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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신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빅데이터와 장치와 우리
[문학공간] 연구자의 서재
[182호] 2014년 04월 14일 (월) 이재원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 상자 속의 인간 프랙탈.
   『장치란 무엇인가? 장치학을 위한 서론』 (난장. 2102) 표지 사진.
 
  인류는 유토피아를 꿈꿔온 만큼이나 디스토피아를 상상해왔다. 흔히들 유토피아를 그리스어 ‘유’(ο /not)와 ‘토피아’(topos/place)의 합성어로 이해하지만, 그 실제 함의를 따지면 ‘에우’(ε/good)와 ‘토피아’의 합성어이다. 요컨대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 아니라 ‘좋은 곳’이다. 유토피아의 반대말인 디스토피아의 접두어가 ‘뒤스’(δυσ/bad)인 것이 그래서이다. 즉, 디스토피아는 ‘나쁜 곳’이며, 서사 장르로서의 디스토피아는 ‘나쁜 곳’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인류는 무엇을 나쁜 것이라고 상상해왔을까? 에리히 프롬은 근대 디스토피아 장르의 문법을 확립한 작품으로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친의 『우리들』(1921),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1), 조지 오웰의 『1984년』(1940)을 꼽으며 이에 답하려고 했다. 프롬에 따르면 이 세 소설은 세부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되는 근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인간이 인간적임을 잊을 수 있는가?”
  프롬이 ‘인간다움’의 특성 중 으뜸으로 꼽은 것은 ‘자유’였다. 여기서 자유란 개인이 자신만의 정상적인 판단에 따라 한 개체로서 온전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프롬이 보기에 근대인들은 이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으며, 저 ‘부정적 유토피아’ 3부작은 이 문제를 정식화해 근대의 고전이 됐다. 그런데 이른바 ‘포스트-모던’을 넘어 ‘포스트-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떨까?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의 『버스트: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동아시아/2010)은 이 질문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되어준다. 인간 행동의 패턴을 밝히려는 ‘인간 역학’(human dynamics)의 다양한 연구 성과들(전화 통화 패턴, 웹 브라우징 패턴 등)을 소개하는 바라바시는 인간의 행동에는 모종의 규칙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다음 행동이 통계적으로 예측된다고 말한다.
  그 예가 ‘라이프리니어’(Lifelinear)라는 웹사이트이다. 이 웹사이트는 방범 카메라 영상에 찍힌 몇 초짜리 화면에서부터 낯선 사람들이나 지인들이 찍은 사진, 혹은 각종 SNS와 블로그 링크 등을 통해 검색된 개인 정보처럼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데이터들에만 의존해 거의 모든 사람의 궤적을 추적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개개인의 행동 모형을 통계적으로 구축함으로써.
  가령 내가 오전 8시부터 9시 사이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서 사무실로 가는 패턴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알고 있는 라이프리니어는 그 구간의 방범 카메라에 찍힌 영상만 확인하는 것으로도 나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설사 내가 늘 내리던 홍대입구역에서 내리지 않더라도, 그들의 알고리즘은 내 사무실까지 가는 그 다음으로 유력한(가까운) 하차역이 합정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만에 하나 내가 일상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 아예 딴 데로 간다면? 그때만 총력을 기울여 나를 추적하면 된다.
  혹시 ‘라이프리니어’를 재미 삼아 검색해볼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도 속은 셈이다. 라이프리니어는 바라바시가 꾸며낸 것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혹은 당신은 왜 이것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바로 코웃음 치지 못했을까? 무엇보다도 그럴듯하기 때문 아닐까? 『우리들』에서는 뇌엽 절제와 비슷한 두뇌 수술이 인간으로부터 자유를 뺏기 위해 행해진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인공적인 생물 선택과 투약이, 『1984년』에서는 무제한의 고문과 세뇌가 사용된다. 이에 비하면 확실히 라이프리니어의 이야기는 훨씬 더 현실감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라이프리니어 같은 ‘큰 기계’나 통합정보인식 같은 프로그램은 그 통계적 예측력을 유지하고 갱신하기 위해서 우리와 우리의 환경에 대한 데이터들을 끊임없이 제공받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데이터가 넘쳐난다. 휴대전화 회사들은 우리의 통화 시각과 위치를 알고, 신용카드 회사들은 우리의 소비 습관을 알며, 이메일서비스 회사들은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사적 관심사를 기록하고, 감시 카메라들은 우리의 행동을 정기적으로 녹화한다. 심지어 우리는 각종 SNS나 모바일, 혹은 클라우드를 이용한 ‘라이프로그’(life log)를 통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자발적으로 공개하기도 한다.
  바라바시가 말하는 ‘큰 기계’나 통합정보인식 같은 프로그램이 다루는 자료를 요즘은 ‘빅데이터’(big data)라고들 한다. 단지 정보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것의 활용으로부터 추출해낼 수 있는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그렇게 불린다. 빅데이터의 주창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히 ‘경제적’ 가치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빅데이터의 ‘정치적’ 가치를 살펴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일본의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가 대표적이다. 아즈마는 『일반의지 2.0: 루소, 프로이트, 구글』(현실문화/2012)에서 ‘총기록사회’(総記社会)의 대두를 지적한다. 총기록사회란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갖고 싶어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본인은 기억하지 못해도 환경이 이를 기록하는 그런 시대 …… 사회 구성원의 욕망의 이력을, 본인의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의지 표명과는 관계없이 조직적으로 축적해 이용이 가능하도록 바꾸는 사회이다.” 총기록사회는 인민의 온갖 개인 정보를 끊임없이 데이터베이스화한다. 바로 이 데이터베이스화된 막대한 정보가 빅데이터이다.
  아즈마는 이 데이터베이스=빅데이터에 근거하면 인민의 일반의지=일반욕구=집합적 무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치에 발 빠르게 반영할 수 있는 ‘민주주의 2.0’ 혹은 ‘정부 2.0’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총기록사회’화는 분명 기업에 의한 소비자 관리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지만, 반대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세심한 복지 또한 가능케 한다. 총기록사회의 탄생은 시장 원리주의와 연계될 수도 있지만 사회민주주주의와도 연계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인 변화이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목소리도 있다. 조르조 아감벤과 양창렬은 『장치란 무엇인가? 장치학을 위한 서론』(난장/2012)에서 큰 기계, 빅데이터, 총기록사회를 성립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을 ‘장치’(dispositif)라고 부른다. 이들에 따르면 “장치에 관한 문제가 결국 그것을 어떻게 똑바로 사용하느냐의 문제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은 “모든 장치에는 각각 정해진 주체화 과정이 대응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존재로서, 그들은 “그들 자신을 포획하는 장치의 결과로서 생겨난 자들”에 불과하고 일축한다.
  요컨대 관건은 장치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장치가 생명체를 어떤 주체로 주조하느냐를 묻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장치란 ‘중립적인’ 무엇이 아니라 그 자체만의 ‘방향성’을 지닌 무엇이다. 일례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휴대폰, 인터넷, SNS 같은 장치들은 우리를 ‘추적 가능한’ 주체로 몰아세우는 것은 아닐까? 편익 혹은 안전을 대가로 나의 ‘흐름’과 ‘흔적’을 장치에게 내맡기는 주체가 되기를 닦달하는 것은 아닐까?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어떤 주체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오늘날 우리는 자유로운가?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통해 우리가 인간적임을 잊지 않고 있는가? 바라바시는 한 가지 ‘난제’ 때문에 대답을 유예하고 그 난제를 풀려고 노력한다(그 ‘난제’의 정체는 직접 확인하시라), 아즈마는 총기록사회의 대두를 자유의 상실로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설계를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아감벤·양창렬은 이미 ‘역사적 환경’처럼 주어진 장치들이 우리의 자유에 가할 위험을 강조하며 장치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을지 성찰한다.
  훗날 우리는 빅데이터를 양산하는 장치들로 둘러싸인 이 멋진 신-신세계를 유토피아로 기억할까, 디스토피아로 기억할까? 늘 그렇듯이 우리의 문제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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