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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182호] 2014년 04월 14일 (월) 조형준 문화평론가
   
 
  내가 원래 청탁 받은 내용은 ‘학술 신간’이었다. 하지만 청탁서의 요지와는 전혀 어긋나게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최형익 옮김, 비르투, 2012)을 서평 대상으로 삼은 것은 역으로 오늘날의 ‘학술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서이다. 너무나 많은 책이 ‘학술’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고, 또 책마다 ‘신간’이라는 주장을 내세우지만 과연 이름에 걸맞은 책인지 회의가 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청탁을 받고도 똑같은 고민에 부딪힌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일종의 우회를 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이 책은 원래 신문기사로 작성된 것이고, 19세기 중반에 쓰였기 때문에 ‘학술 신간’과는 전혀 무관하다. 하지만 지금의 어느 책보다고 더 학술적이고 ‘새롭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모든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마르크스의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집필을 시작한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현대적이고 여전히 새롭다. 그러면 왜 레비-스트로스는 그렇게 말했을까? 조금은 아이러니하지만 마르크스의 이 책의 주제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잘 요약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즉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르나이다.” 나는 레비-스트로스가 대학자인 것은 바로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원시인이나 미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류학을 연구한 그는 소위 ‘문명인’이 가질 수 있는 ‘오만과 편견’을 위의 예수님의 말로 견제하되, 이 말을 통상적인 의미와는 정반대로 뒤집는다. 즉 ‘우매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른다고 깔본 것이 아니라 절대적 타자인 ‘야만인’들이 하는 짓을 ‘우리는 모르나니, 내가 죄인’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 ‘저를 용서하소서!’ 그리하여 레비-스트로스가 내린 결론은 오히려 ‘야만적 사유’가 문명인들의 사유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고 총체적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야만적 사유』는 후이징하의 『중세의 가을』과 함께 서구 중심의 진보주의를 철저하게 부정하게 된다(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점진주의적 진보사관을 깨는 것이 벤야민의 가장 큰 문제의식이었음을 알고 있다).
  마르크스의 이 책은 19세기 정치의 백화점이자 만화경으로, 당시의 맥락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포복절도에 배꼽을 움켜쥘 수밖에 없는 책이다. 루니 보나파르트부터 시작해 온갖 당파들은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으로”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은 19세기의 온갖 정파와 당파들이 온갖 애국주의와 개혁주의, 국가주의 깃발에도 불구하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들에 다름 아님을 예리한 눈으로 풍자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 통령, 황제 사이 또는 그저 단순한 허수아비나 한 패거리의 우두머리를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는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은 사실은 이후의 자본주의 정치의 우여곡절의 원형이자 전주곡이다.
  아마 이 책에서보다 더 사람들이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로 하는 행동의 괴리가 이처럼 무자비하고 적나라하게 풍자된 책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어떤 책을 읽다가 ‘어, 이거 우리 현실 아닌가?’하는 기시감이 이보다 더 큰 책도 없을 것이다. 현금의 신자본주의가 내뱉는 무수한 약속과 환상부터 시작해 정치권이 양산하는 온갖 ‘복지’ 담론과 ‘새 정치’ 공약을 바라볼 때 우리가 반드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른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이 책은 요즘의 과잉 정치 시대에 다른 어떤 책보다 ‘신간’에 값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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