 기행-웰빙을 욕망하는 서울, 2006년 겨울
[138호] 2006년 12월 04일 (월) 권두현 편집위원 편집위원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고, 돈은 천원이 없어졌고 사내는 한쪽 눈으로는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 있었고, 안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악센트 찍는 문제를 모두 틀려버렸단 말야, 악센트 말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거리는 영화 광고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했고, 그러나 여전히 소주 광고는 부지런히, 약 광고는 게으름을 피우며 반짝이고 있었고, 전봇대의 아가씨는 ‘그저 그래요’라고 웃고 있었다.”

〈서울, 1964년 겨울〉 중에서

  우리는 기억한다. 1964년, 서울의 겨울을. 그해 겨울은 추웠다.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했다. 이와 같은 용틀임이 무위로 돌아갔을 때, 당시 학생들에게 남겨진 것은 초라한 식탁 위의 푸념 섞인 한 잔 술뿐이었다.

틀 안에 갇혀 소외를 자처하는 단자적(單子的) 세계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의미에서 1964년의 세계관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할만하다. 1964년의 세 남자가 형성한 기묘한 커뮤니티는 이제 음식을 통해 형성된다. ‘음식 소개 프로그램’과 ‘맛 기행 동아리’가 난무하는 2006년 서울에서 말이다. 어쩌면 1964년, 서울을 배회한 세 남자 또한 그들이 마주했던 포장마차와 중국집에서 각자가 지니고 있던 개인이라는 단자에 작은 구멍 하나를 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품었을지언정, 같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하던 서울 거리는 이제 ‘웰빙 음식’들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국제 음식산업박람회의 웰빙요리경연대회까지 열리는 형국이다. 이제 그들이 술잔을 기울였던 투박한, 하지만 정겨웠을지 모를 그 시절의 포장마차를 서울에서 발견해내기란 무망한 노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곳은 필동해물이다. 학교 후문으로 빠져나가 충무로 쪽을 향해 걷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이곳. 술집들이 즐비한 녹두 사거리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초겨울을 달래는 1964년, 아니 2006년의 청춘들은 몇 발자국 더 걸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실외에 놓인 테이블에서도 술판은 흥겹기만 하다. 1964년의 선배들은 이들을 보며 과연 어떤 생각을 떠올릴까. 1964년의 소주 광고를 경험한 그들이기에 어쩌면 훌쩍 자란 청춘들을 ‘알칼리성 태아’로 몰고 가기 위해 한껏 도발하고 있는 2006년의 소주 광고를 보며 이물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이물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1964년의 선배들 쪽만은 아닐 것 같다. 2006년의 청춘들은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이곳을 통해 이물감을 느낀다. ‘지금, 여기’의 일상적 세계는 불안을 인식함으로써 감지된다. 불안이 틈입해 현실을 교란할 때, 비로소 개인은 안정된 현실의 존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 번 자리 잡은 인식을 거두어낼 수 없기에, 불안의 그 검고 커다란 입을 다물게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2006년의 청춘들은 ‘불안’에 익숙하다. 아니, 이와 같은 불안을 즐긴다. 낯선 시공간을 마주했을 때의 그 이물감,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안주다. 벽에 걸린 메뉴판부터가 그렇다. 매직으로 작성된 투박한 메뉴판은 저렴한 가격을 수줍게 뽐내고 있다. 여기에 해파리처럼 톡 쏘아부치는 주인 아저씨의 무뚝뚝함은 자본주의 첨단을 달리는 2006년이라는 시공간으로부터 훌쩍 비껴난다. 해파리처럼 부유하는 2006년의 청춘들의 발길을 붙들어매는 것도 바로 그런 무뚝뚝함이다. 손님을 대함에 있어 가식적인 살가움으로 포장되지 않은 주인아저씨의 태도는 손님을 ‘돈’으로 계량화하지 않음이 틀림없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무뚝뚝함은 오히려 더욱 정답다. 번듯한 접시에 담기지 않아 더욱 반가운 이곳의 해물 맛도 정답기는 마찬가지이다. 신선한 해물을 입에 담는 일이 웰빙의 첩경임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이제 1964년의 그들처럼 중국집을 찾아갈 차례다. ‘꽁시면관’이라는 독특한 상호를 내건 이곳은 충무로를 벗어나 명동 쪽으로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명동은 중국 대사관이 자리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 근처에는 다양한 중화요리 전문점들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꽁시면관’은 중국 대사관 앞을 차지한 곳곳의 중화요리 전문점 가운데서도 가장 이색적이라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온통 새빨간 인테리어로 중무장한 이곳은 이제 중국 대사관 앞의 명물이 되었다. ‘꽁시면관’ 입구에 거꾸로 매달린 ‘복(福)’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모두가 잠든 밤, 함박눈처럼 몰래 쏟아진 복이 꽁시면관의 창문 한 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간 것은 아닐까.

이곳에 들어와 앉아있으면 1964년 선배들이 먹었을 요리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중국음식의 대명사 격이 되어버린 ‘자장면’과 ‘짬뽕’외에도 각종 산해진미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마늘갈비는 가장 일품이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을지 몰라도, 결코 마늘갈비가 싫다고 하시진 않으셨을 것 같다. 마늘. 어머님이 눈물을 흘리며 깠던 그 마늘은 ‘지금, 여기’의 식탁 위에서 웰빙을 떠올리게 하는 그 무엇이 된다. 마늘 향으로 가득한 식탁은 미각과 촉각이 동시에 즐겁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소룡포의 국물도 향기롭긴 마찬가지다.

꽁시면관의 출구는 밤의 입구로 이어진다. 서울의 밤. 철도가 근대의 상징이었다면, 도시를 가득 메운 밤길의 자동차들은 현대의 상징일 게다. 1964년 일찍이 현대를 경험했을 그 선배들이 느꼈던 애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오랜 시간동안 기억되는 것이 후각이라는 데, 어느새 마늘 향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마늘 향과 함께였던 입가의 미소도 어느새 말끔히 거두어져있다. 내일의 또 다른 웰빙을 꿈꾸며 잠들 도시인들의 밤이 왔다. 자, 다시 한 번 자동차라는 단자에 몸을 싣고 도시인들과 절연할 시간이다.

인간의 식생활은 원래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 각지에서 쉽게 공급될 수 있는 식품원료를 이용 하다 보니 지역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라서 식품원료의 교류 및 식생활 방식의 교류가 점진적으로 증진되어 현재 인구가 밀집된 큰 도시권에서는 여러 지역의 음식을 기호에 따라서 선택해서 섭취할 수 있을 정도로 음식문화는 국제적 차원으로 발달하였다. 학교 앞만 보더라도 국제화된 음식 문화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1번 출구로부터 50m쯤 걸어 올라가다 보면 웰컴시티빌딩 2층에 자리한 ‘그 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로부터 다시 50m쯤 더 올라간 곳에는 예약제로 운영되는 한 평 남짓한 ‘라 깜빠냐’가 위치하고 있다. 주위에는 한정식집 ‘산정’, 일식집 ‘송원’이 ‘그 안’이나 ‘라 깜빠냐’와 같은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어깨를 같이 한 채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음식은 문화다. 문화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음악 미술 연극 영화들과 같이 신문 문화면을 장식하는 ‘좁은 의미’의 문화에서 확장하여 해석하면, 문화는 ‘총체적 삶의 방식(the whole way of life)’을 말한다. 삶의 방식은 환경에 의해, 지역과 역사에 의해 독특하게 형성되어 전달되는 것이다. 물론 음식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극지방의 음식이 사막지방의 그것과 같을 수 없고, 수렵채취사회의 음식이 농경사회와 같을 리 없다. 산악지대는 평야지대와 다르고, 섬 지방은 내륙지방 사람들의 식성과 다르다 문화로 자리 잡은 식사 예절도 아시아와 유럽이 당연히 같을 수 없다.

서울을 보자.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는 마치 ‘괴물’과도 같이 모든 음식을 만들고 먹어치운다. 지형지리적으로 본다면, 경기도를 먹어치우고 있는 정도에 불과할지 몰라도, 심상지리적으로 볼 때 서울은 지금 전 세계를 먹어치우고 있다. 이는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전 세계의 음식을 먹어치우고 있다. 이 무시무시한 대식가들의 폭식은 때로는 ‘퓨전’이라는 이름 아래 한 방에 해결되기도 한다. 더 이상 눈과 귀만으로 즐거울 수 없는 서울 사람들에게 있어 ‘맛’, 즉 ‘미각’은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미개척의 즐거움이다. 점심시간만 되면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직장인들.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루의 유일한 낙으로 삼기에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개척이 완료되어가는 듯 보이는 ‘서울’이라는 괴물 같은 메트로폴리스에서 살아가는 최후의 개척자들인 것이다. 개척자들로 가득한 서울, 2006년 겨울의 밤은 어둡지만 뜨겁다.

권두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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