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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바르부르크, 봄
[182호] 2014년 04월 14일 (월) 윤경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아비 바르부르크(1866-1929)는 미술사라는 한정된 학문 분과를 넘어 동서양 고대 문명에서 동시대 대중 매체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이미지의 관계를 폭넓게 사유한 학자다. 그의 학문적 유산은 수십 년 동안 어슴푸레 거의 잊혔다가, 지난 세기 말 전집이 출간된 이후 서구 인문학계를 필두로 활발히 논의되고 재해석되는 중이다.
  인간은 이미지를 만드는 주체로서 그 이미지를 매개로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바르부르크의 일생을 요약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필사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말년의 이미지 수집 프로젝트 『므네모시네』(1924-1929)는 바르부르크의 사유를 종합적으로 표상하는 일종의 설치 작품이다. 79장의 거대한 검정 패널에 주제별로 배열한 수천 장의 흑백 사진은 세계의 형상과 인류의 역사를 압축한 기억의 여신 그 자체다. 바르부르크에 따르면, 인간은 마성적 에너지로 충만한 우주 공간에서 태어나, 이미지를 방패로 삼아 그 해악적 힘에 저항한다.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이미지 보호막은 따라서 세계의 폭력성과 인간의 공포, 고통, 슬픔을 동시에 투영하고 응축한다. 바르부르크가 발명한 주요 개념인 파토스포르멜(Pathosformel)은 이처럼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이 표현하는 몸짓과 감정의 형식으로서의 이미지를 지칭한다.
  감정을 표출하는 몸짓의 유형, 필연적으로 움직이는 몸짓을 고정하는 행위로서의 이미지 제작, 그리고 모방과 기록의 반복을 통한 고통과 슬픔의 기억의 전승 등 『므네모시네』에서 만개한 바르부르크의 사유는 이미 초기의 논문들에서 나타나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학자로서 바르부르크의 첫 저작은 박사 논문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에서 고대의 개념에 관한 고찰」(1893)이다. 봄마다 다시 읽기 아름다운 이 논문에서 바르부르크는 클라우디아누스, 오비디우스, 폴리치아노 등 고대와 당대 시인들의 텍스트에서 비너스, 에우로파, 아우로라, 호라, 님프 등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한 묘사가 보티첼리 회화 속의 여성들 이미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철저한 문헌학적 고증을 통해 입증하려 한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비교하면서 바르부르크가 주목하는 사항은 여성의 얼굴과 신체보다는 서풍의 신 제피르의 입김에 나부끼는 머리카락과 옷처럼 부차적인 요소들이다. 시인은 신화적 여성들을 묘사하면서 기교와 실감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디테일에 힘을 쏟는데, 특히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려 마치 파도처럼 부풀고, 물결치고, 서로 말려 엮이고, 마찬가지로 옷은 주름져 펄럭이고 휘날린다. 시에서의 디테일은 보티첼리의 회화에서 비너스의 머리카락과 플로라의 옷 주름 등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바르부르크의 논지는 시와 회화의 일차원적 대응을 증명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자연계에서 생명의 표징인 움직임과 숨결은 시와 회화 같은 예술의 영역에서는 유기체로서의 몸으로만 표현되지 않고 생명 없는 잔존물이나 부속물인 머리카락과 옷까지 전이된다. 외부 무생물에까지 옮아가는 움직임은 내부에서 분출하는 생명력을 더욱 활달하고 강도 높게 표현한다. 움직임의 이미지는 또한 신체의 생명력뿐만 아니라 파토스 같은 내부 감정까지 표상한다는 말로 바르부르크는 첫 논문을 결론지으며 이후의 사유를 예비한다.
  인간과 세계는 자칫 광기와 죽음에 이를 정도의 강렬한 생명력, 운동성, 감정을 주고받는다. 이미지는 양자를 매개하며 기록한다. 이 이미지들이 잔존하며 인류의 기억을 전승한다. 이것이 바르부르크 사유의 요체다. 「봄」으로 시작된.

  ◎ 바르부르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다음 참고문헌을 길잡이로 추천한다.
  1. 아비 바르부르크, 「『므네모시네 』 머리말」 (신동화 옮김, 『인문예술잡지 F』 6호, 문지문화원 사이, 2013년 봄)
  2. 윤경희, 「어른들을 위한 유령 이야기 ― 아비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네』」 (『인문예술잡지 F』 6호, 문지문화원 사이, 2013년 봄)
  3.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김정복 옮김, 휴먼아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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