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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FOCUS] MMORPG와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
크리스토퍼 놀란 <인셉션>
[181호] 2013년 11월 18일 (월) 전우형 건국대 교양교육센터 강의교수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인셉션> 포스터.
 
  개봉 당시의 떠들썩함도 한층 가라앉아 이제는 무심히 케이블 영화채널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여전히 강한 해석 욕망을 자극하는 영화 한 편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던, 특히 주제도 주제려니와 모호한 결말 처리 방식 덕택에 무명의 관객들에게마저 가장 적극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 Inception<인셉션>(2010)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감독들 중에서 비교적 지적인 연출을 주로 선보여 왔던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작품이며, 그의 전작들에서부터 꾸준히 문제삼아왔던 꿈 또는 무의식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데 한층 더 세련된 스토리와 영상이 발견된다. 영화의 이야기는 꿈을 해킹해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훔치거나, 무의식에 새로운 정보를 주입시키는 일이 가능해진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 자체로 사기이자, 비유적으로도 사기나 다름없는 이 일을 전문으로 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두 기업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꿈과 무의식 덕택에 정신분석학 또는 장자의 철학에 의해 쪼개지고 평가되기 일쑤였고, 이러한 접근이 사실 적확할뿐더러 흥미로운 해석들을 만들어냈으나 꿈과 무의식이 구성되고 전달되는 재현의 기술에 대한 관심은 미흡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무의식에 새로운 정보를 주입하기 위해 이야기를 설계하고 꿈에 접속하여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며 새로운 꿈을 만들어간다. 이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통해 영화는 겹겹이 쌓여있거나 불안정하고 간섭적인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데 성공한다. 등장인물들이 꿈에 접속하거나 꿈으로부터 차단, 영화에서는 이를 킥이라 부르며 꿈으로부터 현실, 또는 꿈의 전단계 꿈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 두 장면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자주 반복될뿐더러 현실과 비현실을 재현하고 지시하는 중요한 기표가 된다. 이 영화의 트레일러에서 가장 빈번히 보여주는 도시가 반으로 접히거나 도심 한복판에 느닷없이 기차가 질주하고, 무중력 상태를 보여주는 장면이 꿈에 대한 시각적 구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 단순해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행위 역시 꿈과 현실에 대한 재현의 장치라 할 만하다. 시각적으로 섬세하며, 무의식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하거나 반대로 주입하는 스토리의 참신함, 그리고 꿈의 연쇄가 만들어내는 난해함 등은 사실 이 단순한 행위로부터 촉발되고 유지된다.
  그런데 접속과 역할수행이라는 이 단순한 행위는 우리에게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PC통신, 인터넷, 소셜미디어를 지나는 동안 접속이나 아바타 등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말들이 되었다. 특히 영화 이후 서사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한다고도 하는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는 이 행위들의 순수한 결합으로만 만들어지는 게임이다. 다른 사람의 꿈이라는 가상의 시공간에 다수의 인물들이 접속하여 무의식이라는 이야기를 만드는 영화 <인셉션>의 서사 구조는 그래서 다수의 사용자가 네트워크라는 시뮬라크르에 동시, 또는 연쇄적으로 접속하여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MMORPG와 정확히 겹친다. 주인공 코브는 자신을 위기에 몰아넣은 장본인인 사이토의 사주를 받아 경쟁기업의 CEO 피셔의 무의식에 새로운 정보를 주입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코브는 이 일의 전문가들을 모아 팀을 만들고 피셔의 꿈에 접속하여 가상의 시공간을 공유하며 각자 맡은 역할을 실행한다. 코브의 제안으로 아리아드네가 꿈을 세 단계로 설계했다는 점 역시 레벨에 따라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미션이 부여되는 MMORPG와 교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시가전과 호텔, 그리고 설산요새는 각각 피셔의 꿈과 꿈 속 피셔의 꿈이라는 연쇄에 의해 각각의 레벨로 구성되며, 유독 이 장면들이 화려한 액션들로 채워진다는 점도 결투 같은 MMORPG의 일반적인 스토리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에 대해 은유와 환유의 세계로 가득하고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꿈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여주었다는 미학적 판단이나, 현실과 꿈의 경계가 와해된 현대사회를 은유한다는 다소 철학적인 해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굳이 MMORPG와의 유사성을 매개로 도달하려는 지점은 무엇인가. 몇몇 성급한 비평가들의 말대로 소설의 시대가 끝나고 영화의 시대가 왔듯이, 다시 게임의 시대가 왔다는 말의 유효성을 확인하려 함은 절대 아니다. 영화가 소설의 독자들을 관객이라는 이름으로 추출해낸 것만큼 게임이 영화의 관객들을 플레이어라는 이름으로 호명하는 데 성공했는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다만 이 MMORPG라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서사가 지니는 고유한 속성이 그 이전의 대표적인 서사양식들, 특히 영화에 일정한 충격을 가하고 그 균열 사이로 새로운 양식이 출현하고 의미들이 파생되고 있는 정황만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MMORPG가 지니는 고유한 속성이란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것처럼 플레이어의 직접 참여이다. 이 속성으로 인해 스토리는 늘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다. 1인칭 시점이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열린 결말을 지향하는 이 재현된 현실을 ‘게임적 리얼리즘’(아즈마 히로키, 장이지 역,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현실문화, 2012)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브 일행이 접속한 피셔의 꿈에서 그들은 피셔의 방어기제들에 맞닥뜨리거나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하면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게 된다. 접속에 의해 시작한 이야기가 수많은 작은 이야기로 분절되는 이 영화의 서사는 분명 MMORPG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이 빚어내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의 간접 재현이다. 이 영화가 영화관 바깥에서 무명의 관객들 사이에 열정적인 해석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영화가 MMORPG적 속성을 통해 돌파하려는 지점이 무엇이었는가를 알려준다. 일방적으로 수용자의 위치에 고정되어 있던 대중들에게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꿈꾸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 이 영화에서 MMORPG의 유사 이미지를 발견한 해석이 조우하는 여전히 잠정적인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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