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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평] 제도를 범람케 하는 제도
자크 데리다 지음, 데릭 애트리지 엮음, 정승훈·진주영 옮김, 『문학의 행위』, 문학과지성사, 2013
[181호] 2013년 11월 18일 (월) 이수형 문학평론가·명지대 국문과 교수
   
 
 
  자크 데리다의 『문학의 행위』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고색창연하게 느껴지기조차 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성격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70∼80년대에 발표된 글과 80년대의 끝자락에 이루어진 인터뷰를 모아 90년대의 초입에 출간된 책이니만큼 그런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행위』는, 편집자인 데릭 애트리지 역시 지적한 바대로 “소소한 ‘문학적’ 관심으로 보이는 것에 대항하면서 ‘철학적’인 해체를 옹호”함으로써 “‘문학적인’ 데리다보다 ‘철학적인’ 데리다를 선호”했던 경향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적어도 우리에게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근대문학이라는 환상을 해체하는 데 앞장선 데리다의 이미지를 새삼 숙고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중한 독서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제목에도 명시되어 있듯, 데리다에게 문학은 어떤 형이상학적 본질이 아니라 뭔가를 수행한다는 사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읽게 하는 쓰기이며, 서명하고 대리보충하며 발명하고 대응서명하게 한다. 이러한 문학의 수행 과정은 자기모순적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텍스트가 생성되어 새로운 읽기를 산출한다 해도, 그것이 읽힐 수 있고 그리하여 의미를 띨 수 있다는 것은 반복 가능성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서명이나 발명의 이중성에 비견할 수도 있다. 즉, 서명은 지금-여기 있음에 대한 유일무이한 확인이지만 동시에 반복될 수 있으며 재인(再認)될 수 있다. 발명 역시 전적으로 새로운 것인 동시에 반복적으로 이용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문학 텍스트는 (행위이면서 행위의 모방이고, 수행이자 기록이며, 사건인 동시에 법인) 하나의 행위, 즉 독창성과 일반성, 구체성과 관념성, 개인성과 규칙성 사이의 철학적 대립을 뒤흔들면서 재구축하는 하나의 행위이다. 그리고 이것을 읽는 행위는 이러한 (비)대립의 양쪽 모두에 대한 응답이다. 즉, 우리가 아는 것과 생각하는 방식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환원 불가능한 것에 대한 응답인 동시에, 텍스트와 독자를 지배하는 시스템에 관하여 우리에게 뭔가 말을 거는 것에 대한 응답이다.”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자기정체성이나 본질 따위가 없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설 것도 없는 상식의 하나이다. 이 말은 문학이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제도라는 뜻이기도 하다.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해체주의자를 자처한 우리들은 한동안, 권력과 법에 의지해 연명해온 근대문학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해체 작업이 정작 문학과는 별 상관없는 박물학자 혹은 방물장수를 양산하지는 않았던가?
  문학은 제도이되 그 자신의 제도성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제도라고 말해지곤 한다. 이 역시 문학은 제도라는 명제만큼 상식적인 말이다. 문학(만)이 이처럼 독특한 전략을 지닌 제도라는 데 굳이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다만 그 전략이 일시 정지(suspended)라는 조건 하에서 수행된다는 데리다의 언급을 참고하는 것은 가능하다. 일시 정지란 긴장(suspense)과 함께 의존성(달려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학이 수행하는 전략이 썩 혁명적이라고 평가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수 세기 동안 문학 제도를 지탱해온 자기모순의 아이러니가 지닌 힘,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미결정성에 근거한 법 없는 윤리적 판단 가능성의 의미를 새삼 숙고하는 것은 여러모로 필요해 보인다. 제도라는 이유만으로 보수적일 수도 있으나 반제도라는 이유로도 보수적일 수 있다는 데리다의 지적에 귀를 기울인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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