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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새로운 공산주의의 이념, 그 (불)가능성의 재사유를 위하여
멈춰라, 생각하라: 공산주의의 이념(The Idea of Communism Conference) 2013 서울 컨퍼런스
[181호] 2013년 11월 18일 (월)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
   
   △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의 한 장면.
 
  한국에서 남용되고 있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석학’이 아닐까 한다. ‘석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은 대체로 ‘세계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여하튼, ‘세계적 석학’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특정한 의미를 가진 용어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통행증 같은 것이다. 어떤 행사를 치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이런 ‘세계적 석학’이다. 이 필수요소가 끼어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많은 차이가 난다.
  지난 달 서울에서 있었던 공산주의 이념 컨퍼런스도 이런 ‘관행’의 되풀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거액을 들여서 ‘세계적 석학’을 불러다가 대단한 행사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겉으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진실은 금방 드러난다. 일단 ‘세계적 석학’을 데려와서 벌이는 행사가 굳이 공산주의라는 금지의 주제라는 사실이 의아할 것이다. 행사 기간 내내 주제는 공산주의였고, 모인 청중들도 이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게다가 ‘세계적 석학’이 모여서 벌인 행사치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청중들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동시통역이 진행되긴 했지만 행사의 형식은 컨퍼런스라는 취지에 더 맞는 것이었다. 아시아의 문제를 서로 나누는 자리가 이 행사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서울을 방문한 ‘세계적 석학’에게 강연료 따위는 없었다. 이들은 그냥 이곳에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서울에 온 것이다.
   
  △ 슬라보예 지젝.
 
  여기에 공산주의 이념 행사를 지금까지 조직해온 바디우와 지젝의 신념이 있다. 흥미롭게도 바디우는 공산주의를 ‘운동’의 문제로 본다. 공산주의 국가의 실패 원인이 사회주의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공산주의 운동을 제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 문화혁명의 실패를 다시 살피자고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운동과 결합한 주체화의 문제가 정치적 기획의 핵심으로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그렇다면 그 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과거에는 행동을 운동이라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반대이다. 운동은 때때로 행동으로 드러나지만, 행동하기 전에 그 계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은 ‘논리적 전복’을 통해 가능하다. 바디우의 철학은 이런 가설을 지속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전복이 가능하고, 어떻게 전복적 사유가 새로운 정치적 기획으로 이어지는지 바디우는 평생에 걸쳐 탐구했다. 지젝의 고민도 유사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난 지젝은 현실사회주의 국가를 직접 겪은 철학자이다. 사회주의 정권이 위력을 발휘할 때, 그는 왕따였다. 그 왕따의 조건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자신이라고 지젝은 곧잘 말한다. 지젝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험을 관통하는 새로운 공산주의 이론을 정립하자고 주장한다.
   
  △ 알랭 바디우.
 
  이들이 말하는 공산주의 운동은 새로운 공산주의 이념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한 레닌의 모델을 반성하면서, 자본주의가 있는 곳이라면 유령처럼 출몰하는 공산주의의 불가능성(또는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궁구해보자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지금 당장 묘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바디우와 지젝은 태평한 말놀음을 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야 주체가 바뀌고, 주체가 바뀌어야 세계가 바뀐다’는 가설은 그동안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이 증명해왔다.
  대중운동에 이념이 없을 경우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출몰했다가 사라져버린다. 그 이념이 낡은 과거에 사라 잡혀 있을 때도 새로운 것의 출현은 요원해진다. 이념을 상실한 운동은 의회주의라는 ‘안전망’으로 모두 수렴되고, 대중운동은 소멸한다. 이 상황이야말로 정치의 종언이다. 바디우가 말하듯이, 의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제도일 뿐이다. 바디우의 말처럼 훌륭한 자본주의는 선거와 함께 간다. 그렇지 않은 정치는 위험하거나 과잉된 것으로 매도당한다. 의회주의로 포섭되지 않는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가능성을 강화해나가는 것이 이른바 공산주의 운동이다.
  아직 한국에서 공산주의라는 말은 금기의 언어이다. 이 언어를 금기에서 개방하는 문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부에서 이 논의를 전개해봤자 진영 논리에 휩싸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바디우와 지젝이 조직하는 ‘공산주의 이념 콘퍼런스’는 공산주의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 이 담론의 장을 구성하기 위해 한국만큼 적절한 곳은 없을 것이다.
  지젝이 말했듯이, 북쪽에 과거의 공산주의 국가가 좀비처럼 남아 있고, 남쪽에 너무도 역동적으로 잘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한반도다. 이곳에서 지난 세기 동안 우리가 축적한 정치적 경험이야말로 새로운 공산주의 이념을 논의하기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럼 왜 굳이 외국 학자들을 불러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한 이들도 있겠다. 바디우의 말처럼, 자본주의도 국제적인데, 공산주의도 국제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상의 국제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디우와 지젝이 공산주의 이념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이유는 ‘세계적 석학’으로 위용을 뽐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여기에 와서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은 서양의 사상을 수입하는 것을 ‘학문’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행사가 증명한다. 국제화라는 새로운 상황은 이들과 우리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에 우리의 생각을 보태는 것일 테다. 굳이 이런 생각이 이들의 언어로 표현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역성이라는 것은 장소를 옮긴 것이다. 보편성은 이런 장소의 이동을 통해 가능하다. 바디우와 지젝이 서울에 온 까닭은 이런 보편성을 위한 행동이었다. 어떤 청중이 바디우에게 “당신 생각이 장자와 비슷하다”고 하니, “그것이야말로 철학적 보편성에 대한 증거”라고 대답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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